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없는 역
급행을 타다가 일반열차를 타면 없는 역이 나타난다. 역 이름도 낯설고 마을도 낯설다. 없는 역에 내려서면 시간도 느리고 길도 보이고 가을도 보이고 바람도 마주친다. 없는 역엘 내리고 없는 사람들과 지나치며 없는 가게에서 담배도 사고 커피 대신 커피우유.
사람 뒤통수만 보며 꽉꽉 눌리는 대신 빨리 가나. 느슨하게 풀어져 있는 듯 없는 역엘 들를까. 사는 일도 이같다. 빨리 가서 빨리 해결하고 빨리 누리고 빨리 살고 빨리 가거나 그냥 느리게 가거나 말거나 알아서 가게 놔두거나. 당연한 결론이 현실을 만나면 바보 같아진다. 요령 만땅 현대인 대신 그냥 바보.
몸이 느려지니 생각도 느려터져서 결론이 쉽게 나질 않는다. 이건 이상보다는 타성. 이때껏 살아온 타성의 나이가 바꾸는 걸 용납하지 않으니까. 살아온 대가란 이런 것이다. 이렇게 없는 역을 남은 생애도 지나치게 한다. 그래도 안고 가야지. 이 빠르기만 한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