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단편소설

by 수요일

15.
*
한강이와 나는 며칠 동안 신나게 놀았다. 아니 이걸 데이트라고 하나. 진짜 연인들처럼 꽃구경도 다니고 맛있는 집을 찾아 품평을 하며 먹어보기도 하고 사진도 같이 찍었다.
영화관에서 시작할 시간을 기다리며 한강이가 자기 폰으로 커플사진을 찍었다.
줘봐.
뭘?
핸드폰 줘봐.
한강이 준 핸드폰에서 앨범을 열었다. 그리고 내가 나온 사진들을 모두 지웠다. 남겨두기 싫은 게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였다. 한강이의 삶은 한강이에게로.
어? 왜 그래 누나?
못 생기게 나왔어.
아냐 이쁘기만 한데 왜?
남자가 보는 사진 속 얼굴과 여자가 보는 얼굴은 다르거든?
뭐가 달라, 누나 얼굴 그대론데.
어이구, 넌 내 사진 볼 때 뭐부터 봐?
눈!
거 봐 눈은 다 똑같지. 잘 나오고 못 나오고가 제일 없는 게 눈이란 말야.
그럼 누난 뭘 봐?
자, 잘 들어뒀다가 꼭 써먹어.
첫째, 얼굴이 부어보이는가?
둘째, 잡티는 안 보이는가?
셋째, 눈을 감진 않았는가?
넷째, 머릿결은 흐트러지지 않았나?
다섯째, 몸이 뚱뚱하게 나오진 않았나?
여섯째, 옷차림이 어색하진 않은가?
일곱째, 얼굴이 커보이진 않는가?
여덟째, 분위기 있게 나왔는가?
아홉째, 브이라인은 살아있는가?
열째, 암만 봐도 이쁜가?
끝이야?
아니 그밖에도 뭐 눈곱은 없나 고춧가루가 잇새에 끼지 않았나... 더 해?
후후,
왜 그렇게 느끼하게 웃고 그래 징그러.
누나 귀여워.
헐, 취향도 독특하다.
하여간 그 짧은 새 그걸 다 본다고?
당근, 여자들의 눈은 스캐너야. 쫘악 한 눈에 뽑아버리거든.
대단해 여자들은 정말.
뭐가?
그런 걸 순식간에 다 보는 재주도 정말 놀랍고,
또?
그 누나 아픈 거. 그걸 한 달에 한 번씩 한다는 것도 놀라워. 아니 아파. 무척 아파. 여기가 미어져.
한강이가 자기 가슴을 콕콕 누르며 말했다.
아이고 귀여워라. 누나 생리통을 다 걱정해주고 우리 강아지 정말 다 컸네.
강아지가 다 컸으면 개야? 나 개?
한강이가 킁킁 흉내를 내며 말하는데 그만 빵 터졌다.
하하하하하후하하하
하필 그 때 통증도 빵 터졌나보다. 무릎에 힘이 빠지며 영화관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16.
*
한강이가 그런 나를 들쳐 업고 병원으로 뛰었다. 말리려고 해도 막무가내. 영화관 근처의 병원에 기어코 뛰어들었다.
저기요, 여기 좀 봐주세요.
간호사가 급히 이동침대를 대놓고 나를 눕혔다. 한 사람은 의사에게 연락하고 한 사람은 준비를 하며 한강이에게 물었다.
환자분 어디가 아픈 거예요?
생리통이요.
네?
그때 고통은 어지간히 지나간 상태였다. 간호사가 내 상태 체크를 위해 가까이 왔을 때 난 한쪽 눈을 찡긋했다.
간호사가 내 윙크를 보더니 눈을 크게 뜨며 바라보았다. 난 고개를 살짝 흔들며 입모양으로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간호사를 불렀다.
언니 잠깐만요,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의사에게 식사 천천히 하고 오세요! 라고 전화했다. 한강이가 어리둥절해서 간호사에게 뭐하냐고 따지는데 내가 일어났다.
생리통으로 병원까지 업고 뛴 건 네가 처음일 거야.
어 누나? 괜찮아?
괜찮지 그럼. 죽기라도 할까봐?
에이 말이라도 그런 말 하지 마!
아무튼 얼른 나가자. 부끄럽게 시리.
업혀 들어가서 걸어 나왔다. 병원 앞에서 차를 대놓고 순대 파는 아줌마가 그런 우리를 멀뚱하게 보고 있었다.
순대 먹을래?
순대도 먹고 납작 만두도 먹고 새우튀김도 먹었다.
와 두 사람 정말 많이 닮았네. 천생연분은 딱 닮는다더니.
그래요? 하하.
한강이 얼굴에 웃음이 핀다. 저 말이 그렇게 좋은가?
그럼요, 애도 아주 이쁘것어. 그냥.
애요?
애 들어서서 온 거 아뉴?
아줌마가 가리키는 데를 보니 산부인과라고 적혀있었다.
에효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게 아니고 생, 큭.
한강이가 아쉬워한다. 팔꿈치로 옆구리를 쿡 찔렀다.
네, 하하하 애가 생겨서요.
내가 웃으며 인정하자 아줌마가 신나서 대답했다.
에이그 젊은 사람이 기특허네. 요즘은 왜들 그렇게 떼려고 들락거리는 젊은 사람들이 많어. 자그만 해도 그게 다 생명인데 쯧쯧, 불쌍해서 못 보것어. 그냥.
네. 하하하
순대 차를 나와 걸으며 말했다.
한강, 우리 애 가질까?
진짜? 나 군대 들어가 있는 동안 혼자 어떻게 하려고?
아니 가짜야. 하하.
에이 칫,
아이라, 정말 한강이와의 사이에 태어날 아이는 예쁘고 똑똑할 것 같다. 그런 아이 여럿 낳아서 잘 기르며 행복하게 살고 싶다. 하지만 택도 없는 얘기다. 꿈도 꾸면 안 된다. 우리 아기는 틀림없이 불행해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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