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단편소설 한 달

by 수요일

5.
외로움은 내 것이니
내가 견디면 괜찮다.
그리움은 네 것 이라
내가 견뎌도 어렵다.
*
화장실에서 고통을 버티고 있는데 몇 사람이 노크를 했다. 문 아래로 대걸레가 쑥 들어왔다.
안에 누구여? 집에 안 가?
청소 아줌마다. 이를 악물고 참는데도 신음소리가 저절로 잇새에 갈려 나왔다.
끄으응
변비여? 후딱 일보고 나와야! 나도 치우고 집에 가게~ 언능,
아직 고통의 뒤끝이 잔잔하게 이어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견딜만해졌다. 일어나 나갔다. 아줌마가 나를 보고 혀를 찼다.
얼렐레 달이 아녀? 저 땀 좀 봐, 이거로 닦어. 응?
아줌마가 수건을 꺼내 주었다.
고마워요~ 하하
수건으로 땀을 대충 훔치고 밖으로 나왔다. 땀에 젖은 옷을 겉옷으로 가리고 걸었다. 조금씩 고통이 물러난다.
걸으며 생각을 계속했다. 하고 싶은 게 뭘까. 회사는 이대로 다닐 수 있을까.
회사는 아무래도 무리 같았다. 정리를 해야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굳어갈 때 문득 한식구 고아원 앞인 걸 보았다. 자기도 모르게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아빠~! 달이 왔어요.
고아원 식구들은 모두 신부님을 아빠라고 불렀다. 모두 아빠 성을 땄으니 아빠가 맞지.
달이 왔구나. 하하.
아이들이 우르르 인사를 했다.
달 언니, 안녕하세요!
그래, 들아, 산아, 눈아, 풀아, 바다야 안녕?
갑자기 와서 오늘은 들고 온 게 아무것도 없다. 지갑에서 만원을 꺼내 주고 맛있는 거 사먹으라고 했다. 아이들이 신나서 달려 나갔다. 책상을 보니 내용증명 같은 게 보였다.
이게 뭐예요?
아, 별거 아니다. 근데 너 왜 얼굴이 이렇게 상했니? 어디 아파?
아빠를 보니 갑자기 상의를 하고 싶어졌다. 한 달 남았다면 아빠는 하고 싶은 게 뭘까.
아빠는, 글쎄 그렇다면 아이들 모두 데리고 여행이라도 하고 싶은 걸. 하하
아빠가 대답하며 웃다가 문득 놀라서 물었다.
달아?
왜요?
그게 무슨 말이니? 한 달이 남았다니? 네 얘기구나? 무슨 일인데?
아녜요. 그냥요. 하하. 근데 이건 진짜 뭐예요?
내가 서류를 가리키며 다시 물었다.
이곳을 비워달라는 구나. 재개발을 하겠단다.

6.
나에게 속하고도 속수무책이다.
심장에 머물러 뛸 때마다
모세혈관 끝을 돌아
손끝 발끝까지 저릿저릿한 그리움,
창문을 열고 답답한 숨을 내 쉬듯
가슴을 열고 가득 고인, 그리움을
내쉬고 싶다
*
여길 비우라고요?
그렇단다.
그럼 어디로 가요?
알아보는 중이야, 근처 교회에 이야기해서 방법을 찾아보는 중인데 아직은 어렵구나.
아빠는 신부지만 사랑 때문에 신부님을 그만두었다. 그래도 아빠를 아는 사람들은 신부님으로 부른다. 엄마는 아빠의 그런 사랑에도 불구하고 돌아가셨다. 내가 열두 살 때. 그리고 내내 아빠는 다시 신부님처럼 혼자, 아니 아이들과 산다.
어떡해요.
방법이 있을 거야. 걱정하지 마라. 아빠가 누구냐. 하하하.
아빠! 시름을 한가득 담은 눈으로 아무리 하하 웃는다고 해도 안 통한다고요. 에휴... 애들은 어쩐대요.
아빠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달이는 열심히 살고 잘 먹고 건강해야지. 얼굴 보니 아빠 마음이 너무 안 좋구나.
괜찮아요. 하하.
그 얼굴로 아무리 하하 그런다고 아빠에겐 안 통한다는 거 알지?
칫 바로 베껴 쓰기가 어디 있어요~, 따라쟁이 아빠!
그러니까 아빠 말대로 잘 먹고 잘 지내야지. 아빠랑 엄마가 처음으로 만난 천사가 3살짜리 달이였는데. 첨 봤을 땐 얼굴이 달덩이 같아서 이름도 달이라고 지어줬더니 이젠 아주 꼬챙이가 됐네. 으이구.
아빠가 두 손으로 볼을 쓰다듬는다. 난 실눈을 뜨고 말했다.
아빠, 손톱달도 달이거든요?
그래 우리 달이 잘났다. 아주 잘났어.
고아원을 나와 주변을 둘러보았다. 좁은 문엔 작은 나뭇조각에 한식구 고아원이라고 적힌 문패가 보인다.
양쪽으로는 원래 고물상이나 재활용품을 분리수거해서 파는 곳들이었다. 아직도 쓰레기 냄새로 매캐하다. 이곳이 이대로 있을 거란 생각은 절대로 안 했었다. 아무리 철길 옆이지만 그래도 용산 한복판 금싸라기 땅이었다.
주변에 늘어서 있던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장은 어느새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아이들은 매일 쓰레기 더미에서 놀다가 인부들에게 혼이 나고는 했었다. 그 중에 인심 좋은 사람을 만나면 멀쩡하게 버려진 장난감을 잔뜩 얻어오기도 했다.
머리카락만 조금 빠진 마론 인형이 내 차지가 된 것도 그래서였다. 그 마론 인형은 아직 나와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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