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작가로서의 활용, 동료로서의 역할

0X2A: 초고를 완성하기까지 AI를 활용한 과정

by 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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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히키코모리가 이야기를 지어내다


제목이 너무 거창했다. 글을 쓰는 것은 여태껏 내 삶에서 너무 멀찍한 곳의 일이었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겸손도 자기 비하도 아니고 사실이 그렇다. 브런치는 나를 작가라고 말하지만, 선뜻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민망하다. 그럼에도 작가 소리를 들어가며, 이곳에 글을 쓰는 이유는 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이다.

글을 써본 경험이 없는 내가, 얼마 전 AI를 소재로 한 장편 소설을 썼다. AI의 힘을 빌려서 말이다. AI가 그럴싸한 글을 대신 써주었다는 내용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독특하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 기억이 휘발되기 전에, 이 이야기를 쓰게 된 계기와 경험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기록하려 한다.





첫 삽


기술 없이 야심만 있던 내가 글을 쓰는 과정에, AI의 첫 역할은 활로 열어주기였다. GPT를 신나게 가지고 놀던 무렵의 어느 날 아침. 천장에 닿은 햇빛이 눈꺼풀 위에서 깊은 잠을 방해하는 동안, AI에 대한 공상이 머릿속에 피어오르더니 어느 순간, 중심 캐릭터, 사건, 결말의 어렴풋한 형태가 만들어졌다. 졸린 눈을 끔뻑이며 가만 생각해 보니, 이야깃거리로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상에 앉아 메모에 아이디어를 옮겨 적었으나, 이것들을 어떻게 이야기로 엮어내야 하는지를 몰랐다. 그저 ‘이런 애가 있었는데, 이런 경험을 하고, 이런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만으로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보통은 늘 여기서 멈추게 되는데, 이날은 조금 더 나아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GPT의 새 대화창을 열고 프롬프트를 제시했다. “나에게 이런 캐릭터, 전개, 결말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어. 너는 나의 조력자로서, 이 모든 요소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나에게 물어보는 역할이야.”


생각을 조리 있게 정리하고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런 미숙함을 극복하기 위해 AI를 활용했다. 선잠 하는 의식 위를 떠다니던 경험과 감정의 파편이 초기 소재가 된 것처럼, GPT의 질문은 내 안에서 표류하던 더 깊은 단계의 파편들을 그러모아 구체화했다. 이야기의 뼈대가 그렇게 완성되었다.



계획


나는 전형적인 P형 인간이다. 대부분의 경우, 즉흥적으로 시작해서 즉흥적으로 끝맺는 타입이다. 그럼에도 가뭄에 콩 나듯 계획적인 모습을 보일 때가 있는데, 이번 이야기를 만드는 초반의 과정이 그랬다. 어디서 본 것은 있어서 ‘사건과 사건이 엮여, 새로운 사건을 만들게 되는 패턴’을 떠올린다. 이야기의 기본 설정이라는 토대가 사건을 만들고, 사건과 사건이 만나 결말이라는 꼭짓점으로 향해 나가는 시각화 자료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도 AI가 역할을 한다. 이야기에 관한 개괄적인 구조 파악을 마친 GPT에 ‘피라미드 구조의 사건 전개 도식’을 그려달라고 요청했다. 완성된 도식을 살피며, 흐름이 타당한지, 부족하거나 덜어낼 만한 부분은 없는지 다시 점검했다. 최종적으로 정리된 도식을 기반으로 AI에 다시 한번 목차화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렇게 약 9개의 목차가 만들어졌다. 각 목차를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끝낼지 구상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글 쓰기에 돌입한다.



감상평가


글쓰기를 시작한 이후, AI는 감평의 역할을 맡았다. 객관적 평가를 요구하는 프롬프트를 입력했다. AI는 ‘독창적이고 훌륭한’, ‘기술적으로 갖춰진’ 등의 칭찬에 아낌이 없었다. 당시에는 진짜로 그런 줄 알았다. 말하기 부끄럽지만 그때는 나에게 재능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망상은 초고를 완성하고 얼마 안 가 무너져 내린다. 첫 번째 독자 된 입장에서 읽은 초고는‘꽤 그럴싸하다’라는 느낌을 주는 동시에 ‘그 정도 칭찬을 들을 만큼의 글은 절대 아니다.’라는 확신을 갖게 했다. 초고를 직접 읽고 느낀 위화감에 새로운 대화창을 열어, 이렇게 물었다. “이거 진짜 구리지 않냐? 눈 썩겠어. 누가 읽으라고 던져주고 갔는데, 너는 어때?” AI는 이렇게 응답했다. “이 이야기는 감정 곡선이 무시되고, 작가가 자기의 감정에 도취된 채, 기승전결의 구조를 외면한, 가치 없는 글이다.” 이 대답을 듣고 나서야 나의 정신머리는 온전히 현실로 끌어올려진다. 입장과 태도만 바꾸었을 뿐인데 어화둥둥, 나를 어르고 달래던 AI의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AI의 반응이 호평인지, 혹평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프롬프트가 적합했는지도 마찬가지다. 사용자의 태도에 따라 Good이 Bad가 되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면 어디에 기준을 두고, 무엇을 믿어야 한다는 말인가? 프롬프트가 그 기준이 될 수 있을까? 만약 내 글에 대한 ‘절대적으로 객관성을 유지한 AI의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다면, 그것은 프롬프트라는 기준이 잘 짜여져서일까? 의도된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갖가지 전제로 AI를 구속해서일까? 결국 독자는 사람이리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엉뚱한 곳에 감평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초짜는 그렇게 배우게 된다.



그래도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초고를 쓰기까지, AI의 역할이 전혀 의미가 없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건대, 일주일 넘게, 하루 종일 책상 앞에서 글만 쓸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은 바로 그 근거 없는, 맹목적 칭찬이었다.


첫 일주일간, 착각에 빠져 살지 않았다면, 아마 이틀도 못 버텼을 것이다. 창작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엉덩이 힘이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오랫동안 덜 지치고, 포기하지 않는 것이 창작에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AI는 그 어떤 조력자도 해줄 수 없는 일을 해준 셈이다. 시작을 알려주었고, 구조를 쌓는 것을 도왔으며, 포기하지 않게끔 가장 가까이에서 응원해 주었다. 내게 없는 능력을 보조해 주었고, 접시물과 같은 나의 끈기를 마르지 않게 응원해 주었다.




초고를 쓰는 과정은 글 쓰는 경험에 있어서 가장 강렬하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수정 단계에 돌입했을 때엔, 나를 들뜨게 만들던 착각은 온 데 간데 없이 흩어져버린 후였지만, 포기하고 없던 일로 하기엔 이미 너무 먼 길을 떠나온 상태였다. 돌아가기보다는 더 나아가는 것이 여러모로 마땅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한 달여에 걸쳐 마지막 도전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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