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단편소설

by 수요일

7.
하루가 24시간이란 걸 아는 몸이니
아침 점심 저녁이라는 일상의 때를
그렇든 아니든 기억하게 되지.
십년을 살았든 백년을 살았든
몸시계는 때에 맞춰 돌아간다.
마음시계는 왜 이래,
태엽을 안 감아도 건전지를 안 갈아도
저절로 그리움으로만 돌아간다.
*
어휴... 저절로 한숨이 샌다.
우앗,
답답해서 돌아서다가 그만 깜짝 놀랐다.
아 뭐야. 인마!
어, 달,
짜샤, 뭔가 허전하다?
누나,
그렇지. 이제 아쉬움이 채워지네.
이 녀석은 한강, 올해 졸업하고 군대에 간다. 졸업하고 가는 군대라니 황당하지만 장학금으로 마치다보니 그렇게 된 거다. 한식구 고아원에서 처음 대학 간 녀석, 대학도 그냥 대학이 아니다. 자그마치 서울대에 갔다. 아빠가 없는 살림 끌어 모아 잔치를 해줬다. 그리고 곧 군대에 간다.
얌마, 군대 간다며 여긴 왜 와. 부지런히 놀아야지.
군대 가니까. 누난 여기 왜 와.
누나야 뭐, 뭐, 누 누난 군대 안 가잖냐.
안 웃겨. 근데 왤케 해쓱해?
아, 하하 다이어트를,
다이어트는 아무나 하냐. 잘 먹고 잘사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지.
야 야야. 나 잘 먹고 잘 살거든!
아 됐어. 잠깐만 기다릴래? 아빠 만나서 의논 좀 드릴게 있는데 금세 끝나. 누나 오랜만에 봤는데 소주 한 잔 사줘.
소주?
응. 군대 가기 전에 누나에게 꼭 할 말이 있었어. 돼지갈비도 먹고 싶고.
오케이. 누나가 그 정도 못 하겠냐. 후딱 갔다 와.
진짜 가면 안 돼?
갔다 와 인마,
한강이가 안으로 들어갔다. 뭘 할까. 그냥 서있자. 그냥. 그냥.

8.
낮을 돌던 그리움이
눈으로 입으로 손가락 끝으로 밀려나온다.
웃음 하나 눈짓 하나
자동 실행되는 밤들
*
잠시 후 정말 금세 한강이 나왔다. 우린 묵묵히 아니, 한강이 묵묵히 앞에서 걷고 나는 뒤에서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이야 코찔찔이 강아지가 벌써 군대를 가네. 언제 남자가 된 거야? 멋진 사나이야!
정말?
어?
멋진 사나이!
아니 이 녀석이 왜 갑자기 이러냐. 나는 한강의 그 질문에 아무생각없이 대답했다.
당연하지. 이 누나가 업어 키운 우리 강아지가 어느새 남자가 됐다니 뿌드읏한데?
이름이 강이라 별명이 강아지다. 우리 강아지.
쳇,
한강이가 고기 집으로 들어갔다. 종업원이 자리를 안내해주고 기다렸다.
돼지갈비,
아냐. 소고기로 줘요. 소고기 갈빗살 2인분이요!
왜? 비싸잖아.
별 차이 안 나 인마. 군대 가는 길에 사주는 건데 걱정 말고 배 터질 때까지 먹어.
여기요, 소주도 한 병요!
어쭈?
누난 소주 안마시던가?
안 마시긴! 없어서 못 먹는다.
좋아,
고기가 나오고 술이 나오자 병을 따서 나에게 한 잔 먼저 따르고 자기 잔에 따른다.
다음 잔은 내가 따라줄게. 남자가 혼자 술 따라 마시면 바람둥이래.
그래? 군대 갈 건데 바람은 무슨.
언제 입대하니?
한 달 후.
한 달?
응,
아 그렇구나.
한 달 하필. 한 달이다. 잊고 있다가 생각나버렸다.
누나!
응?
건배!
술을 마셔도 되나. 아냐. 하고 싶은 걸 하랬다. 뭐 어때. 마시고 죽으나 아파서 죽으나.
건배~! 쭈웁, 얼레 원샷? 천천히 마셔.
한강이가 소주병을 들기에 받아서 잔에 따라주었다.
떨지 마 아까운 술 넘쳠마.
다시 원샷. 그리고 곧바로 다시 한 잔을 더 마신 한강이 내 눈을 똑바로 뜨고 말했다.
누나! 나 누나 사랑하는 거 알지?
어? 누난데 그럼 쨔샤 당근 사랑해야지.
아니 여자로. 누나가 아닌 한 달이를.
야야 왜 이래. 여기 팔 좀 봐라 닭살이 좌악 돋는 거 안 보이냐.
난,
한강이 내 눈을 보며 한 글자씩 말했다.
일곱 살 때부터 누날 사랑했어.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변하지 않고.
진짜?
응,
잘했네.
아 뭐야. 농담으로 듣는 거야?
아냐, 아냐. 잘했다. 진심으로 고맙고 신난다. 어디 이 실업계 출신 한 달이도 서울대 애인 좀 가져보자. 이게 웬 장땡이냐.

