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서기에서 나온 남자

저녁 한 끼

by 수요일

믹서기에서 나온 남자

내내 비에 바람이 섞이더니 바람에 비가 섞인다. 내내 사랑에 사람이 섞이더니 사람에 사랑이 섞인다.

나는 섞인 쪽으로 물들어가다가 어느새부터인가 섞어 물들이려고 하네. 사랑에 사람이 섞일 때는 물드는 게 당연했는데 사람에 사랑을 섞으려니 물드는 일이 쉽지 않은 것이다.

비에 바람이 섞일 때는 비를 피하는 일이 바람을 타면 되었다. 바람에 비가 섞이니 바람 속이 온통 비라 바람에 섞인 비를 맞는다.

자연의 시간은 낡을수록 새로 흐르고 사람의 시간은 낡을수록 어느 이끼 어느 풀뿌리에 걸려 멈춘다. 어디에 섞일까. 어디와 섞을까. 속할수록 넓어지고 속하게 할수록 좁아진다.

넓어진다는 게 가까워지는 게 아님도, 섞이는 일과 섞으려는 일이 얼마나 다른지도 믹서기에서 나오니 믹서기가 얼마나 좋았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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