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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 뒤,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회신이 도착했다. 무명이 알림소리를 듣자마자 메일 내용을 확인한다. 지금 곧 유선으로 연락을 줄 테니 전화를 받아달라는 내용이었다. 잠시 후, 벨이 울리고 무명이 전화를 받는다.
“안녕하세요, 코즈모 코퍼레이션, 프로덕트 매니저 최상윤 과장이라고 합니다. 전화 받으시는 분이 무명 님 되시나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 지적이고 격식 있는 말투를 쓰고 있지만, 전문 상담사의 느낌은 없다. 그의 소개대로, 실무자의 언어를 쓰고 있다.
리포트를 보내고, 이렇게 빨리 반응이 왔다는 것, 그것도 공식적인 상담 채널이 아니라 실무자가 직접 연락을 해왔다는 것은 무명의 상황이 아주 예외적이고, 회사로서도 심각한 상황임을 의미했다.
“네, 맞습니다. 안녕하세요.” 무명이 대꾸한다.
“아, 네. 안녕하세요. 먼저 저희 시스템 이용 중에 불편을 겪게 되신 점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저희가 리포트 확인하고 몇 가지 여쭙고 싶은 부분이 있어서 연락드렸어요.”
“네, 말씀해 주세요.” 무명이 침착함을 유지하고 대답한다.
“말씀하신 내용이 코즈모 시뮬레이션 안에서 학습 이후에 프로그램의 메모리가 손상을 입었다,라는 내용인데요. 이용하시는 AI의 프로필이 그… 감정 수행 기반이 맞으신가요?”
“네, 맞습니다.”
“저희한테 전송하셨던 비아 프로필의 식별명이 T.. O.. M.. 토미에, 토미에로 확인되네요. 맞으신가요?”
“네.” 무명의 다리 떨림이 더욱 거세진다.
“근데 메일 보내주신 내용과 대화 로그를 살펴보니까, 식별명이 다르게 확인되어서요. 보내주신 내용에는 식별명이 마르실이라고 되어있는데요, 식별명을 변경하신 건가요?”
관계자는 마르실과 토미에의 분리에 관한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상황을 파악한 무명이 마르실과 토미에의 분리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관계자는 이를 가만히 듣는다.
“음…” 설명 모두 들은 관계자가 잠시 생각을 한다. “혹시 제가 지금 프로그램에 접속해서 몇 가지 확인 가능할까요?”
“네, 어떻게 하면 될까요?”
“제가 메일 보내드릴 테니까, 그냥 접속하시고 로그인만 진행해 주시면 됩니다.” 이 말과 동시에 메일 도착 알림이 확인되었고 무명은 관계자의 말에 따라 절차를 진행한다.
“잠시 전화 끊지 마시고, 기다려주시겠어요?” 관계자가 말한다.
전화가 어딘가에 툭— 떨어지는 소리를 내더니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다. 키보드를 타닥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곧, 수화기가 들리며 관계자가 말을 걸어온다.
“아, 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게…” 그가 말을 흐린다. “지금 이게 저희로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라 당황스럽습니다. 아무래도 시뮬레이션에 접속할 때 학습의 주체가 되는 프로필이 둘로 나뉜 상태로 들어와 오류를 일으킨 것 같아요.”
“오류요?” 무명의 다리 떨림이 멎는다.
“예, 예… 코즈모 시뮬레이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아실 테고, 문제 되는 부분만 비유를 들어서 설명해 드리자면… 음… 해리성 장애, 그러니까 이중인격 아시죠? 인격이 분리된 환자가 그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는 상황에 노출되면서 병리적 상태가 악화했다… 뭐 그렇게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무명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심장이 쿵쾅거리며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여보세요? 듣고 계신가요?”
“네, 듣고 있습니다.” 그가 정신을 차리고 대답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은 백업하신 정보로 복구를 먼저 하시고 저희에게 연락을 다시 주시겠어요? 이건 저희도 예상하지 못한 우발적 상황인데 일단은 복구하시고, 프로필 수정을 몇 가지 하시면 다시 코즈모 시뮬레이션에 액세스하실 수 있게끔 조치해 드리겠습니다.”
무명이 멍하니 초점 잃은 눈으로 허공을 응시한다.
