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순간

아프리카 한 끼

by 수요일

여행의 순간


모든 순간은 기억된다.
심지어 몇 분 전 내 의식의 흐름은 몹시 위태로웠다. 어두운 방을 나서서 더 어두운 밖으로 나가는 것, 몇 분 전 나는 불안정한 심리로 방을 나서다가 코끝을 지나는 향기에 지난 순간이 떠올랐다.

코티지를 나선 새벽 5시.


아프리카인데 기온은 2도였던 그 새벽, 손가락만 한 가시가 달린 관목을 헤치며 차는 그 초원의 어느 한 복판, 그곳은 말하자면 어디든 한 복판이었지. 하늘과 땅은 정확하게 절반 씩 차지하고 땅에는 성에가 하얗게 서린 나무와 풀, 하늘은 온통 별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어디나 한 복판인 초원에서 내 코를 스친 누군가의 향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향수였을 것이다. 그 향기는.
지금도 그 때도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코티지의 주인인 백인의 향기는 아니었어. 스탭의 향기였던가, 아니면 흑인 서번트의 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주 짧은 향기의 여운이 코끝에서 아프리카의 초원을 불러왔다. 이렇듯 내 코엔 얼마나 많은 기억이 잠재해 다른 냄새를 잊게 하는 걸까. 난 냄새를 잘 맡지 못했어. 그건 못 맡은 게 아니라 무뎌진 거였다. 여행의 순간들을 잊을까봐. 나 사는 동안 힘겨울 그 순간을 여행의 순간으로 견뎌내란 걸까.

지나간 건 지나간 거다. 돌아오지 않아. 다시 간다 해도 그 느낌일까. 내가 변했고 그곳도 변했을 거야. 린든버그의 그 새하얀 코티지가 아직 있다 해도 백인 주인과 흑인 서번트들이 그대로 있다 해도 나의 순간은 그 때의 그 시간과 일치할 수 없다.

그래서 기억.
그래서 추억.
그리고 망각.

다음 여행은 어느 향기로 남을 순간을 만들어놓고 나를 기다릴까. 다음 사랑은 어느 향기로 남을 그리움을 예비해두고 나를 기다릴까. 무뎌진다는 것은 아마도


죽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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