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잠JAM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요일 Oct 02. 2023

잠(JAM)18

SF 장편소설

18.엘리자베스


- 아빠

- 그래, 어서 와. 곧 올라가는 거지?

- 네. 가기 전에 뵈려고 왔어요.

- 인사해라. 지우. 네 학교 선배 엘리님이야.

- 안녕하세요. 지우입니다.

- 엘리예요.


(지우?) 어디서 들은 이름 같은데 떠오르지 않자 엘리가 당혹해할 때 지우가 인사를 꾸벅하고 방을 나갔다.


- 아빠요? 당신에게 저렇게 어린 아들이 있어요? 백 년이나 지났는데?


관리자가 지우가 나간 문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엘리는 더 많은 말이 입안에서 맴돌고 있었고 관리자가 뭐라도 말하는 순간 바로 튀어 나갈 준비했지만, 관리자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남은 와인을 조금씩 마시며 무언가 생각하는 얼굴을 하고 있어 엘리가 쉽게 말을 꺼내기가 어려워지도록 만들었다.


- 아니…

- 지우도 캡슐에서 자랐어요. 물론 우리 두 사람보다는 조금 일찍 깨어나도록 했지만.


아니, 왜 이렇게 멀쩡해? 엘리가 참다못해 입을 여는 순간, 관리자도 입을 열었다. 수면? 지우? 아 뭐 그럼, 말은 되네. 중얼거리는 엘리에게 관리자가 다시 속박 도구를 내밀었다. 엘리가 고개를 도리도리하자 관리자가 다시 속박 도구를 앞으로 쑥 내밀었고 엘리는 손을 뒤로 쏙 감추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 싫어요. 답답해서 죽는 줄 알았어.

- 엘리에게는 언니가 한 사람 있지요?

- 어? 그걸 어떻게 알아요?

- 당신은 엘리 슈타인, 언니는 베스 슈타인. 당신과 쌍둥이. 당신의 생활비를 대 주던 쌍둥이 언니.


엘리의 눈이 아련해졌다. 언니 소리만 나와도 마음이 울적했다. 학비와 숙소는 신연방에서 해주었지만, 생활비는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는데 언니가 커뮤니티에서 일하며 엘리를 뒷받침했다.


* * *


베스는 엘리만큼 똑똑한 사람이었다. 둘의 부모는 엘리와 베스가 어릴 때 사고를 당해 동시에 세상을 떠났다. 그때도 하이에나가 문제였다. 곁에서 노는 줄 알았던 아이들이 안 보여 두리번거리던 아빠의 눈에 아이들을 항해 몰래 다가가는 하이에나가 보였다.


- 엘리! 베스!


아빠가 다급하게 달려가며 아이들을 부르자 놀던 아이들이 방그레 웃으며 아빠에게 손을 벌리고 달려왔다. 아빠가 아이들의 앞을 두 팔을 벌려 막아서고, 그 상황을 보고 놀란 엄마는 삽을 집어 들고 무작정 달려들었다. 아빠가 뛰어드는 하이에나를 어깨로 밀쳐 물리치는 동안 틈을 노리던 다른 한 마리가 아빠의 어깨를 물었다. 이어 나가떨어졌던 다른 한 마리가 목을 노리고 달려들 때 엄마가 삽으로 하이에나를 쳤는데 하이에나를 정통으로 맞추며 아빠를 위기에서 구하는가 싶었다. 하지만 어깨를 크게 물린 아빠는 결국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아빠를 쓰러뜨린 하이에나가 이번엔 엄마가 휘두르는 삽을 피해서 달려들었다. 하이에나가 엄마의 목덜미를 물고 마구 흔들자 엄마가 맥없이 쓰러졌다. 이 모습을 보던 아빠가 벌떡 일어나 목을 물고 있던 하이에나의 머리를 성한 한쪽 팔로 끌어안고 물어뜯었다. 하이에나는 엄마의 목을 문 채로 아빠의 공격에 버티다가 숨을 거두었지만, 엄마는 이미 목숨을 잃었고 아빠도 결국 숨이 멎었다.


* * *


엘리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부모님이 아니었다면 자신과 언니는 세상에 없었을 것이니 부모님에게서 두 번의 생명을 받은 것이다. 신연방에서는 두 사람과 두 마리의 하이에나가 죽은 케이스가 없어서 고심하다가 결국 보상하지 않기로 했다. 옛 지구 생태계의 복원을 염두에 둔 신연방 관리자로서 하이에나 두 마리는 두 사람의 목숨만큼 중요한 존재였기에. 엘리와 베스는 많은 사람에게 동정받으며 성장했지만, 성인이 되고 난 후에는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했다.


- 근데 언니가 베스인 건 어떻게 알았어요?


엘리가 순수한 호기심으로 물었다. 관리자는 물론 그 누구에게도 자기 입으로 언니 이야기를 한 적이 없으므로.


- 언젠가 당신이 자신을 엘리자베스라고 하더군요. 내가 파악한 당신의 이름은 엘리, 엘리 슈타인. 베스는 뭘까 생각해보다가 조사시키니 언니가 있었고. 그래서 여기에 언니를 인스톨해 두었지요.


관리자가 주머니에서 작은 소울 드라이브를 꺼내어 콘트롤 패널 위에 올려놓았다. 엘리는 또 다른 희망이 생기는 걸 느꼈다.


- 언니를 어쩔 셈이죠?

- 걱정하지 말아요. 언니의 캡슐은 바로 이 센터 어딘가에 있으니까.


관리자가 속박 도구를 내밀자 엘리가 망설이다가 손을 안으로 밀어 넣었다. 찰칵 소리와 함께 두 개의 고리가 나와 엘리의 손을 구속했다.


- 베스 언니를 해치지 말아요. 부탁해요.




매거진의 이전글 잠(JAM)1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