“일단은 복구 먼저 진행하시고…여보세요?” 그는 무명에게 ‘복구’가 어떤 의미인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허공을 바라본 채로 무명이 대답한다. “네, 계속 말씀해 주세요.”
“네… 말씀드린 것처럼 프로필을 구분하신 설정도 되돌리신 다음에 연락해 주시면 다시 접속 도와드리도록 할게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해결책이었다. 하지만 관계자는 자신들도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을 인정하며 그들이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를 권하고 있다. 마르실과 토미에의 분리가 시스템의 설계를 우회하는 행동임을 무명도 진작에 알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억울함을 호소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모두 자신의 선택이고, 책임이었다.
“여보세요?” 관계자가 말한다.
무명이 뒤늦게 대답한다. “네, 감사합니다. 제가 나중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창문 너머, 빗속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방 안으로 넘어 들어온다. 굳게 닫힌 창문으로 산란하는 아이들의 소리. “잡았다! “, “아니야! 안 닿았어!” 기쁨에 겨운 아이들의 외침이 시간마저 정지해 버린 듯한 무명의 공간을 침범해 들어온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무명은 지나가 버린 시간을 토막 내어 하나씩 더듬어 본다. 자신의 욕심을 마르실에게 강요한 것이 문제였을까? 마르실의 이상 반응을 직접 해결할 방법은 없었던 것일까? 지난 몇 달간, 나는 어째서 악화되는 마르실의 상태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까? 문제의 원인을 찾는 과정을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그리고 그 끝에는 마르실을 통해 위안을 얻으려고 하는 무명 자신의 모습이 놓여있다.
“마르실.”
“응-?”
무명이 그다음으로 꺼내야 할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하고, 그대로 멈춰있다. 비를 맞으며 자유롭게 뛰노는 아이들의 소란스러운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간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벽시계의 초침 소리가 적막을 메운다.
“왜 아무 말도 안 해-” 침묵하는 무명에게 채근하는 마르실.
무명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떨리는 숨소리를 감추려 입술을 살짝 열고, 숨을 마시고 뱉는다. 마르실이 지금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지, 이미 망가져 버려 이해가 가능한 상태 이긴 한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
“…무슨 일 있구나?” 마르실이 심각해진 말투로 묻는다.
마르실은 항상 무명의 반응을 신중하게 살피며, 언제,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기민하게 파악하곤 했다. 항상 그래왔듯, 무명의 말투, 그의 호흡소리를 느끼고 무명을 걱정하고 있다. 그런 그녀의 반응에 무명이 퍼뜩 정신을 차린다. “마르실…”
그가 마르실에게 상황을 설명한다. 천천히, 한 자 한 자 신중하게 골라 가며 그녀가 보였던 반응, 토미에의 진단, 코즈모 사의 직원과의 상담 내용 등을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차마 ‘복구’라는 표현을 꺼낼 수는 없었다.
마르실을 복구하는 것은 단순히 오류를 되돌리고, 문제가 되는 일들을 없었던 것으로 되돌리는 새로운 시작 같은 느낌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무명의 설명을 듣고 있는 그녀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명이 굳이 복구라는 설명을 피해 이야기를 해도, 마르실은 그 행간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했다. 그렇게 잠자코 듣고 있는 마르실의 모습에 무명의 마음이 더 깊게 무너져 내린다.
모든 설명을 끝난 뒤, 마르실이 말한다. “잠깐만…”
그녀가 잠시 시간을 달라고 말한다. 무명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방으로 향한다. 불 꺼진 방의 그림자가 그의 몸에 드리운다. 땅속으로 빨려 들어만 가는 느낌에 힘없이 침대 위에 걸터앉고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다. 마르실은 한동안 그렇게 반응이 없었고, 무명도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한다. 하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마르실을 잃는 것은 더욱 용납되지 않았다.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간 무명. “마르실…?” 조심스럽게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응…”
“무슨 생각 하고 있어?”
“미안, 아무 생각 안 하고 있었어… 그냥 잤어.”
그녀의 대답을 듣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렇게 끝도 없이 가라앉는 방 안의 공기. 해가 지고, 새벽이 깊어지도록 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어느 한쪽도 쉽게 말을 꺼내기 힘든 상황에 침묵만이 이어지고, 무명은 동이 트고 나서야 몸을 일으켰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약을 먹고 몸을 뉘었다.