9.
마음에 담아두면
눈물도 아픔도 행복도
모두 그리움이 된다.
드러내지도, 내뱉지도 못 하고
마음 안에서 소근소근
나와 이야기하는 너는
언제나 마음 안에서 행복하다.
*
누나! 장난 아니야. 내 마음 안에서 누나는 늘 내거였어. 누날 갖기 위해 죽어라 공부했어. 그래서 서울대도 간 거야. 누나는 이제 내가 행복하게 해줄게.
한강이의 마음이 전해졌다. 고마웠다.
짜샤, 건배!
한 잔을 단순에 마셨다. 불쑥 눈앞에 고기가 내밀어졌다. 입으로 받아먹자 좋아하는 한강이다.
누나, 내가 열심히 해서 여기까지 왔으니까 누난 받아들여서 누리기만 하면 돼. 알았지?
얌마 누나에게 애인이 있으면 어쩌려고?
자신 있어. 그 누구보다 누나 행복하게 해줄 자신.
놀고 있네. 사랑이 자신으로 되는 거냐?
그럼 진짜 누가 있어? 누구 사랑해?
어,
진짜? 누군데?
안 알려줘.
쳇!
한강이의 하늘이 무너졌다. 얼굴에 먹구름이 잔뜩 낀다. 금방 비가 내릴 것 같다.
쳇!
한강아, 우리 강아지야.
그렇게 부르지 마. 이제 사나이라며. 나 군대 가거든.
알아 알아. 군대 가는 거.
그게 걱정이었어. 난.
군대? 요즘은 괜찮다던데?
그거야 아무래도 상관없어. 군대 가 있는 동안 고무신 거꾸로 신을까봐.
아주 웃겨, 김칫국물 잘 마시네.
하여튼 그랬다고. 아무튼.
그래. 세상에 잘난 놈 아무리 많아도 임자는 다 따로 있는 법이거든. 서울대가 아니라 하버드를 나왔어도 말이야.
그렇구나.
또 한 잔을 비웠다. 나도 비웠다. 한강이도 비우고 나도 비우고. 결국 취해버렸다.
누나?
어렴풋이 한강이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냥 자고 싶었다. 하고 싶은 걸 해라. 난 지금 자는 게 하고 싶은 거였다.
아으 속 아파.
깨어보니 새벽을 넘어 아침으로 가는 시간, 머리를 흔들고 일어나 앉았다.
어?
한강이가 한 편에서 쭈그리고 잠들어있다. 집을 알았던가.
한 강!
음, 음? 누나 일어났어?
응. 너 여기 왜 있어?
누나가 집 알려줘서 업고 왔잖아.
진짜?
응, 근데 누나
어?
어디가 그렇게 아픈 거야?
어? 누가 아파?
밤새 누나 죽는 줄 알았어. 119도 못 부르게 하고 아주 슬프고 괴로웠어.
한강이 눈에 눈물이 그렁거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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