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명
쫀쫀하게 피는 꽃
기억은 유월이었어.
하지만 십이월에도 장미가 살고
팔월에도 벚꽃이 지는 걸 보면
꽃들은 분명 항명하고 있다.
나도 항명하고 있어.
꽃이 피는 것처럼 아름답진 않아도
지는 꽃마냥 추하기는 할 테다.
이만큼이면 나도 꽃만큼은 할 테다.
미처 피우지 못한 꽃들이
모아놨던 욕망을 활짝 터트린다.
응축된 힘이라 더 오래, 더 향 짙게
더 쫀쫀하게 살 거야.
배우자 쫀쫀하게 살기로.
소심해서 쫀쫀해도 좋고
조밀조밀 다닥다닥 살아서 쫀쫀해도 좋아.
기억은 언제였는지 몰라도 있지.
지금은 기억마저 닳고 단 지옥
살아남는다는 일은 참 쫀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