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19.
*
부자들이 이래서 벤츠를 타나보다. 얼마나 편안하면 자꾸 잠이 왔다. 시간이 깡총깡총 산토끼처럼 뛰는지 눈을 감았다가 뜨면 한 시간이 지나고 또 뜨면 두 시간이 지났다.
난 계속 꿈을 꾸고 있었다.
한강이가 달이 크다! 할 땐 큰 달을 보았다. 한강이가 바다다! 할 땐 도로 옆을 따라 같이 달리는 바다를 보았다. 새벽이 오는 바다, 어스름한 바다 사이로 파도가 흰 이빨을 드러냈다. 이름이 기억 안나는 커피 집에 선 것도 같았다. 한강이가 커피를 마시라고 주는 걸 받아 한 모금 마신 꿈도 꾸었다.
누나! 누나? 누나? 누나!
응? 으응? 다 왔어?
어, 다 왔어. 괜찮아?
그래. 생리하면 늘 피곤해.
그래. 알았어! 생리통 참... 바다야. 누나.
앞 유리창 너머로 해가 뜨고 있었다. 어떻게 용케도 자리를 잘 잡았는지 정통으로 보인 건 아니지만 소나무 숲 옆으로 해가 뜨고 있었다. 힘을 내야지.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코 울 강아지 고생했다. 누난 계속 자기만 해서 미안. 해 뜨는 거 나가서 봐. 누나는 조금 더 앉아 있다가 나갈게.
그래 누나. 조금 쉬고 있어. 나 뭐 먹을 것 좀 사갖고 올게. 하하.
한강이가 나가서 기지개를 켰다. 해를 받아 듬직한 어깨, 길쭉한 팔과 다리. 멋지다. 해를 향해 뭐라고 떠드는 게 보였다. 웃음이 절로 나온다. 자꾸 잠이 와서 기운이 없었지만 내 얼굴은 새 햇살을 받아 발그레하게 웃고 있을 거였다.
바다도 처음,
보고 싶었다. 바다에 와보고 싶었다... 했다.
바다에서 해뜨는 것도 처음,
해보고 싶었다. 바다의 해는 어떤지 티비에서만 봤지 이렇게 맨 눈으로 본 건 처음이다. 차에서 해 뜨는 걸 보는 것도 처음, 이것도 참 멋진 일이다.
내 남자와 바다에 온 것도 처음, 우리 강아지지만 어쨌든 내 남자, 생각해보니 어제 아침부터 온통 새것이다. 새것투성이 참 좋다. 새 거 냄새. 나는 코를 킁킁거렸다. 바다 냄새 해 냄새 차 냄새 우리 강아지 냄새... 흐음, 좋구나.
또 꿈인가보다. 이런 모든 건 내 인생에 없을 줄 알았다. 난 너무 오래 자고 있는 건 아닐까.
덜컥, 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난다. 한강이가 컵라면 두 개를 조심스럽게 들고 있다가 차 지붕에 내려놓았는지 어디로 사라지고 내 볼을 어루만진다. 컵라면의 온기가 손바닥에 남아 볼이 따스해졌다. 참 좋다.
꿈이라기엔 너무 리얼해서 나는 하하 웃었다. 깨지 않았으면 좋겠다. 깨기 싫다. 웃었는데 눈물이 난 적이 있었다. 좋아서 눈물이 흐른다. 아름다워서 눈물이 흐른다. 행복해서 눈물이 흐른다.
20.
*
잠에서 깨면 강아지가 또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눈으로 나를 보며 무슨 생리통이 이래? 라고 할 것 같아서... 대답할 말이 이젠 바닥을 드러내서 꿈인데도 궁색해서 조금,
오래 잤나보다.
달아!
눈을 떴는데 강아지가 아니고 아빠다. 아빠에게 대답할 말은 준비하지 않았는데 뭐라고 해야 하나.
달아 이 놈! 아빠 가슴에 못을 박는 구나. 이놈 이놈.
아빠에게 할 말은 준비하지 않아서 그냥 배시시 웃고 한강이를 찾았다.
강이 찾니?
내가 고개를 끄덕이니 아빠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강이는 어제 입대했어. 걱정 말고 아프지 말라고 하더라.
누나, 잠이 너무 길어. 무슨 생리통이 수면제냐. 입대 날짜가 와서 일단 가는데 누나 모르게 입술에 키스 하고 가.
꿈에, 꿈에 한강이가 그랬다. 내 남자가 걱정하지 말라고 그랬다. 그래서 난 걱정 안 했는데. 우리 강아지 입대했어.
아빠는 한강이를 잘 보살펴 줘요.
강이는 잘 있어. 이 녀석. 넌 어쩌자고 이렇게 될 때까지 아빠에게 말도 안 하고.
아빠의 눈물이 터졌나보다. 끊임없이 눈물이 나온다. 우리 아빠 어떡하나.
아빠, 나요. 하고 싶은 거 거의 다 했어요. 할 수 있는 거 거의 다 했어요.
그래. 그래 달아. 그래. 잘 했다. 잘 했다.
아빠는 울고 또 울었지만 나는 꿈인지 생시인지 도무지 모르겠어서 그저 아빠의 손을 꼭 잡아주기만 했다.
아빠,
응?
사랑해요.
우리 달이. 사랑해. 꼭 달이가 낳은 내 손주 안아보고 싶었는데.
아빠가 그렇게 울면 나도 울어야 하는데 하고 싶은 거 다 하는 꿈인데도 눈물이 안 나. 그러니까 울지 마 아빠.
그래 흑 안 울게. 안 울게. 흐흐흑
에이 아빠. 아빠!
아빠! 우리 강아지, 내 남자. 잘 부탁해요. 아빠!
달아? 달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