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장편소설
16.불씨
- 이룬!
이룬이 힘에 부쳐 더 이상 발이 떨어지지 않을 때 기주가 달려들어 이룬을 밀쳤다. 그와 동시에 하이에나가 이룬에게 덮쳐들던 그대로 기주에게 달려들었다.
기주가 도끼를 휘둘렀지만, 하이에나가 그 도끼를 피하며 기주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려고 덤볐다. 한 손에 도끼를 든 기주가 다른 손으로 주둥이를 막으며 사력을 다해 도끼를 휘둘렀지만, 하이에나가 만만히 당할 리가 없었다. 기주와 하이에나가 사투를 벌이는 걸 보며 옆에 쓰러진 이룬이 비명을 질렀다. 기주가 결국 팔을 물려 선혈이 낭자하게 흘렀다.
- 아악! 진! 마리에!
이룬이 다급하게 주변을 둘러보며 진을 찾았다. 주인의 위급함을 감지한 진과 마리에 모두 각자 손에 뭔가를 들고 서로 다른 쪽에서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게 보였다. 마침내 이룬 곁에 도착한 마리에가 몽둥이를 치켜들고 이룬을 보호하고 진이 기주와 사투를 벌이는 하이에나에게 달려들었다. 진이 목책을 지을 때 쓰는 쇠기둥을 치켜들고 엉켜있는 두 존재 중 인간의 채널을 분리하고 하이에나의 채널을 향해 쇠기둥을 내던지려는 순간,
캥!
짧고 강한 신음성이 들리며 도끼에 찍힌 하이에나가 뒤로 쓰러졌다. 마리에가 급히 기주에게 달려갔다. 진이 기주를 스캔하고 마리에가 하이에나에게 물린 팔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숨을 몰아쉬던 기주가 다른 팔을 딛고 상체를 올려 이룬을 찾았다. 아직도 숨을 헐떡거리며 이룬이 기주를 바라보았다.
- 마리에, 기주는 어때?
마리에가 뭐라고 대답하기 전에 기주가 마리에에게 이룬을 돌보라고 말했다.
- 마리에, 나는 진이 치료할 테니 마리에는 이룬을 스캔하고 필요한 처치를 해.
마리에가 이룬을 스캔했다.
- 난 괜찮아. 기주. 지친 것뿐이야. 어쩌려고 그냥 달려들어. 큰일 나려고.
이룬의 말에 기주가 햇살처럼 웃었다.
- 난 이룬을 잃는 줄 알았어.
기주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마리에가 보고했다.
이룬님. 기주님은 물린 상처가 커서 일을 며칠 쉬고 안정을 취하며 치료를 계속해야 합니다. 이룬님은 신체에 상해는 없지만 놀라움과 공포로 인한 멘탈 데미지가 있고 PTSD가 우려되니 며칠간 안정을 취하는 게 좋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이룬이 말했다.
- 그래. 기주. 며칠 쉬자. 진! 광견병 메디컬 키트도 있어?
목장의 패밀리 로봇에게 기본 키트입니다.
진이 기주를 치료하고 잠시 후 두 사람 두 로봇이 하이에나의 시체 앞에 서서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잠시 생각하던 이룬이 진에게 물었다.
- 진, 동물을 죽이면 어떤 형벌을 받지?
3호 달에서 최대 49년간 노역형에 처합니다.
- 세 번째 달…
기주가 이룬을 돌아보며 말했다.
- 동물을 죽여도 벌을 받아?
- 기주. 특히 하이에나 같은 최종 포식자의 개체 수는 전체 생태계에 영향력이 커서 가장 큰 중벌을 받아요.
이룬이 말을 마치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기주가 같이 하늘을 올려다보지만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지금은 알 수 없을 것이다. 마리에가 눈을 들어 바라보았다. 하늘로 끝없이 올라갈 것만 같은 그곳에 정지위성 하나가 이룬과 기주. 그리고 하이에나를 향해 카메라를 가동하고 있었다. 모든 순간은 감시위성에 의해 신연방의 메인시스템으로 전송될 것이다.
- 이룬, 들어가서 좀 쉬어.
이룬이 고개를 끄덕이고 하늘을 한 번 더 흘깃 보고 마리에의 부축으로 집으로 향했다. 뒤에서 따라가던 기주가 잠시 멈춰 서서 죽은 하이에나를 한참 동안 보다가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 기주를 진이 뒤따르며 집으로 걸어갔다. 기주가 진에게 말했다.
- 예외조항은 없어? 이룬이 죽을 뻔했잖아. 정당방위 같은…
처벌은 정상참작이 없습니다. 단지 신연방에서 사망자 가족에게 큰 보상을 할 뿐입니다.
- 사망했을 때만? 그럼 49년 노역형 대신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나?
얼마 전, 관리자가 방문하여 전달한 이벤트가 있습니다.
- 이벤트? 뭐지?
10년 동안 별 지우개 조종사가 되면 최대 49년 노역형까지 대체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 조종사?
기주가 진의 말을 곱씹으며 집으로 향했다. 10년이라면 그나마 다행이야. 이룬에게 잘 말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