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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요일 Dec 08. 2023

잠(JAM)25

SF 장편소설

25


엘리가 중얼거릴 때 지우가 이룬 앞으로 한 걸음 더 가까이 갔다. 기주가 이룬이 지우를 잘 볼 수 있도록 옆으로 비키고 드디어 멈추었던 시간을 넘어 이룬과 지우가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 이…지우…


이룬이 손을 내밀어 지우의 얼굴을 만져보려고 했지만, 캡슐에 고정된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 모습에 지우가 손을 내밀어 엄마의 손을 만졌다.

- 아…


엘리가 다시 스크린을 보며 탄식했다. 이룬의 바이탈이 다시 이전처럼 안정되기 시작했다. 기주가 이룬을 불렀지만 이룬의 눈은 감긴 채 다시 열리지 않았다.


- 어떻게 된 거죠?


주린이 다가와 에밀에게 말했다. 에밀이 어두운 얼굴로 대답했다.


- 일시적인 수면 해제가 있었던 것 같아요.

- 맞아. 스스로 가수면 풀 때처럼…


엘리가 탄식하자 기주가 물었다.


- 엘리. 이렇다는 건… 이룬은 계속 수면체 상태가 되나요? 아니면 뭔가 다른 일이 있게 되나요?


다른 일이라면 그것뿐이지. 엘리가 눈을 감고 기록을 쭉 검색했다. 참고할 만한 기록이 없었다. 바이탈은 현상 유지가 되고 있으니 혹시라도 잘못될 일은 없을 것이다.


- 아마 이룬님이 스스로 의지를 발휘해 돌아올 때까지 현상 유지가 될 것 같아요. 스크린을 보세요.


엘리가 이룬의 얼굴을 스크린으로 전송했다. 대형 스크린에 가득 찬 이룬의 얼굴이 무척 평온해 보였다.


- 이룬님의 저 얼굴은 지우를 출산하고 고통이 모두 해소된 것처럼 평온한 그때의 얼굴 같아요. 아마도 지우를 보았기 때문에 조금 더 마음이 편안해진 거 같은걸요.


엘리가 설명하고 기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지우에게 다가가 말했다.


- 너는 엄마와 나 사이의 아이가 맞다. 엄마는 나를 만나기 전엔 그 누구도 만난 적이 없었어.

- 하지만 그건 모르는 일이 아닌가요? 아빠가 저에게 해주신 모든 건 다른 부모가 자신의 아이들에게 해주신 것과 같았어요.


지우의 고집에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 딱 봐도 아빠구먼 왜 고집이야?

- 아빠가 맞는 것 같아요. 너무 닮았잖아. 두 사람.


잠시 고민하던 엘리가 센터의 시설에 관해 검색하고 기주와 지우에게 제안했다.


- 이 센터에서 친자 확인 가능한데 해보는 거 어때요?


기주는 오케이 했고 지우도 머뭇거리다가 결국 두 사람이 친자 확인 검사를 하기로 했다. 두 개의 캡슐이 콘트롤 데크로 올라왔다. 캡슐의 뚜껑이 열리자 기주와 지우가 안으로 들어가고 이어 연둣빛 광선이 두 사람의 신체를 스캔했다. 전면의 스크린에 두 사람의 DNA를 비교하는 영상이 지나가고 잠시 후 마침내 99.98% 유전자 일치라는 문구가 등장했다.


- 거봐!


엘리가 성공! 이라고 외치고 에밀, 주린이 손을 마주쳤다. 캡슐에서 나온 두 사람이 머쓱하게 서 있자 엘리가 다가가 두 사람을 포옹시켰다.


- 뭐 해요? 아버지와 아들의 역사적인 만남인데!


기주가 팔을 열어 지우를 안았다. 지우가 떨떠름한 얼굴로 기주에게 안겨있자 엘리가 지우의 팔을 들어 기주를 감싸며 말했다.


- 당신은 두 분의 아이가 틀림없어요. 아마도 이룬님이 당신을 낳고 나서 관리자가 나를 수면 인스톨하고 자신과 당신을 수면에 들게 한 것 같아요. 도대체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겠만.


엘리는 그 말을 하며 문득 관리자가 했던 엉뚱한 말들이 다시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스키조. 하지만 고개를 흔들어 털어내고 기주와 지우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엘리의 말에 지우가 기주를 안은 팔에 조금 힘을 넣어 같이 끌어안았다. 관리자의 부하에게 들은 내용과 다소 차이가 있긴 했지만, 자신이 봐도 기주는 자기 모습과 많이 닮은 데다 특히 이룬을 보는 순간, 떨리기 시작한 심장이 그게 진실임을 말하고 있는 듯했다. 두 사람을 바라보던 엘리가 친자 확인 검사 전에 생각났던 걸 기억하고 말했다.


