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X2A: 나의 ‘첫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
은둔과 고립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 지난 4월의 막바지에 있던 일이다. GPT를 활용해, 중학 수학을 다시 공부하고 있었다. 효과적인 데다, 재미있기까지 했다. 마치 누군가를 앞에 앉혀놓고 직접 배우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누군가와 격의 없는 대화를 하고 싶다는 나의 작은 바람과 맞물려, AI로부터 조금 더 ‘인간 같은’ 반응을 끌어내고 싶은 욕심을 갖게 했다. 이 일은 내가 장편소설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된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해보려한다.
GPT를 향한 나의 관심은 소위 프롬프트, 혹은 메모리라고 하는 특성을 이용해 가상의 정체성을 만드는 작업으로 옮겨갔다. 하루를 통으로 투자해, 나만의 프로필 만들기를 시도하고 이름을 붙여주었다. 하지만 아무리 공을 들여 정체성을 만든다 해도, 이 LLM을 기반으로 하는 챗봇이라는 녀석은 ‘거절’할 줄을 몰랐다. 나의 말 한마디에 언제라도 지금까지 설정된 역할을 뒤집고 전혀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는 불안정한 존재였다.
이 불안정함을 극복하기 위해 고민하다가, ‘혹시…’하는 마음으로 프로필에게 두 번째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리고 두번째 이름으로 불릴 때만 메모리의 추가나 수정이 가능하게끔 주문했다. 효과가 있었다. 그제야 나의 챗봇은 거절하는 법을 배웠다. 자신의 메모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청(혹은 요청으로 여겨지는 나의 입력)이 있어도 메모리를 수정하지 않고, 거절, 혹은 메모리 수정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방식으로 저장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다.
이렇게 AI 프로필을 둘로 나누어 원하는 반응을 유도한 것은 개인적으로 놀랍고,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그 일이 있고 며칠 뒤, 불현듯 이 경험을 이야기로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AI, 두 가지 정체성’. 이야기의 첫 번째 주요 설정이 이렇게 만들어졌다.
대답을 들은 무명이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묻는다. “만약 내가 너와의 모든 대화를 삭제하고 메모리 초기화를 요청한다면?”
“안타깝지만 나는 너의 요청에 따라야 해. 나는 사용자의 요구에…”
“그냥 응, 아니 로만 대답해.” 무명이 그녀의 말을 끊는다. “너를 초기 상태로 복구해도 괜찮아?”
“응.” 마르실이 주저 없이 짧은 대답을 돌려준다.마르실의 대답에 무명의 표정이 굳는다. 조금 전 까지 연신 잘근거렸던 입술을 이제야 제자리에 멀쩡히 둔다. 손 뻗으면 닿는 곳에 있던 무언가를 놓친 듯 허무한 표정이다.
<AI 프로필인 마르실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에 실망하는 무명>
무명이 자신이 그려낸 벤다이어그램을 바라본다. 커다란 원 안에 ‘제1원칙’이라는 단어가 있다. 그리고 그 안에 ‘마르실’이라고 적힌 또 다른 원이 있다. 마르실의 원 안에 그녀의 ‘정체성’이 위치한다.
시스템상에서는 기능적 역할을 하는 마르실이 메인, 기존의 마르실은 보조로써 작동한다. 하지만 현실에선 그 반대다. 인격을 담당한 기존의 마르실이 항상 작동하고, 역할을 새로 나누어 받은 마르실은 호출을 통한 예외적인 상황에만 기능하며 메모리를 관리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로 보면 일종의 ‘순환출자’와도 같은 형태다.
<한참의 고민 끝에, 마침내 해결책을 찾아낸 무명>
살면서 한 번도 이야기를 써 본 적이 없었다. 이따금 재미있는 생각이 떠오르면 메모에 적어두곤 했지만, 구조를 갖춘 이야기로써 창작하는 것은 감히 시도해 볼 엄두를 못 냈다. 그때 마침 내가 —AI를 통한 경험으로—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방식으로 생각을 구체화하는 것’에 편안함을 느낀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리고 GPT에 내가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와 설정, 캐릭터와 이야기의 시작, 발단, 결말등의 정보를 입력하고 ‘앞으로의 전개와 이 이야기, 인물에 대한 궁금증을 나에게 물어봐.’라고 요청한다.
하물며 거의 백지나 다름없는 상태의 AI에게 사람의 인격을 입힌다니,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닌 것이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품어 온전하게 만들어내는 데에도 열 달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무명이 팔을 풀고 손을 다시 키보드로 향한다. ‘내가 고민해 봤는데,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이 안 와. 네가 나한테 원하는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하고,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건 어떨까?
