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괴인(怪人), 역사의 문을 두드리다

류성룡과의 첫 대면

by 유블리안

혼돈, 1591년의 아침


[충효당(忠孝堂)]


희성이 현판을 보고 넋을 잃은 사이, 가장 먼저 정적을 깬 것은 김민수 의원이었다.


"이게 무슨 미친 쇼입니까, 류 박사!"


그가 흙먼지가 묻은 최고급 정장 바지를 털며 소리쳤다.


"날 이런 촌구석 세트장으로 끌고 와서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이거 방송국 몰래카메라야? 내 변호사한테 당장..."


"조용히 해봐라, 김 의원."


김민수의 말을 자른 것은 뜻밖에도 류시인이었다. 그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조용히? 류 작가, 당신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돼? 아니면... 당신도 류 박사랑 한패였어?"


"그런 말이 아니잖습니까!"


류시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가, 이내 목소리를 낮췄다.


"저 공기…. 흙냄새…. 저 소리…. 이건…. 세트장에서 나는 냄새와 소리가 아니야."


"세트가 아니면 뭐란 말입니까! 우리가 순간이동이라도 했다는, 그런 비과학적인 말을 믿으라고?"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이건 진짜야…."


이성적인 논객 류시인은 생전 처음으로 자신의 '이성'이 마비되는 것을 느꼈다. [충효당]이라는 글자가 주는 무게, 수백 년 된 나무 기둥의 질감, 이 '압도적인 맥락' 한가운데에 내동댕이쳐진 충격에 휩싸였다.


"여보."


다온이 희성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그녀의 귀가 유난히 밝았다.


"왜 그래?"


"들려요... 저기, 문틈에서...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속삭이고 있어요."


"뭐라고 하는데?"


다온은 침을 삼켰다.


"저것들... 옷차림이 괴이쩍다... 오랑캐도 저렇진 않을진대... 혹 왜놈 첩자가 아니냐...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괴인(怪人)의 출현


바로 그때였다.


"아, 사람 살려! 괴, 괴인이다! 괴인들이 대청에!"


그릇 깨지는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침 문안을 준비하던 하인이 양복 차림의 사내 둘과 이상한 옷차림
의 남녀를 보고 뒤로 나자빠진 것이다. 순간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무슨 일이냐!"


"대청에! 대청에 괴인들이!"


"뭐라고? 왜놈 첩자들인가!"


"아니다! 귀신같기도 하고... 머리카락이 짧고..."


삽시간에 낫이나 몽둥이, 심지어 부지깽이를 든 하인들과 가솔(家率) 들이 뛰쳐나와 네 사람을 멀찍이 포위했다.


"이보시오! 당신들 지금 뭐 하는 거야!"


김민수가 포위망을 향해 호통을 쳤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을 모욕하려는 정교한 연극이라 확신했다.


"책임자 불러! 당장 책임자 나오라고 해! 당신들 이거 불법 감금이야!"


하인들은 그의 권위적인 서울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저 괴인이 이상한 소리로 위협한다고 생각해 더 겁을 먹고 몽둥이를 고쳐 잡았다.


"저, 저 괴수(魁首)가 뭐라 지껄이는 게냐!"


"무어라 하는지는 몰라도, 우리를 위협하는 것 같다!"


"관아에 알려야 하는 거 아니냐!"


자신의 권위가 전혀 통하지 않는 '이물질'이 되었다는 사실에 김민수의 불쾌감은 극에 달했다.


"뭐라는 거야! 말이 안 통하잖아! 류 박사! 이거 당신이 꾸민 짓이지! 이 사람들 다 엑스트라 아니야! 당장 이 미친 짓 그만두라고 전해!"


그는 류성룡의 후손이라는 류시인과 류희성을 번갈아 노려보았다.


"아니면, 당신들 종갓집에서 이런 식으로 사람 겁박하는 게 취미인가?"


서애(西厓), 모습을 드러내다


"멈추어라. 다들 물렀거라."


모든 소란을 잠재우는, 낮지만 힘 있는 목소리가 안채에서 들려왔다. 소란스럽던 하인들이 순간 얼어붙더니, 황급히 길을 열었다. 파직당한 사대부의 소박하지만 단정한 도포 차림 한 사내가 마른기침을 하며 대청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괴인'들의 행색에 잠시 놀란 듯했으나, 이내 침착하고 날카로운 눈으로 네 사람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희성이 박물관과 데이터 속에서만 보았던, 바로 그 얼굴이었다. 희성은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이것은 데이터가 아니었다. '패턴'이나 '알고리즘'이 아닌, '진짜' 류성룡. 자신의 조상, 그리고 실패하는 알고리즘 속에서 고뇌했던 역사 그 자체였다.


"대... 대감님..."


류시인 역시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성으로 버텨온 세계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당신이... 당신이 이 연극의 책임자인가!"


김민수가 유일하게 현실을 부정하며 류성룡을 향해 소리쳤다.


"좋소, 연기 잘 봤습니다. 이제 그만하시죠. 당장 이 미친 짓 그만두고 내 휴대폰 돌려줘!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류성룡은 김민수의 광기 어린 외침은 무시했다. 그는 가장 절박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희성, 그리고 넋이 나간 류시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대들의 행색과 말이 기이하나, 왜적의 첩자로 보이지는 않는군."


그의 시선이 네 사람의 절박함을 꿰뚫어 보았다. 그는 1591년 봄, 낙향해 있었지만, 누구보다 나라의 '징조'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대들은... 어디서 온 누구인가."


류성룡의 물음에 김민수와 류시인은 대답하지 못했다.


"여보, 안 돼요!" 다온이 희성을 말렸다. "역사를 바꾸면... 우리가 어떻게 될지 몰라요!"


"하지만...!"


희성이 다온을 바라봤다.


"우리가 여기 온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일지도 몰라. '징비'는... 미래를 바꾸라고 있는 말이야."


희성은 결심했다. 그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대감..."


희성의 목소리가 절박하게 떨려 나왔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저희는... 500년 뒤의 미래에서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