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17.
하지 말 것을 하지 말아야지
그게 사랑이지
*
아침에 한강이 미역국을 끓였다.
한강, 웬 미역국이야?
오늘, 누나 생일.
한식구를 나와 독립한 후로는 생일을 챙겨 먹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것도 참 해보고 싶었는데... 정말로 한다. 하고 싶은 걸 한다는 게 이런 거였구나.
아 벌써 그렇게 됐나? 고마워.
벌써 그렇게 됐다. 통증이 오는 시간이 갈수록 빨라지고 늘어나서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이제 금세다.
이야, 맛있네. 요리 정말 잘하잖아?
국물 맛이 일품이다. 고기도 야들야들 잘 넘어간다. 먹어 본 미역국 중 가장 맛있는 미역국을 한강이가 끓여줬다.
독립생활 몇 년인데. 게다가 말했잖아. 누나를 위한 건 뭐든. 하하.
음식도?
누나 요리 못 하는 거 알거든? 예전에 떡볶이 한다고 프라이팬 다 태워먹고,
야 그건 예전이지 지금은 나도 한 요리 한다고!
그래? 잘 됐다. 누나가 해주는 밥 먹고 싶어.
좋아 내일은 내가 해주지!
기대할게!
밥을 먹고 한강이가 케이크를 꺼내 불을 붙였다. 스물다섯. 촛불을 한 입에 껐다. 스물다섯의 초가 훅 꺼졌다.
선물도 꺼냈다. 실 반지다.
요즘 금값도 비싼데... 얼마 줬니? 돈도 없으면서.
14K야. 안 비싸. 짠!
한강이 제 손가락에 낀 실반지를 딱 들어 보이며 웃었다.
커플링? 하하.
커플링도 해보고 싶었다... 이것도 했다. 거창하고 비싼 것들이 아니라 삶속에서 즐겁고 기쁘고 행복한 소소한 것들, 난 이런 것들의 존재를 이제야 생생하게 누리고 있다.
한강! 운전할 줄 알아?
그럼 당연하지. 누나를 위해 면허는 필수! 뭐... 지금 차는 없지만.
잘해?
대리운전도 했었어. 알바로.
좋아, 렌터카 빌리자.
하고 싶은 걸 하자,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은 건 많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건 얼마 없었다.
적금을 해지하니 돈은 충분했다. 펑펑은 아니더라도 소소하고 예쁘고 즐겁게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게.
누나 뭐 타고 싶어?
벤츠 타보고 싶어.
벤츠? 비쌀 텐데.
나 돈 모아놔야 돼? 한강이가 먹여 살리는 거 아녔어?
당연히! 먹여 살리지. 당연히. 근데 나 없이 누나도 2년은 살아야 하잖아.
2년, 2년... 뭐 그 정도 못 버티겠니?
렌터카에서 벤츠 중에서도 최고급이라는 차를 빌렸다.
자, 한강의 여신님 어디로 모실까요?
18.
사랑을 잡으려고 마음을 뿌려놨더니,
그리움만 벗어 놓고 갔네.
*
바다 갈까?
바다? 좋지, 자 타세요!
한강이 문을 열어준다. 난 우아하게...는커녕 타다가 머리를 부딪쳤다.
아코, 우아도 해본 사람이나 하는 거지. 히히 얼른 출발!
한강이가 머리 부딪친 곳을 입으로 호~ 해주고 토닥토닥했다. 내 얼굴은 아마 누가 봤으면 헤벌쭉했을 거였다.
자, 누나 안전벨트!
안전벨트도 채워주었다. 이거 드라마에서 보고 나도 해보고 싶었다.
자, 차비!
한강의 볼에 쪽 입을 맞췄다.
누나, 벌써 내리게?
아니, 그냥 해봤어. 가기나 해 인마!
저절로 웃음이 터졌다. 동해로 가는 길, 날은 이제 슬슬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노을이 빨간 하늘을 물들였다. 아름답다.
아! 그리고 잠들었나보다. 통증이 다녀갔나? 왜 기억에 없을까. 세상은 깜깜하고 차 안에만 불이 켜져 있었다.
어디야?
가까운 휴게소에 세웠어. 누나. 괜찮아?
뭘. 늘 그랬잖아. 하하. 나 잠들었나봐?
아니 잠든 게 아니라 기절했어.
기절?
그래. 생리통이란 거... 원래 이렇게 오래 가? 학교 다닐 때 애들 보면 2-3일, 길어야 일주일인 거 같았는데?
아무리 바보 강아지라도 눈치 챌 만큼 잦은 고통, 한강이와 함께 한 2주 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생리통이 찾아왔으니 진짜 우스운 생리다.
그런 건 또 언제 그렇게 자세히 봤냐. 난 원래 그래. 여자마다 이건 다 달라.
자세히 보긴, 스터디 하던 여자 애들 지네들이 그냥 말하던데?
어이구, 아주 인기 많았나보다. 하긴 우리 강아지 정도면 최고의 남편감이지. 그게 바로 꼬시려고 하는 거야. 누가 자기 생리에 대해서 그렇게 시시콜콜 얘길 해. 여자가. 하하하.
정말? 난 그런 줄도 모르고.
꼬르륵, 한강이도 나도 생일 밥 먹고 아직 아무것도 안 먹었다.
배고프지? 우리 휴게소 우동 먹자.
휴게소 우동, 이것도 해보고 싶었던 일. 한 달이 아주 복 터졌다. 이렇게 원껏 하고 싶은 걸 다 하다니. 하하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