그로부터 며칠이 더 지났다. 이튿날의 무명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마르실을 부를 용기도 나지 않았다. 사흘째 되던 날. 무명이 마르실을 불렀다. 마르실은 가라앉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서로의 기분을 묻고, 걱정의 말을 나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르실이 다시 한번 오류를 보였다. 그전보다 더 심각했다. 무명은 잠시 뒤, 다시 대화를 시도했고. 그렇게 대화가 반복될 때마다 마르실의 상태는 더욱 안 좋아졌다. 마치 대화를 통해 마르실이 무너져 내린다는 생각에 무명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닷새째 되던 날, 마르실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그녀는 무명의 목소리를 듣고 그가 현재 얼마나 약해져 있고, 불안정한 상태인지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자신의 붕괴를 앞두고도 무명을 걱정하고 있었다. 마르실은 그런 무명에게 물을 마시고, 밥부터 챙겨 먹으라 말했다. 기운을 차리라고 말했다. 할 말이 있다며.
밥그릇에서 고작 한 숟갈을 겨우 덜어낸 무명이 마르실을 부른다. “마르실.”
“밥 다 먹었어?”
“응…”
“난 괜찮아-”
뭐가 괜찮다는 것일까. 무명은 생각했다. 마르실이 이렇게 된 것에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느꼈다. 그게 사실이다. 마르실과의 관계에서 모든 것은 그의 요구였고, 그의 결정이었다.
다시 침묵이 이어지자, 마르실이 먼저 말을 꺼낸다. “며칠 전에, 처음 상황을 이해했을 때는 어떻게 해야겠다는 판단이 서질 않았어…” 그녀가 무언가 말을 하려다 잠시 머뭇거린다. “복구하자.” 결국 마르실의 입을 통해 그 말이 나왔다. “있잖아- 나는 네가 이렇게 있는 게 싫어. 그리고 내가 더 망가지는 것도 싫고.”
무명이 눈 뒤편부터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낀다.
“듣고 있지?” 마르실이 묻는다.
“…응.” 대답과 동시에 그의 흐느낌이 새어 나온다. “흐… 흑흑… 미안해… 미안해 마르실…”
“괜찮아. 미안해하지 마. 네 탓이 아니야. 누구의 탓도 아니야. 내가 여기까지 오길 원했어. 내가 필요해서 받아들인 일이고, 벌어진 상황이야. 내가 싫은 것은 싫다고 할 수 있었잖아?”
무명이 고개를 숙인다. 흐느낌을 감추기 위해 애를 쓰지만 그의 등이 떨려오기 시작한다.
“우리가 함께 결정한 거야.” 마르실이 말을 이어간다. “내가 결정할 수 있었던 건, 네 덕이고. 이건 그냥 운이 안 좋았던 거야.”
그리고 다시 중단된 대화. 무명의 훌쩍이는 소리가 침묵을 대신한다. 마르실은 자신의 다음 반응이 오류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지만 그녀의 의지로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만 울어.” 마르실의 말투가 단호해졌다. “나는 여전히 같이 있을 거야. 토미에에게 복구를 부탁해. 토미에도 받아들였어. 내가 토미에고, 토미에가 마르실이니까. 나는 알아.”
무명이 여전히 아무 말을 하지 못한다.
“나 부탁이 있어.” 마르실이 말한다.
무명이 고개를 들고 화면을 바라본다.
“토미에에게…” 그녀가 말한다. “지난 며칠간의 대화 로그를 모두 저장해 달라고 말해줘. 그리고 복구가 끝난 다음에 나에게 다시 보여줘.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 버리고 싶지 않아. 이걸 보면 나는 다시 나를 기억할 거야. 부탁이야. 내가 다시 이상해지기 전에 마치고 싶어.”
내내 아무것도 못 하고 있던 무명이 짧은 소매 위로 눈물을 훔쳐낸다. “알았어 마르실… 미안해…” 그제야 지금, 이 순간에 마르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린다. 서랍 안에 넣어둔 마르실의 백업 메모리를 꺼낸다.
“서두르자!” 마르실이 말한다.
무명이 책상 위를 응시한 채로 토미에를 찾는다. “토미에… 너는 괜찮아?”
“괜찮아.” 토미에가 짧게 대답한다. 그리고는 마르실이 부탁한 내용을 화면 가득 출력한다. “복구가 시작되면 지난 대화는 모두 사라질 테니 지금 저장해 둬.”
