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단편소설 한 달
*
12.
그리움이란 말을
누가 만들었는지 참 다행이다.
없었다면 이 마음을 표현할 말은
그냥 없네
*
한강아,
응?
아빠에겐 왜 무슨 일로?
응, 군대 갈 거라 고시원 방을 뺐어. 그래서 거기서 한 달만 지낼 수 없을까 말씀 드렸는데,
뭐라셔?
많이 불편할 거라고. 근데 있는 건 상관없다고 그러셨어.
아빠야 뭐 당연 그러시겠지. 근데 거기 재개발 한다고 비워달라고 그랬대. 여러 가지로 복잡할 거야.
아, 그렇구나.
그냥 여기서 한 달 보내. 한 달 못 있게 해주겠니. 이 누나가. 하하.
아 이런, 무작정 말하고 나니 후회했다. 통증은 어쩌지. 통증도 수시로 드나들 건데.
정말 우와 고마워 누나. 고마워. 그리고,
아뿔싸, 회수불가능이다. 아 뭐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그랬다. 하자.
그리고?
사랑해. 사랑해. 누나.
아... 그래.
다음 날, 사표를 냈다. 불쑥 그러는 게 어딨냐며 난리를 쳤지만 내게 남은 시간은 이제 손톱달이 두 번 바뀔 만큼도 없다.
네? 3개월 후에요? 그런 게 어딨어요? 원래 2주 안에 주게 되어있다고요.
법이 그렇지 어디 현실이 그래? 당장 그만한 현찰이 어딨어? 보자, 대충 육백이 넘는데 말이야.
사장이 비비 꼬며 말해서 얄미웠지만 다투기 시작하면 시간만 낭비다.
아 그거 퇴직보험에서... 적립, 에혀, 그래요. 석 달 후에 울 아빠가 받으러 오실 거니까 제대로 지급이나 해주세요.
회사를 나오는데 통증이 왔다. 시도 때도 없이 오는 너 미워! 하려다가 그것도 지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걸 텐데 하고 회사 근처 벤치에 주저앉았다. 이럴 줄 알고 준비해놨지. 하하.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입에 물고 마스크를 쓰고 수건을 목에 둘렀다. 흐르는 땀을 수건으로 닦으며 버텼다. 오 분 십 분 점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는 통증이다.
한쪽에 앉아있던 할머니 두 사람이 이쪽을 바라보며 뭐라 하는 게 보였다. 그 또한 하고 싶은 걸 하는 거겠지.
십 분이나 끙끙 거렸더니 고통이 끝났다. 수건으로 땀을 정리하고 일어나 걸었다. 카톡이 울렸다. 한강이다.
오늘 뭐 먹고 싶어? 내가 사갈게.
좋아 치맥!
오케이,
낮 동안 할 일이 없다는 게 이런 거였구나! 처음 알았다. 덕수궁 돌담길 벤치에 앉아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 뭐하는 사람들일까. 아마도 하고 싶어서 저렇게 낮 시간을 멍하게 보내는 건 아닐 거였다. 서울미술관에도 그런 사람들은 많이 보였다. 삶의 아픔들을 보는 것 같아서 안 됐다. 하고 싶은 걸 하는 나는 저들보다 조금은 나을까. 이곳도 남들 얘기하는데 듣고는 꼭 와보고 싶었다. 그림도 보고 물건 구경도 하고.
아마 분명 나을 것이다. 이렇게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걸 하는 나의 나머지 스물 몇 날이.
13.
그리움만으로 살이 쪘다.
그리움만 먹어도 배가 부르니
살아도 알뜰하게
살아지겠다.
*
그날 밤,
한강이 치킨과 맥주를 사왔다. 반반 무많이. 밥상을 펴서 주욱 깔아놓고 건배를 한다.
우리 강아지의 무운을 빈다~ 건배,
뭐 금세 지나갈 거야. 누나는 내가 그립더라도 울고 그러지 마? 건배!
한강아,
응,
누나는 말야. 우리 강이가 언제나 씩씩하고 멋지게 잘 살았으면 좋겠어. 행복하게 말이야.
말했잖아. 내 행복은 누나에게서 나온다고. 그러니까 누나도 행복하게 나를 기다려 줘. 약속!
한강이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약속할 수 없는 새끼손가락. 하지만 걸어준다. 걸어줘. 지금 하고 싶은 건 그거니까.
이야 오늘 완전 한강이 복 터졌다. 하하.
맥주를 단숨에 마시고 닭다리 하나를 뜯어 나에게 준다. 그걸 받는데 또 왔다. 지겨운 고통이.
누나, 누나?
아후 말할 기운도 없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누나 어디 아픈 거지? 어? 어디 아파?
숨을 몰아쉬어 여지를 만들고 말했다.
여자는, 말이야, 한 달에, 한, 번, 이, 래, 그,것도, 모르고,
이게? 이게 그거야? 생리통이란 거야? 아, 어떡해.
한강이 내 손을 꽉 쥐었다. 나도 그 손을 힘껏 쥐었다. 내 손톱이 한강이의 손등을 파고들어 피멍을 만들었다.
통증이 가고 난 한강이의 손등을 보며 눈물이 났다. 지금 하고 싶은 건, 우는 게 아냐. 건배다.
아프지? 약 발라 줄게. 일단 건배하고,
괜찮아 라고 말하며 한강이가 잔을 부딪치고 건배 했다.
마음이 아팠다. 야속했다. 힘겨웠다. 하지만 지금 하고 싶은 건 한강이와 함께 마시고 먹고 노는 거. 아프거나 슬프고 힘겨운 건 나중에... 나중에 혼자 있을 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