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10.
소중할수록 아껴
입안에서 굴려야 할 말이다.
사랑한다는 말
*
그랬구나. 우리 강아지 밤새 고생 많았네.
진짜 말해봐. 어디 아프냐니깐.
악몽을 꾸었나봐, 꿈속에서 얼마나 아픈 꿈이었는지 아주 끔찍했어. 이제 멀쩡하잖아. 119불렀으면 얼마나 민망할 뻔 했어.
한강이가 고개를 저었다.
꿈이라기엔 그 고통이 너무 생생했는데,
꿈이라면 꿈이지 뭘 그렇게 따지냐. 근데 너 나 잘 때 혹시 딴 생각 품은 거 아냐?
한강이 얼굴이 빨개졌다. 더듬더듬 말하는 모습이 뭔가 딱 걸린 것 같았다. 하여튼 화제 바꾸는데 성공!
따 딴 생각은 무슨, 나 그런 사람 아니거든.
왜 더더더 더듬을까. 하하하. 입술이라도 훔쳤어? 에이 훔칠 거면 다 훔쳐야지 그거로 되나.
응? 다?
떨기는. 하하. 농담이야. 막상 하라면 못 할 강아지가.
한강이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
누나는 내가 못할 거 같아?
엇? 읍
한강의 입술이 내 입술을 덮었다. 첫 키스를 강아지에게 빼앗기다니.
밀어내려고 했지만 힘이 없었다. 아니 힘이 안 들어간다. 난 고개를 흔들어 한강이 입술을 떼어내고 눈을 바라보았다. 한강이의 눈은 욕망에 번들거리는 개눈깔 공장 감독과는 다르게 맑고 깨끗하다.
한강,
응 누나
나 갖고 싶니?
으 응 어 그게
가져.
하고 싶은 걸 하라고 그랬다. 하고 싶은 게 뭔지는 모르지만 하고 싶게 만드는 걸 해도 되지 않을까.
잠옷 단추를 끌렀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이런 기다림은 어떤 느낌일까 늘 궁금했었다.
설렘 초조함 기대 흥분 불안,
응?
한쪽 눈을 살짝 뜨고 보니 한강이가 나를 보고만 있다. 아니, 눈을 꽉 감고 주먹에 힘을 쥐고 있다.
뭐하니?
대답 없이 숨을 고르고 말하는 게 귀여워서 웃었다.
아직, 아직 누나에게 손 댈 수 없어,
왜?
그건... 그거,
이리 와,
응?
이리 와봐.
주춤주춤 한강이가 다가섰다. 대학씩이나 졸업한 녀석이 꼭 9살 소년 같다. 나에게 마론 인형을 건네주는 한강이는 얼굴에 긁힌 자국이 수두룩했다.
11.
미숙한 사람이
익숙한 사람이 된다.
배우지도 않았는데 속속들이,
파고드는 것
*
한강아, 너 얼굴이 이게 뭐야. 왜 싸웠어? 어? 누나가 싸우지 말라고 그랬잖아. 누나 속상한 거 보고 싶어?
한강인 아무 변명도 하지 않고 그냥 인형 든 손을 흔들었다. 내가 인형을 받자 헤~ 하고 웃었다.
아이그 하여튼 못 말려, 이건 어디서 났어? 정말 이쁘다. 고마워~ 울 강아지,
나중에 들어보니 그 마론 인형 열 살 한 별이에게 뺏길 뻔 한 걸 싸워서 지키느라 얼굴이 그 모양이 됐다고 했다. 나 주려고.
그 마론 인형이 서랍장 위에서 주춤주춤 다가서는 한강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한강이를 꼭 끌어안아주었다. 하고 싶은 대로,
서울대생 한강이가 내 품에 안겨있다.
9살 한강이가 내 품에 안겨있다.
난 한강이에게 입술을 내밀었다. 한강이가 주춤하다가 다시 입술에 키스했다. 그리고 가슴에 손을 댔다. 그냥 대기만 했다가 제풀에 놀라서 화들짝 손을 떼었다. 입술도 같이 떨어졌다.
나는 궁금한 눈으로 한강이를 보았다.
내가,
응?
내가 진짜 자격이 있을 때 누나를 가질 거야. 진짜 남자가 되었을 때, 책임질 수 있을 때!
그게... 그게 언젠데?
군대 갔다 와서,
어?
군대 갔다 와서 정식으로 프러포즈 할 거야. 정식으로. 반지도 사고 목걸이도 걸어주고.
아... 그래, 그래.
누나는 싫어? 지켜준다는데?
아효 싫긴. 감지덕지지. 하하하. 왤케 구닥다리 같아. 너 스물셋 대학 졸업한 남자 맞아?
맞지. 하지만 아직 한 번도 안했어. 여자랑은 한 번도 안했다고.
여자랑은 안했으면 혼자는 했어?
그 그건, 그건 다 하는 거야. 다!
진짜? 하하하 불쌍해라. 울 강아지.
누나는 마 많아?
뭐?
그거.
나? 무진장 많지. 인마. 나이가 몇 갠데. 하하.
아... 뭐... 그래도 괜찮아. 누나는 누나니까. 대신 이제부터 내 거니까 딴 남자랑 하면 안 돼?
많긴 개뿔. 이놈의 강아지야. 네 덕분에 처녀귀신 될 판이야. 인마. 하하.
이 말은 하지 않았다. 이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켜준다는 마음, 그건 한강이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걸 해야 살맛나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