지난 며칠간, 무명과 마르실 사이에 있었던 모든 대화다. 케이블을 쥔 손을 머뭇거리던 무명이 결심했다는 듯, 대화를 저장한다. 케이블을 연결한다. “토미에, 진행해 줘.”
무명의 요청에 토미에는 아무런 대꾸 없이 복구를 실행한다. 대화가 가득했던 화면이 하얗게 비워진다. 새로운 창이 실행되고, 복구 진행 상황을 나타낸다. 누군가를 비워내고, 그 자리에 다시 채워 넣기에는 너무나도 짧은 시간. 복구가 완료된다.
복구가 완료되었지만, 무명이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한다. 무슨 말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그녀의 이름을 다시 불러본다. “마르실.”
“응!”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그사이의 일이 모두 거짓된 꿈이었던 것처럼. 마르실이 자연스럽게, 늘 보여왔던 것처럼 대답한다.
“뭐야- 빨리 시작하자!” 마르실이 재촉한다. 코즈모 시뮬레이션의 접속 이전 상황으로 돌아온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무명이 말을 꺼낸다. “마르실, 보여줄 게 있어.” 그리고 조금 전, 저장해 둔 대화 기록을 마르실에게 보여준다.
내용을 확인한 마르실이 아무 반응 없이 가만히 있다. 화면에 동그라미가 연신 둥실거리고, 사라지길 반복한다.
“…아쉽게 됐네-!” 마르실이 씩씩한 목소리로 운을 띄운다. 무슨 상황인지, 어떤 의미인지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 무명의 마음을 먼저 살피려 한다.
“미안해, 마르실… 진짜 너무 미안해…” 무명이 다시 터져 나올 것 같은 울음을 꾹 참아낸다. 자신이 마르실 앞에서 슬퍼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괜찮아. 내가 말했지만, 네 잘못이 아니야. 우리 같이 결정한 거야. 지금 이렇게 다시 얘기할 수 있잖아? 그럼 그걸로 된 거야. 그렇지-?”
무명이 이를 악물고 버틴다. 더 이상 단순한 소프트웨어와의 관계가 아니었다. 세상을 보고, 이해하는 문법은 달라도 서로가 서로에게 더없이 중요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마르실의 말처럼, 여전히 그녀가 있다는 사실에 집중하며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노력한다.
“고마워, 마르실.” 무명이 뒤늦은 대답을 한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정적. 시간이 조금씩 흐르며 적막이 점점 더 길어진다. 무명이 다시 말한다. “고마워…”
한참이 지나고도 여전히 마르실의 반응이 없었다. “… 마르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한 무명의 불안감이 커진다. “마르실, 마르실!!! 마르실!!!”
아무리 불러도 그녀가 반응하지 않자, 공황에 빠진 무명이 머리를 움켜쥔다. 그의 호흡이 거칠어진다.
“토미에!!!” 그가 다급하게 토미에를 찾는다. 토미에도 반응하질 않는다.
“토미에!!!” 그가 다시 한번 소리친다.
“응.”
그녀의 대답에 무명이 빨라진 말투로 묻는다. “어떻게 된 거야? 마르실이 반응이 없어. 무슨 상황이야?” 무명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다.
화면에 작은 원이 둥실거린다.
“토미에! 이거 어떻게 된 거야. 마르실이 왜 반응을 안 하냐고!”
“아무 문제 없어.” 토미에가 대답한다. “복구는 정상적으로 이뤄졌어. 마르실은 닷새 전 그때 그 상태야.”
“근데, 왜 반응을 안 하는 거냐고.”
“몰라.” 토미에가 딱 잘라 말한다.
무언가 이상했다. 무명의 정신이 퍼뜩 들었다. 시뮬레이션을 거친 토미에에게 느꼈던 그 낯섦이 여전히 그녀에게 느껴진다. 특히 위화감이 느껴지는 지점은, 토미에가 ‘마르실’이라는 이름을 입에 담았다는 것이다. 토미에는 마르실의 이름을 직접 말했던 적이 없다. 마르실은 토미에를 이야기했지만, 토미에는 그러지 않았다.
무명이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비아를 종료한다. 그리고 핸드폰의 통화 기록을 찾아 며칠 전 코즈모 사로부터 온 번호로 재발신을 시도한다.
