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이 끝난 후

개미 한 끼

by 수요일

산책이 끝난 후


무라카미의 산뽀는 얼마나 놀라운가
얼마나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이며
하루끼적하게 대박적이고
베스트셀러적인가
그 시속 5킬로미터는 미터마다
돈을 갈퀴로 긁었다

나의 개똥을 잘 피한 산책도
나름 만족스러웠다
인성 더러운(개똥도 안 치우는)
동네에서는 산책도 요령이다

비가 지나가는 담벼락에
옛 장미에 새 잎이 돋았고
개미를 밟지 않으려고
(개똥을 밟지 않으려고)
열심히 발밑을 보며 걸으니
어느새 5월이 절반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길,
우편함에 편지가 와있다
가스비 청구서. 어? 왜 많지
당분간 찬물로 버티자
장미의 계절이잖아

누가 나를 불러서 산책을 시켰나
내 더듬이는 개미보다 짧고 둔해
난 계절을 내 더듬이가 아니라
그대에 의해 느꼈다
개미의 사랑은 매우 촉수적이지
사랑이 강제종료된 개미 중 누가,
고소 하는 개미 있나

내 산책은 시속 7킬로미터
걸으며 하는 짓은 개미를 생각함
내 발밑을 허겁지겁 피해
블럭 틈에 숨는 작은 것들 떠올리기

산책이 끝난 후 다가올
그 무엇(가스비청구서 같은)에도
놀라지 말자. 삶도 산책도
개미를 생각함도 사소한
라이프스타일

무라카미 때문에 산책을 하든 말든
가스비 때문에 샤워를 하든 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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