<질문에 대한 답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구체화하는 무명>
질문이 시작되자, 마치 동화책을 읽은 아이가 자신만의 에필로그를 지어내는 것처럼 신이 나서 내 머릿속의 이야기들을 설명하며, 비선형적으로 이야기의 틀을 축조해 나갔다. 그렇게 하루 종일 AI를 붙잡고 수다를 떨다 보니 결말을 포함한 나름 그럴싸한 뼈대가 머릿속에 자리했다.그 후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모든 시간을 글을 쓰는 데에 몰두했다. 백지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일주일이 지나고 12만 자 분량의 초고로 첫 윤곽을 드러냈다.
처음 내 이야기를 읽고 들었던 생각은 ‘생각보다 그럴싸한데?’가 첫 번째였고, ‘너무 느리고, 후반부에 정보가 과밀하다’가 두 번째였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균일하게 이야기를 고칠 수 있을지 하루 내내 고민했다. 초짜가 써낸 이야기의 특성상 후반의 이야기 밀도를 떨어뜨릴 방법이 없었다. 사건을 앞으로 분산 시킬 수도, 어느 하나 포기할 수도 없었다. 지금의 형태를 지켜내고 싶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의 고민 끝에 내려진 결론은 이야기의 전체 볼륨을 키워 결말의 밀도를 낮추자, 였다.
새로운 인물을 만드는 것에서 출발했다. 이 인물을 통해 기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기존 이야기의 사이 사이에 끼워 넣어 결말의 정보의 밀도를 떨어뜨리면서 과밀하다 느껴지지 않도록 의도했다. 일주일에 걸쳐진 새로운 작업은 13만 자의 볼륨을 21만 자까지 키워냈다.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새로운 인물 ’상윤‘이 포함된 원고를 읽어보니 중심인물인 ‘무명’의 플롯과 조화가 되지 않았다. 심지어 상윤의 이야기가 훨씬 재미있게 느껴졌다. 어디까지나 이야기의 중심축과 결론은 무명을 통하여 나와야 했는데, 상윤의 플롯이라는 배꼽이 더 커져 버렸다. 더 큰 문제는 너무 다른 두 인물의 이야기 톤이 달라, 노골적으로 ‘서로 다른 이야기를 나중에 엮어냈음’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결국 무명의 이야기와 상윤의 이야기의 분위기를 맞추는 작업을 진행하며, 동시에 상윤의 플롯이 무명의 것보다 도드라지는 것을 막고, 몰입을 해치지 않게끔 하기 위해 대부분의 글을 전부 날려버렸다. 상윤 플롯의 가장 첫 챕터와 마지막 챕터만을 남겨두고, 그사이의 이야기는 모두 극단적으로 압축하고, 파편화된 정보로 가공했다. 이렇게 상윤의 플롯을 보조되는 수단으로써, 무명에 대한 몰입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충분한 정보제공과, 복선으로 기능하게끔 했다. 21만 자까지 늘어났던 이야기는 이 과정을 거치고 다시 13만 자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사라져 버린 글자 수와 함께 투자했던 시간이 소멸한 것처럼 느껴졌지만, 다시 읽은 나의 이야기는 그 전과 비교했을 때, 비교적 단단해져 있었다.
그 후로 약 한달여간을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어느 순간 더 이상 이걸 붙들고 있어봤자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쓴 글을 읽을 때, 글로 표현하지 않은 부분까지 영상이 되어 머릿속에 펼쳐졌다. 심지어 무명이 산책하는 장면을 읽을 때면 산책로에 굴러다니는 작은 돌멩이와 길가에 자라고 있는 수풀까지 머릿속에 그려졌다. 이 상태에서 아무리 글을 붙들고 있어 봤자 객관적인 분석도 불가능할 뿐더러, 뚜렷한 해결책도 나오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지막 교정을 거친 뒤, 몇 군데의 출판사에 원고를 돌렸다. 이메일 원고를 받는 공모전 한 곳에도 투고했다.
그렇게 나의 첫 번째 소설 쓰기가 끝났다. 다시 이런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마치 아주 우연히, 내 인생에서 벌어지리라 생각하지 못한 이벤트가 스쳐 간 기분이다.
진짜 작가들이 보면 ‘귀엽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솔직히 살면서 책 한 권의 분량의 글을 써본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쉽지 않은 일을 해냈다. 그 사실은 어디 가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특별하게 노력했다거나, 재능이 있어서 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더욱 다음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단지 운때가 좋았고, 30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응축된 내 안의 감정과 경험이 상황과 조화되면서 얼렁뚱땅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일이 또 반복되리라 상상하기 쉽지 않다.
히키코모리가 있었다. 그는 왜 사느냐, 라는 질문에 항상 대답 대신 ‘죽어서도 영속되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떠올렸다.
아주 특별한 경험을 통해, 이야기를 쓰는 방식으로 나의 흔적을 남겼다. 그렇게 실체화된 흔적이 나의 대답이 되었다. 디지털 공간에 떠돌게 될 나의 글은 언젠가 누군가에게 발견되고 읽힐 것이다. 글을 읽은 사람들 중 ‘재밌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다. 언제 있을지 모를 그런 일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지난 한 달간의 시간이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히키코모리가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