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손님'인가, '포로'인가
김민수 의원이 "나는 한양으로 가겠소!"라며 사랑방 문을 박차고 나간다.
"김 의원님!" "잠깐만요!"
희성과 류시인이 당황해서 그를 뒤따랐지만, 김민수는 이미 대청마루를 지나 마당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2025년 서울에서 하던 버릇 그대로였다. 일단 저지르고, 실무진에게 수습을 맡기던 그 방식. 하지만 그는 [충효당]의 '대문' 앞에서 우뚝 멈춰 섰다. 그가 예상한 것은 자신을 막아서는 기자들이나 보좌관들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것은 흙먼지 날리는 낯선 마당과, 몽둥이를 든 채 자신을 경계하는 가솔(家率) 둘 뿐이었다.
"… 비키시오."
김민수가 위엄 있게 명령했다. 하지만 가솔들은 그의 '표준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그저 '괴인'이 또다시 문밖으로 뛰쳐나가려 한다고 판단, 몽둥이를 고쳐 잡고 길을 막아섰다. 김민수는 그들의 적의 어린 눈빛을 보고 깨달았다. 2025년의 '국회의원 김민수'라는 권력은, 1591년 안동 하회마을에서 몽둥이를 든 하인 하나보다도 무력했다. 치밀어 오르는 굴욕감에 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김민수는 분노에 차 씩씩거리며 다시 사랑방으로 돌아왔다. 류성룡과 류담은 그가 포기하고 돌아온 줄 알았다는 듯 담담한 표정이었다.
"하... 역시 무리였..."
희성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김민수는 희성이나 류성룡이 아닌, 희성의 곁에 선 다온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당신."
"…네?" 다온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당신이 나와 같이 가야겠소."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희성이 격분하며 즉시 다온의 앞을 막아섰다.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겁니까!"
"비켜! 류 박사!" 김민수가 희성의 어깨를 거칠게 밀쳤다. "이건 사적인 감정으로 볼일이 아니야. '국가적 사안'이라고!"
"내 아내를 데리고 어딜 가겠다는 겁니까!"
"아내? 지금 '아내'가 중요해?" 김민수의 눈이 번뜩였다. "저 여자는 21세기와 16세기를 잇는 유일한 '통역 장비'야! 이 장비 없이는 난 서인을 만나든 누굴 만나든 아무것도 못 해! 그러니 '징발'하는 거요!"
김민수는 다온을 '인격체'가 아닌 '전략 자산'으로 취급했다. 2025년 국회에서 하던 '진영 논리'의 버릇이 그대로 튀어나온 것이다. 다온은 김민수의 그 노골적인 시선에 모욕감과 두려움으로 손을 떨었다.
"김 의원님, 미쳤습니까!"
희성과 김민수가 멱살잡이 직전까지 가는 일촉즉발의 상황.
"그만두시오! 두 사람 다!"
두 사람을 말린 것은 뜻밖에도 류시인이었다. 그는 "안 돼... 개입하면 안 돼..."라며 머리만 감싸 쥐고 있던 방관자에서 벗어나 있었다.
"김 의원님, 그 방식은 틀렸소. 하지만 류 박사, 우리끼리 싸워선 안 돼! 우리가 여기서 분열하는 것 또한 '실패의 이치'요!"
이 모든 소란(알아들을 순 없지만)을 지켜보던 류성룡이 다온에게 물었다.
"대체... 무슨 일로 또 다투는가."
다온이 떨리는 목소리로, 하지만 정확하게 통역했다.
"… 대감. 저 사람(김민수)이... 저를 데리고 한양의 서인(西人)들을 만나러 가겠다... 하옵니다."
순간, 류성룡의 눈빛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그간 보였던 '후손'을 대하는 따뜻함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는 분노하는 대신, 차분하게 김민수의 계획을 논리적으로 반박한다.
"저 자에게... 그대로 전하시오."
"한양은 여기서 칠일 길이오. 그대는 엽전 한 푼, 말 한 필 없소. 이 시대의 신분증인 '호패(戶牌)'도 없으니, 문을 나서는 순간 관아의 노비가 되거나 도적의 밥이 될 것이오."
김민수가 "이 여자가 있으면 되오!"라며 다온을 가리키자, 류성룡이 고개를 젓는다. 다온이 그 말을 통역했다.
"다온의 도움이 있어도 불가능하오. 그대는 지금 '파직된 동인(류성룡)'의 집에 머무는 '신원 불명의 괴인'이오. 그런 그대가 느닷없이 한양의 '서인'을 찾아가 '왜적이 쳐들어온다'라고 고하면, 서인들이 그대들을 무어라 생각하겠소?"
"..."
김민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2025년의 자신이 야당 인사로서, 정체불명의 인물이 '여당 핵심 인사'의 집에서 나와 그런 정보를 흘렸다면 자신 또한 '공작'을 의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류성룡의 논파는 계속됐다.
"그들은 그대를, '동인(류성룡)이 서인을 이간질하고 조정을 흔들기 위해 보낸 첩자'로 볼 것이오. 그대는 그 자리에서 국문을 당하고, 그대의 말은 '동인을 공격하기 위한 서인의 유언비어'로 취급되어, 방금 전 내가 겪었던 그 묵살보다도 더 큰 당파 싸움만 격화시킬 것이오."
류성룡은 김민수의 계획이 '자살행위'이자 '역사를 망치는 최악의 수'임을 논리적으로 증명했다. 김민수는 반박하지 못하고 주먹만 부들부들 떨었다. 그의 방식(진영 논리)이 500년 전의 인물(류성룡)에게 '진영 논리'의 허점 때문에 완벽하게 논파당한 것이다. 류성룡은 맏아들 류담을 불렀다.
"담아."
"네, 아버님."
"이분들은 나라의 존망이 걸린 비밀을 아는, 가장 귀한 '손님(빈객)'들이다."
"..."
"허나, 이분들은 이 시대의 법도와 위험을 모르시니, 우리가 '보호'해 드려야 마땅하다."
류성룡의 시선이 김민수에게 향했다. 다온이 그 말을 통역했다.
"저분(김민수)이 혹여, 자신도 모르는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가솔들을 시켜 이 사랑채를 잘 '보호'해 드리거라. 단 한 발자국도, 우리의 '보호' 없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맏아들 류담이 아버지의 깊은 뜻을 깨닫고 고개를 숙였다.
"… 명을 받들겠나이다."
가솔 몇몇이 사랑채의 입구와 뒤뜰로 향하는 문을 지키기 시작했다. 그것은 '감금'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유'도 아니었다. '보호'라는 명분으로 사랑채에 완벽하게 '연금'된 것이다. 김민수는 흙빛이 된 얼굴로 주저앉았다. 류시인은 '역사 개입'을 막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듯했지만, 동시에 자신들도 갇혔다는 사실에 불안해했다. 희성은 류성룡의 조치를 이해했지만, 이 1591년의 집에서 꼼짝없이 갇혀버린 현실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류성룡은 그들을 뒤로하고 조용히 사랑방을 나갔다.
그들은 이제 류성룡의 '손님'이 아니라, 역사의 비밀을 쥔 '극진한 보호 대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