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생각종이

법률 스님 [인생수업]

종교;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

by sagakpaper

제가 고문을 당했는데, 그 일을 나쁘게만 생각했으면 저에게 큰 상처가 되고 한이 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을 인생의 경험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몇 년 수행하는 것보다 더 큰 깨달음을 얻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삶이 고달픈 거예요. 어떤 경험을 했든 그것을 항상 교훈으로 삼아서 자산으로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 사람은 어려움을 겪을수록 더 단단해지고, 능력도 커집니다. (_114)



최근에 SNS을 통해 오광봉 할아버지를 알게 됐다. 올해는 여든넷이 되셨을 오광봉 할아버지는 부산 감천동에서 하루에 10시간 넘게 30여 년간 신문 배달을 하신다. 한 곳에서 오래도록 일을 하고 계신 분들은 많을 것이다. 그런데 오광봉 할아버지에게 유난히 눈길이 가는 것은 할아버지 주변에 퍼지는 즐겁고 감사히 일하는 기운이 내게도 닿기 때문인데 특히나 영상으로 접하는 할아버지의 언어는 지혜와 겸손이 넘친다. 오광봉 할아버지는 하루 종일 신문 배달 일을 하고 나서도 파지를 주우시는데, 파지로 버는 돈은 독거노인이나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데 보탠다고 한다. 오늘도 어떻게 하면 이불속에 몸을 비빌까 궁리하는 내게 일침을 가한다.


<인생 수업>을 읽으며 나는 유난히 오광봉 할아버지가 많이 떠올랐다. 배움이 짧은 게 한이 되어 40대부터 책을 읽기 시작한 오광봉 할아버지의 단칸방의 서재는 2500권이나 달하는 책들로 빼곡히 차있다. 학벌로 치장한 배움보다 다독과 인생의 지혜로 점철된 할아버지의 언행과 겸손에 할아버지의 영상을 보는 내내 저절로 숙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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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좀 잘 하고 싶으면 말하는 연습을 하면 되고, 걸음걸이가 불편하면 걷기 연습을 해서 보완해 나가면 됩니다. 현재의 나로부터 출발하면 조금만 향상이 되어도 성과가 나니까 자긍심이 생깁니다. 그런데 상상의 나를 기준으로 삼으면, 현실의 자기가 어느 정도 올라와도 늘 그 기준에 못 미치기 때문에 항상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좌절하고 절망하는 겁니다. (_82)


나는 책의 본질이 <인생 수업>과 같은 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나를 돌아보고 나의 생각과 마음을 살찌우게 하는 일,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일들을 작게나마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변화를 줄 수 있게 하는 지침서가 책이라고 생각한다. 혹시라도 사람에게 배움을 얻고자 하거나, 멘토를 만나고 싶다면 가장 낮은 곳에서 배움을 찾아야 한다. 몇 천 권의 책을 읽고 책을 쓰고, 좋은 정장을 입고 강연을 하러 다니고 좋은 와인과 권위를 즐기는 사람들 말고, 제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을 낮추고 열심히 살고 계신 진짜 성인을 말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면 인생무상을 느끼지만 그럴수록 더 마음과 정신을 올바르게 몸가짐을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수양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거지요’
‘할아버지는 그렇게 하고 계세요’
‘아직 멀었어요’ - SBS 모닝와이드 ‘오광봉 할아버지’ 인터뷰 내용




이제 고작 이백 권을 조금 넘게 책을 읽고 있지만, 나는 책을 통해 굉장히 많이 바뀐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당장에 닥친 상황에 몹시도 잘, 흔들리는 사람이긴 하지만 짜증을 이해로 바꾸는 마음을, 오만을 배움으로 깨닫는 순간들을 책을 읽으며 상황을 바꿔나가고 있다. 그래서 참는 법을 배우고 더 사랑하는 법을 익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똑똑해지는 것 같지는 않다. 여전히 백치미 남발에 상식 부족이지만 단언컨대 확실한 것은 책을 읽으면 세상 밖의 것들에 관심을 갖게 되고, 나라는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주변에 관심을 갖게 된다. 다른 이의 눈을 통해 보는 다른 세상은 내가 보는 것보다 넓어서 이리저리 관심을 쏟게 되니, 마음이 몰캉몰캉해지는 순간도 내가 너무 무심했구나 한심한 순간들도 굳이 밖으로 뛰어나가지 않아도 방안에서 책으로 수 차례 다양한 상황과 마주하게 된다.


그런 경험들이 또 다른 나를 만들고, 어떤 상황에 마음을 다잡고 어떤 상황에 감명받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나라는 사람의 조각이 조금씩 맞춰지기도 한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타국의 삶을 지탱해주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내 나라의 내가 익숙한 언어일 수밖에 없다. 싫은 한국에 기대 나는 또다시 이렇게 힘을 얻는다.




한국에 사는 사람은 한국에서 행복하게 살아야 이곳이 극락입니다. 그런 사람은 미국에 가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불평 불만투성이인 사람은 극락에 보내 놔도 불평불만이에요. 불평하는 사람은 어디를 가도 불평을 합니다. 그러니까 지옥, 극락이 어디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행복하면 극락이고, 내 마음이 괴로우면 지옥인 겁니다. (_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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