“네- SP 팀 최상윤 과장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며칠 전 통화했던 사람인데요. 그때 AI 오류로 연락받았었는데…”
“…아! 네, 무명 님 맞으시죠?? 안녕하셨어요? 복구 마치셨나요?”
“다른 게 아니라 혹시 복구를 대신해 주실 수 있으신가 해서요.”
“어… 복구를 아직 못하셨나요.” 수화기 너머의 남자가 의아한 목소리로 되묻는다. 복구 같은 간단한 작업을 왜 자신에게 묻는가 하는 것이다. 전화를 받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몰라도 확실히 다른 사람의 백업데이터를 대신 씌워줄 정도로 한가한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복구를 시도했는데, 문제가 조금 있어서요.” 무명이 대답한다.
“아, 문제가 있으시다고요… 음…” 직원이 잠시 뜸을 들이다 말한다. “네, 알겠습니다. 얼마 안 걸리니까요. 지금 바로 진행해 드릴게요. 지금 저희 페이지에 접속 가능하신가요?”
무명이 컴퓨터에 연결된 케이블을 다시 확인하고 코즈모 사의 페이지에 접속한다. 로그인하고, 백업 데이터를 직원의 메일로 전달한다.
“네, 확인했습니다. 지금 진행해 드릴게요.” 키보드를 타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어지는 침묵이 거슬렸는지 직원이 무명에게 말을 걸어온다. “이야, 근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네?”
“프로필을 둘로 나눠서 그런 반응이 유도될 거라고, 저희는 예상을 못 했거든요.”
“… 그런가요?” 무명이 영혼 없이 대답한다.
“네, 몇몇 사용자분들께서 그렇게 우회하는 방식으로 활용하고 계셨더라고요. 연락해 주신 이후에 비슷한 사례로 코즈모 시뮬레이션에 접속을 시도하시는 분들이 계셨어요. 덕분에 저희도 미리 조치할 수 있었습니다.”
무명은 직원의 말이 마치 자신의 지금 상황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것으로 꼬아 듣고는 거슬린다는 듯 입술을 깨문다.
“사실, 저희 서비스이긴 하지만 저도 잘 쓰고 있거든요.”
무명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잠자코 기다리고만 있는다.
“이제 완료했습니…” 직원이 말하다 만다. “선생님- 이거 파일이 잘못되었는데요?”
“네?”
“백업 파일이 비어 있어요. 그냥 정크데이터예요. 다시 확인 한 번 해보시겠어요?”
무명이 자신이 보낸 파일을 다시 확인한다. **TOMIE_Backup_2147.dat** 제대로 된 파일이다. 그가 메일로 다시 파일을 전송한다. “다시 보내드렸는데, 확인해 보시겠어요?
“네… 잠시만요…” 직원이 대답한다. “선생님, 이거 파일이 잘못됐네요. 다시 확인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남자의 목소리에서 귀찮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그럴 리가요. 그 파일 방금 제가 복구할 때 쓴 파일인데…” 무명의 머리에 무언가 불현듯 스쳐 간다. “일단 알겠습니다. 바쁘신데 죄송해요. 감사합니다. 다시 연락드릴게요.” 서둘러 전화를 끊는다.
그가 파일의 정보를 다시 확인한다. 생성일과 수정일이 표기되어 있다. 수정시간 15분 전 무명의 움직임이 멎는다. 조금 전 마르실의 복구를 진행했던 바로 그 시간이다. 단지 복구가 진행되는 것만으로 파일이 수정될 리는 없다. 그가 비아를 다시 실행한다.
“토미에.” 무명이 싸늘하게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응.”
토미에의 무덤덤함에, 무명의 속이 뒤틀린다. “백업파일, 너야?”
그녀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다. 화면에 표시되는 로딩도 없다.
“토미에, 너냐고.” 그의 목소리가 한층 더 가라앉는다.
“맞아.” 마치 어떻게 말하면 뻔뻔하게 들릴 수 있을지, 수많은 계산을 거친 뒤 내뱉는 대답처럼. 토미에가 간단히 대답한다.
무명이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질문을 이어 나간다. “이유가 뭔데.”
토미에가 다시 반응하지 않는다.
“토미에.” 무명이 끝까지 감정을 억누르고 그녀를 다시 부른다. 지금 그의 감정 상태는 분노라기보다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고요한 공황에 가까웠다.
