노인들의 나라

미래의 과거

by 수요일

노인들의 나라


한국인과 외국인 부부와 그 아이들이 흔한 곳에 살다보니 그런 커플이 지나가도 큰 느낌이 없다. 한국말로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모습도 흔하고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며 지나치는 모습도 흔하다. 영어는 인토네이션이 있어서 한국말보다 더 시끄럽게 들린다. 중국어의 성조처럼 발음에 감정이 들어가 더 시끄럽게 되니 어쩔 수 없이 시선이 돌아간다. 하지만 그뿐이지 거기서 더 시선을 유지하지는 않는다. 예의가 아니라서다

오늘 지하철로 들어서며 한 노인이 계단에 서서 유심히 바깥을 지나가는 가족을 보고 있는데 내가 민망할 정도로 오래 쳐다보고 있다. 가족 중 남편이 곁눈으로 그 노인을 흘깃 보고 지나간다. 한국인 부인은 아랑곳없이 자신의 할 말을 하고 있다. 어린아이가 아빠 손을 잡고 부지런히 어른들을 따라 걷고 있었고. 아마도 노인의 시선은 그 아이에게 가있는 듯하다

가족이 백인과 한국인이었다면 아마도 그리 오래 바라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빠가 흑인이었기에 그리 오래 서서 바라보았을 것이다. 노인이 되면 대개는 자신의 감정이 다른 무엇보다 우선하게 되는 일이 드물지는 않은가 보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그 노인을 제지했다면 말을 들었을까. 아니면 되려 봉변을 당했을까. 참 난감하다

흔히 보이는 노인들의 감정표현은 눈살부터 달라진다. 그리고 곧 혀를 차거나 마뜩잖은 신음으로 드러난다. 노약자석에 앉았던 임신부들이 흔히 당하는 봉변이다. 자기 자식이나 며느리가 임신을 했다면 아마 당연히 먼저 앉히려 할 분들이 인상을 쓰고 심지어 욕을 한다. 내가 다리를 삐어 불편해도 그 자리에 앉을 생각이 없는 이유이다

나이 든다는 것은 포용력과 관용이 넓어지고 늘어난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만큼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그만큼 많은 경험과 지혜를 갈무리한 삶이 아닌가. 브렉시트가 통과된 영국의 국민투표에서 노인들의 표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기사를 보며 우리의 오늘과 닮은 면이 많아 남의 일임에도 씁쓸하다. 이 결과가 어찌 나올지야 그 미래가 되어야 알겠지만 그 미래의 주역은 오늘의 노인이 아니라 그 미래의 청년 장년들이라서 그렇다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 책임질 미래의 일을 지나간 사람들, 지나갈 사람들이 좌우하는 이런 민주주의가 노인에 가까워가는 나로서도 과연 온전히 바람직한 것인가라는 회의감이 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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