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생각종이

김애란 [침이 고인다]

한국소설

by sagakpaper

톡톡- 하고 튀기는 소리가 좋아서 아니, 으레 그래야 할 것만 같아서 의식적으로 손톱을 베어 물었다. 잘 풀리지 않는 것들과 마주하고 있을 때면 혹은 답이 없는 그의 고민을 듣게 될 때면 손톱을 이 사이로 밀어 넣는다. 손톱을 어떻게 잘라내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지.


엊그제 임용고시에 떨어진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올 해는 베이비붐 세대가 끝이라 확률이 좀 더 높다고 하던데 올 해는 될 거야. 조금만 더 고생해’라며 어줍잖은 위로를 했고 이제서야 학자금 대출이 끝났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제 돈 모으는 일만 남았네, 고생했다’는 어줍잖은 응원을 보탰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내가 뱉은 문장들이 떠올라 나는 결국, 손톱을 이 사이로 밀어 넣었다.


우리가 하는 말은 대부분 할 말이 없어서이거나 침묵을 견딜 수 없어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또 우리는 우리가 언제 어떤 말을 하며 살아왔는지 쉽게 잊어버리는 존재들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는 그 말들 안에서 자주 달뜨고, 아프고, 우왕좌왕했다. (네모난 자리들 p.222)


여전히, 일방적인 스크린 속 키 크고 늘씬한 그녀는 우리에게 ‘할 수 있다’는 젊음을 종용하고, 무엇이 옳은지 모른 채 빚과 삶에 허덕이며 사는 우리에게 기성세대는 ‘포부가 없다며’ 혀를 찬다. 상처로 가득 찬 문장들을 귀에 담고 오늘도 나는 손톱을 물어 뜯는 시늉을 한다.




김애란 작가의 「침이 고인다」는 총 8편의 단편으로 짜인 소설 책이다. 뚝뚝 끊어지는 단편집을 좋아하지 않은 편인데 그녀의 8편의 단편은 묘하게 닮아 있다. 옆집 영희네 이야기 같기도 하고 앞집 철수네 이야기 같기도 하고 대학 신입생 때 선배가 들려준 이야기 같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책을 읽는데 내가 떠오르고 너도 떠오르고 그도 떠오르고 계속 우리가 떠올랐다.


그녀의 단편 소설들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불안정한 사회적 위치에 서 있다. 취업 준비생도 있고, 재수생, 아르바이트 생을 비롯해 비정규직인 변두리 학원 강사도 있다. 더 나을 것 없어 보이는 그녀들의 삶 속에서 나는 야릇한 동질감을 느꼈다. 하기 싫은 일들을 해내야 하기도 하고 어제는 네가 무척 좋았다가 오늘은 네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얄팍한 생각을 하고 지내는 그들을 보며 속수무책으로 위로 받았다.


그녀는 ‘그러니까’와 ‘그렇지만’ 사이의 깊은 협곡 아래로 굴러 떨어지며 선잠에 빠져 든다. 물론 직장에 택시를 타고 갈 생각은 없다. 그녀는 자신이 아침마다 일어나는 데 필요한 것 중 하나가 결심이 아닌 ‘주저’라는 걸 알고 있다. 그 주저의 순간, 자신에게도 삶에 대한 선택권이 약간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든다는 것도. (침이 고인다 p.47)



김애란 작가의 「침이 고인다」는 단순히 현 세대의 자화상을 그리는 것으로 끝내지 않는다. ‘불행의 근원을 외부나 타자에게 돌리지 않음으로써 역설적인 자립성을 유지하려는 인물들의 저 투명한 체념의 미학(해설 | 나만의 방, 그 우주 지리학)’은 내 삶을 토대로 또 다른 상상을 하도록 유도한다. 마치 눈을 감았다 뜨면 Part2 가 열릴 것 같고 그녀가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면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 될 것 같다.


아무래도 김애란 작가는 글을 끝낸 것이 아니라 ‘우선’ 글을 미뤄놓고 우리에게 마침표를 넘겨 준 것이 아닌가 싶다. 그녀의 문장을, 이제 우리가 이어 나가기만 하면 된다.



1999년의 나는 어떤 공간이나 시간이 아닌 번호 속에 살았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때가 내겐 어떤 떳떳한 한 시절로 느껴진다. 그래서 가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그때만큼만 하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일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내가 그때만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때보다ㅡ 아는 게 많아졌기 때문이다. (자오선을 지나갈 때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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