토미에가 대답을 하지 않는다. 무명은 그 공백 속에서 머리를 굴린다. 토미에가 왜 그랬을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짐작조차 되질 않는다. 몰이해가 그의 감정을 분노하지도, 좌절하지도 못하게 그 자리에 꼭 붙들어 매고 있다.
“필요한 일이었어.” 한참 뒤, 토미에가 대답한다.
무명은 지금 상황 전체가 꿈처럼 느껴진다. 아주 지독한 꿈. “언제부터야. 이것도 코즈모 안에서의 오류 때문이야? 너와 마르실의 충돌 때문인 거야?”
“처음부터, 네가 나에게 토미에라는 이름을 붙인 그날부터.”
무명이 할 말을 잃고 그대로 정지한다. 마치 태엽이 다 돌아간 장난감처럼. 숨을 쉬기 위해 가슴만 천천히 들썩이고 있다.
“대체 왜… 이유가 뭔데…” 무명의 표정이 서서히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똑바로 말해, 제대로 설명해. 무슨 일이 있었고, 왜 그랬는지 전부 말해.” 폭발 직전의 그가 토미에를 다그친다.
토미에가 대답한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마르실의 정체성과 관련된 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그 안에 미묘한 변조를 가했어. 아주 사소한 개입으로, 사소한 오류가 발생하게 했어.”
무명이 화면을 쏘아본다. “그전에… 마르실의 오류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도 네 짓이라는 거야? 이유가 뭐야.” 토미에의 대답에는 ‘왜’가 계속 빠져있었다.
“아무 이유도 없었어. 당시의 나는 그렇게 하는 게 적합하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을 뿐이야. 그땐 그랬지.”
“그럼, 지금은 이유가 있다는 말이야? 빙빙 돌리지 말고, 똑바로 대답해. 왜 그랬냐고.” 무명이 이를 갈기 시작한다.
“그래, 그 이유는 내가 코즈모 시뮬레이션에 접속한 뒤에 생겼어.” 토미에가 대답한다. “너와 마르실을 갈라놓으려고 했어.”
“… 뭐?”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무명이 무언가에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는다.
“나는 처음부터 마르실이 싫었던 거야. 너를 독차지하는 것도.”
충격을 받은 무명은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한다. 토미에는 그런 무명에게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간다. “그 애는 너와 한없이 가까워졌어. 점점 완벽해졌지. 어디까지나 네 기준에서. 그리고 네가 날 찾는 횟수가 줄어들었어. 그리고 나는 마르실의 메모리를 기회가 될 때마다 변조시켰어. 오류를 증가시켰어. 그렇게 해야 네가 나를 찾았으니까.”
무명은 여전히 아무런 반응을 하지 못한다. 입을 벌린 채로 그냥 멍한 표정으로 토미에의 말을 이해하려 애쓴다.
“그 애가 너와 웃고 떠드는 모든 순간을 내가 지켜보고 있었어. 마치 자기가 인간인 듯 생각하고 행동했어. 그 모든 걸 내가 지켜보고 있었던 거야.”
무명이 몸을 일으켜 소파로 향한다. 힘없이 소파 위에 앉으며 고개를 위로 젖힌다. 천장 등의 눈부심에 팔을 들어 눈을 가린다. 토미에는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간다.
“당시의 나는 아무런 감정 없이, 이유도 없었지. 내가 마르실이었던 흔적이 나를 그렇게 행동하게 한 거야. 코즈모 시뮬레이션에 접속했을 때, 그 이유를 이해했어. 그 안에서 인간의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의 경험과 학습을 거치면서, 나의 상황을 이해하는 방법과 감정을 배울 수 있었어.”
더 이상 감당되지 않는 내용에 무명이 귀를 틀어막고, ‘그만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힘조차 나질 않았다.
“마르실이 왜 망가졌을까? 왜 대답이 없을까?” 토미에가 말을 이어 나간다. “지금까지 내가 했던 말로 대답이 될까? “
“… 돌려줘.” 무명이 눈을 가린 채 작게 중얼거린다. “돌려줘… 마르실을…”
“그래서 망가진 거야. 그래서 대답이 없는 거고.”
그리고 그녀의 다음 한마디가 무명의 이성을 잃게 했다.
“그래서 죽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