- 관리자에게 신연방을 말살하려는 계획이 있는 것 같아요. 저에게 그렇게 말했어요. 아니 뭐, 딱 그런 건 아니지만 아무튼 뉘앙스가…


엘리의 말을 들은 기주가 이룬의 얼굴을 천천히 보았다. 이룬은 마치 짐을 덜어낸 것처럼 평온한 얼굴로 “이제 나 조금만 쉴게”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 이룬, 조금 더 쉬어. 내가 누군지 보여줄게. 그리고 우리 다시 만나.


지우는 기주의 말에 자신이 아버지라고 부를 남자를 가만히 살펴보았다. 이 남자는 불과 몇 분이었지만 지우에게 잔잔한 떨림을 주고 있었다.


- 엘리, 그 말은 지금 별 지우개 함선 한 대가 이리로 향하고 있단 뜻인가요?

- 아마도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요.


엘리가 기주의 말에 동의하자 주린이 안 돼! 하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에밀이 그런 주린을 안아주고 말했다.


-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보스가 해결할 거니까.


에밀이 신뢰 가득한 눈빛으로 기주를 보고 있었다. 지우에겐 이 모든 것들이 생경하면서도 인상적이었다.


- 엘리, 혹시 지금 가진 시스템으로 세 개의 달도 제어할 수 있을까요?

- 네? 아, 뭐 한 번 해볼까요?


기주의 질문에 대답 대신 반문을 던진 엘리지만, 곧바로 브레인 드라이브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데이터가 엘리의 두뇌에 들어왔다. 세 개의 달은 그 규모의 방대함이나 운용의 복잡함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독보적인 존재였다.


- 흠… 뭐가 이렇게 복잡해. 보기엔 간단해 보이는데. 초창기 기술이라 그런가.


엘리가 알다가도 모를 말을 중얼거리는 동안 지우는 생각에 부딪혀 헤매고 있었다. 그렇게 따뜻하던 아빠가 지금 여기를 부수러 온다고? 왜? 그런 짓을 왜 해? 그럼 나도 죽는데? 그럴 리가 없어. 뭔가 잘못 알고 있다고. 생각의 늪에 빠진 지우와 다르게 엘리의 데이터 처리 스피드는 눈으로 봐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빨랐다.


- 세 번째 달은 리어 부스트가 메인이고 두 번째는 사이드 부스트…. 아, 저렇게 서로 인력을 만들어서 조수 간만의 차를 만든다? 머리 잘 썼네. 중력의 1/3은 간격 유지에 쓰고 나머지를….


엘리의 중얼거림이 계속되자 기주가 에밀에게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


- 에밀, 이곳에 잠들어 있는 APS의 전 주주, 이사들을 깨워줘. 찾을 건 찾아야지.

- 네, 보스. 다만 손이 좀 필요합니다.


기주가 지우와 주린을 돌아보며 말했다.


- 설명은 나중에 할 테니 지금은 두 사람이 에밀을 좀 도와줘야 해.


주린이 대답하고 데크로 올라갔다. 에밀이 주린에게 가상 키보드를 넘겨주고 맨 위부터 부탁합니다. 하며 명단을 넘겨주자 백 년의 휴머노이드 실력이 순식간에 되살아났다.


- 오우, 브라보!


주린의 경이적인 손놀림에 에밀이 놀라 찬사를 보내고 지우를 보았다. 안 와? 지우가 네, 네 하며 올라가자 지우에게도 가상 키보드를 주고 명단을 건네주었다. 아래에서부터 찾아. 난 중간부터라고 한 에밀도 검색을 시작했다. 하나하나 세세하게 체크한 지우가 기주에게 물었다.


- 이 사람들을 왜 깨워야 하죠?


기주가 할 말을 정리하기라도 하듯 지우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말했다.


- 틀린 것을 바로잡는 중이다. 주니어.


기주의 신중한 모습에 지우가 더 이상 토를 달지 못하고 받은 명단과 센터의 수면 어드레스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막상 시작하자 지우의 속도가 주린에게 뒤지지 않았다. 에밀이나 기주는 그 모습을 잠시 감상하듯 바라보았다.


- 역시…


에밀이 뜻 모를 말을 남기고 곧 자기 일에 돌입했다. 가상 키보드 소리가 공간을 메웠다. 실제로 소리가 들릴 리 없었지만, 실내는 경쟁이라도 하듯 손을 움직이며 수만의 어드레스를 체크하는 모습에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 그런데 왜 하필이면 그들이 22커뮤니티 센터에 다 모여 있나요? 뭐 그들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서치를 계속하며 지우가 말했다.


- 설명해주도록 하지.


에밀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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