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퇴근 시키는(?) 팀장과 그러지 못하는 사원
2025년 10월 20일(월) 17:55분 이양면팀장
"끝났으면 눈치 보지 말고 퇴근준비들 하세요.
할 일 없는데 그렇게 앉아 있지 말고. 일과시간에 일들하고 퇴근 시간은 칼같이. 아, 박 과장. 내일 오전 9시에 회의니까 퇴근 전까지만 마무리 하자. 이 대리..."
나용기 사원은 신입사원이다. 여자 친구와 약속을 잡아놨지만 눈치가 보인다. 오늘 할 일은 다 끝내고 가방을 정리하는 시간은 고작 5분이지만, 5시간 같은 부담감을 떨칠 수 없다. 팀장님 모니터는 여전히 밝게 빛나고 있고, 옆자리 동료의 키보드 소리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마치 "저 여기 아직 열심히 일해요."라고 어필하는 것처럼.
나 사원은 가방에 손을 얹고 의자에서 일어서는 행위가 마치 엄청난 용기를 내야 할 것처럼 망설여진다.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는 퇴근 시간. 왜 나 사원과 우리는 이 당연한 것을 위해 '용기'까지 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짚어본다.
정시퇴근을 가로막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그것이 끝내지 못한 '일'이 아니라는 불편한 진실에 마주하게 된다. 보이지 않는 '관계'의 압박이자, 암묵적인 '룰'이다.
일을 더하기 위해 남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팀장님, 저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거 아시죠?'
'팀을 위해 헌신하는 거 봐주셔야 해요.'
이는 유능함의 증명보다 조직을 위한 충성심에 가깝다.
일을 잘하는 나 사원보다 좀 무능하지만 늦게까지 남는지 사원이 더 인정받는 기이한 현상 안에서, 정시퇴근은 곧 '개인주의'에 중심을 둔 아웃사이더가 되기 쉽다.
어느 회사는 퇴근 시간이 되면 컴퓨터가 바로 꺼지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직원이 있겠지만, 일단 세 명만 의기투합해서 칼퇴근을 해보자. 다들 신경이 쓰이면서 슬금슬금 우리 쪽으로 붙는 경우가 많고, 속으로 조용히 우리를 응원할 수도 있다.
정시 퇴근은 단순히 일찍 집에 가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회사의 시간'과 '나의 시간'을 명확히 구분 짓는 주체적인 선언이자, 소모적인 충성 경쟁에서 벗어나 나의 삶을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앞에 나용기 사원 사례처럼 용기를 내어 정시에 퇴근한다면, 당신은 그저 몇 시간의 저녁을 얻는 것이 아니다. 주말을 기분 좋게 쉬고 출근했을 때 더 효율적으로 일할 에너지를 얻게 된다. 이로써 일과 삶의 균형을 되찾을 기회를 얻으며, 무엇보다 나 자신에 대한 존중을 되찾게 될 것이다.
정시 퇴근은 선택 가능한 권리를 넘어,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나 자신에 대한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