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검은 파도, 1592년 4월

오지 말아야 할 봄이 왔다

by 유블리안

... 1년 후.


1592년 4월, 한양


1592년(선조 25년)의 봄은 잔인할 만큼 평화로웠다. 네 사람은 더 이상 안동 하회마을에 있지 않았다. 류성룡 대감을 따라 한양의 사저(私邸)로 옮겨온 지도 어느덧 1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들에게 시작된 '보호라는 이름의 연금'은, 1591년 여름 류성룡 대감이 '우의정'으로 복직되어 한양으로 돌아오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한양 사저에서의 연금'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류성룡의 감시와 보호 아래, 한양 한복판에 갇힌 비밀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지난 1년은 '실패'가 굳어지는 시간이었다. 희성과 류성룡은 '지경(智鏡, 태블릿)'의 데이터를 근거로 군비 확충과 성곽 수리를 끊임없이 주장했다. 하지만 조정의 '진영 논리'는 굳건했다. 류성룡의 경고는 '서인'을 탄핵했던 '동인'의 영수(領袖)로서, 정적(서인)을 견제하기 위한 '세력 확장'으로 오해받았다. 그의 경고는 그가 속한 '동인' 내부의 강경파들에게조차 묵살당했다.


김민수는 한양에 왔음에도, 류성룡의 감시 하에 '서인' 접촉에 완벽히 실패했다.


류시인은 1년 내내 "역사는 바뀌지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지독한 무력감에 빠졌다. 그의 '신중론'은 이제 '역사 개입'을 두려워하는 '운명론'이 되어 있었다. 다온은 달력에 날짜를 세며, 다가오는 1592년 4월을 공포 속에서 기다렸다.

그들은 1년 동안...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마지막 경고 (D-3)


"여보...!"


평화롭던 1592년 4월의 어느 날 아침, 다온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에 모두가 사랑채로 모였다. 1년 가까이 잠잠했던 희성의 태블릿, '지경(智鏡)'이 지금껏 들어본 적 없는 기계적인 경고음을 내며 스스로 켜지더니, 방 안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D-3: 침공 임박. 패턴 동기화 99.0%]


숫자가 94.7%에서 99.0%로 뛰어올라 있었다.

방 안에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99.0%. 그것은 더 이상 '가능성'이 아니었다. '확정'이었다. 류시인이 "결국... 결국..."이라 중얼거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김민수는 주먹을 꽉 쥐었고, 비명을 질렀던 다온은 두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은 채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 얼어붙은 공기를 깬 것은 류성룡이었다.


"… 올 것이 왔군."


류성룡이 굳은 표정으로 도포를 챙겨 입었다. 1년간의 좌절에도 그의 눈은 아직 죽지 않았다.
희성이 핏발 선 눈으로 절박하게 외쳤다.


"대감!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99%입니다. 전하께... 전하께 직접 고해야 합니다!"

류성룡이 희성을 노려보았다. 그는 잠시 망설였다. 지난 1년간 그들을 사저에 묶어둔 것은, 그들을 '보호'하기 위함이자 동시에 '통제'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99%라는 숫자는 그 모든 원칙을 무시하라고 종용하고 있었다.

"… 좋네."


류성룡이 비장한 표정으로 결단을 내렸다.


"더 이상 '연금'은 무의미하네. 자네(희성)와 '지경'이 가장 확실한 증좌일세. 다온 자네도 통역을 위해 함께 가야겠네."

류성룡과 희성, 그리고 통역을 위한 다온이 궁궐로 향했다. 김민수와 류시인도 불안한 얼굴로 뒤따랐다.


조정의 벽


하지만 그들은 궁궐의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광화문 앞에서 그들을 가로막은 것은 류성룡의 '정적'이자, 그와 같은 '동인'의 강경파 대신이었다.

"대감!"


그가 류성룡을 노려보며 외쳤다.

"지금 근거 없는 유언비어로 전하를 동요케 할 셈이십니까! 며칠 전 대마도에서 온 첩보에 의하면 왜적은 물러갔다 하였는데, 어찌 대감만 홀로 '분란'을 일으키려 하십니까!"

"비키시오! 이는 나라의 존망이 달린 일이오!"

류성룡이 격분하여 소리쳤지만, 강경파 대신은 물러서지 않았다.

"안 됩니다, 대감! 적의 동태보다 내부의 결속이 우선입니다. 부디... '신중'하셔야지요!"

류성룡은 그 '신중'이라는 단어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1년 전 안동에서 받았던 답신에도 똑같은 단어가 적혀 있었다. 그때는 종이 위에 그어져 있던 묵살의 단어가, 이제는 거대한 '벽'이 되어 그를 막아섰다. 류성룡은 궁궐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절망적인 표정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1592년 4월 13일


사저로 돌아온 네 사람과 류성룡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운명의 날이 밝았다. 1592년 4월 13일. 하지만 한양은 여전히 평화로웠다. 새가 지저귀고, 저잣거리에는 활기가 넘쳤다. 류시인이 핏기 없는 얼굴로 창밖을 보며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결국... 아무 일도... 없었나. 1년 동안 우리가 꾼 악몽이었나. 아니면, 우리가 여기 옴으로써 역사가 바뀐 건가...?"

바로 그때였다.

저 멀리 남쪽을 향해 열린 숭례문 쪽에서부터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흙먼지를 뒤집어쓴 파발마가 미친 듯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파발이오! 남쪽에서 파발이옵니다!"

말에서 굴러 떨어진 파발꾼이 성문을 지키던 군사들을 붙잡고 절규했다.

"적... 적입니다!"
"무슨 소리냐! 왜구냐! 몇 명이나 되는 게냐!"

"왜구가... 왜구가 아닙니다!"

파발꾼의 목소리가 찢어졌다.

"검은... 검은 바다였습니다! 셀 수 없는 적선이...!"
"부산포가... 부산진이 함락되었습니다!"

역사는 바뀌지 않았다. 사랑채의 모든 이들이 창백해진 얼굴로 류성룡을 바라보았다. 김민수도, 류시인도, 희성과 다온도... 1년간의 노력이 잿더미가 되는 순간이었다. 류성룡이 조용히 눈을 감았다. 1년간의 사투가 무너져 내리는 절망 속에서, 나직한 탄식이 흘러나왔다.

"... 결국... 막지 못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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