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단편소설 한 달
*
14.
우르르 피는 꽃들은 봄이다.
나무에 매달려 흔들 때마다
꽃비로 내리는 봄이다.
그리움은 코스모스처럼 여리지 않고
해바라기처럼 뜨겁지 않으며
국화처럼 단정하지 않다.
벚꽃처럼 우르르 모여
가슴마다 흩어지는 꽃비
*
한강이는 집세 대신 몸으로 때우겠다고 했다. 뜯어진 벽지를 잘라내고 이쁘게 붙였다. 곰팡이들을 걷어내고 실리콘을 사다가 발랐다. 구멍 난 장판을 때우고 흐릿해진 전구들도 싹 갈았다. 삐뚤어진 서랍장도 맞추어 열 때마다 아우성이던 서랍장의 소란이 사라졌다.
나는 그저 옆에서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만 해댔다. 하지만 고치고 바르고 때운 방은 신혼집처럼 단아하고 깔끔했다.
한강이 씻은 동안 고기를 구웠다. 한강이가 사온 고기다. 소주도 땄다. 회사도 그만 둔 판이니 아침 출근 걱정 없고 한강이도 졸업하고 군대 가기 전이니 둘 다 여유만만이다. 붓고 따르고 마시며 웃고 즐겼다.
옛날이야기가 나오면 한강이는 대부분 나만 바라보던 이야기를 했다. 한강이는 늘 내 시간 안에 있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그 때 말이야 원래는 그, 아 뭐였더라. 그 땅파는 거 뭐지. 아으 기억 날락말락... 으아 나도 이제 늙었어.
이러면,
그건 그 때가 아니고 조금 전이지. 돌멩이가 바닥에 박혀서 애들이 자꾸 넘어지니까 누나가 어디서 곡괭이를 구해다가 파낸다고 한 거잖아.
아 맞다. 곡괭이, 하하. 진짜 웃겼어. 그치? 하하하.
막상 누나가 하다가 지쳐서 포기하고 내가 나머지를 팠는데 마당 절반만 한 돌이 박혀 있던 거여서 다시 묻었잖아. 튀어나온 것만 망치로 부수고. 완전 헛삽질 했지.
글쎄 말이야. 하하. 왜 첨부터 망치로 깨뜨린다 생각 못하고 무작정 파기 시작했을까. 아빠가 나중에 와서 보고 정말 만화처럼 뒤로 넘어갔잖아. 하하
그건 그 때가 아니라 누나가 아이들 케이크 만들어준다고 부엌을 온통 밀가루 떡칠했을 때잖아.
이런 식이다. 그러고 보면 나도 어릴 때부터 한강이가 동생이 아니라 오빠 같았다. 믿음직하게 언제나 곁에서 뭐든 다 해주는 오빠.
한강아,
응
누나 애인 되니 좋아?
그럼. 내 평생을 다 바친 사랑인데.
쳇 누가 들으면 한 오십 먹은 줄 알겠다.
오십은 몰라도 마음으로 치면 사십 년은 보낸 거 같아.
어이구 장하셔. 하하.
진심이야. 누나를 위해 내 평생을 바칠 거야. 누나를 위해 서울대를 나왔어. 누나 행복하게 해주려고. 누나의 행복을 위해 내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어. 목숨보다 사랑해. 누나.
아 됐거든. 무슨 목숨이 그렇게 가볍니. 목숨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 치고 믿음직한 사람 없더라 뭐.
누나라서.
어?
내가 이만큼 자라고 이만큼 죽어라고 성공을 만들어온 이유가 바로 누나가 있어서야.
기억 나? 누나가 없었다면 난 이미 죽은 목숨일 거야. 그러니 얼마나 소중해. 누나가 없는 삶은 나에겐 아무 목표도 없는 빈껍데기라고. 사는 의미가 없어.
됐어 누나를 사랑한다면 누나 말 들어. 꼭 남들이 부러워하는 사람이 되어 줘. 내 부탁이야. 알았지?
누나만 곁에 있어준다면 대통령도 돼 보이겠어.
으아악 멋지다~ 하트뿅뿅. 하하하.
마시고 또 마셨다. 그리고 마셨다. 나중 일을 지금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만 하는 거다. 그날 자다가 또 통증이 왔다가고 나도 한강이도 녹초가 되어 잠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