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가 '비명'이 되었을 때
1592년 4월 13일, 부산진이 함락되었다는 첫 파발이 도착한 이후, 한양은 지옥으로 변했다. 그 평화로운 아침은, 조선 200년 태평성대의 마지막 날이었다.
"동래성이… 동래성이 함락되었습니다!"
"상주가… 상주마저 뚫렸습니다!"
"신립 장군이… 충주에서… 전멸하였습니다!"
불과 20일도 채 되지 않아, 남쪽에서의 방어선은 모조리 붕괴했다. 희성의 태블릿('지경') 속 '데이터'가, 이제는 피 묻은 '파발'이 되어 시시각각 도성을 덮쳤다. 1년간 네 사람을 옭아맸던 류성룡의 '보호라는 이름의 연금'은, 전쟁 발발과 동시에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 마지막 경고를 위해 사저(私邸)를 나섰을 때, 이미 그들을 '보호'하던 가솔(家率)들은 흩어지고 없었다. 1년간의 '정치적 연금'은, '전쟁'이라는 거대한 현실 앞에서 허무하게 무너진 것이다.
1년 내내 "신중론"을 외치던 조정은, 정작 진짜 위기가 닥치자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했다.
류성룡은 텅 빈 사랑채에서 네 사람을 만났다.
"궁궐로… 가야 하오. 전하께 '파천(播遷, 수도를 버리고 피난함)'을 주청해야 하오!"
궁궐은 이미 패닉 상태였다. 대신들은 텅 빈 눈으로 "어찌… 어찌 이럴 수가…"라는 말만 되뇌고 있었다. 왕(선조)은 이미 넋이 나가 있었다. 류성룡이 피를 토하듯 외쳤다.
"전하! 종묘사직을 보전하시려면, 일단 북쪽(의주)으로 피하셔야 하옵니다!"
그때, 불과 며칠 전 궁궐 문 앞에서 류성룡을 가로막았던 바로 그 '동인 강경파' 대신이 류성룡을 노려보며 외쳤다.
"이게 다… 류 대감이 '서인' 놈들의 말에 동조하여 '분란'을 일으켰기 때문이오!" 반대편에 앉아있던 '서인' 대신이 맞받아쳤다.
"무슨 망발이오! '동인' 무리가 '신중론'만 읊으며 경고를 묵살하여 이 지경이 된 것이 아니오!"
전쟁이 터졌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진영 논리'로 서로를 비난하고 있었다. 김민수와 류시인은 그 광경을 넋이 나간 채 바라보았다. 500년 전이나, 500년 후나, 실패하는 자들의 모습은 이토록 똑같았다.
"시끄럽다!" 선조가 비명을 질렀다. "과인은… 과인은 떠나겠노라! 당장 짐을 꾸리라!"
파천은 결정되었다. 이는 '국가적 피난'이 아니었다. 왕과 조정이 도성을 버리고 도망치는 '야반도주'였다. 희성, 다온, 김민수, 류시인. 네 사람도 류성룡을 따라 비에 젖은 어둠 속을 뚫고 피난길에 올랐다. 그들이 1년간 머물던 한양 사저를 나서는 순간, 그들은 더 이상 '미래에서 온 비밀 손님'이 아니었다. 그저 수많은 피난민 중 하나일 뿐이었다.
"전하! 우리를 버리고 가시나이까!" "이보시오! 이게 나라요!"
궁궐을 빠져나가는 어가(御駕)를 향해, 도성에 버려진 백성들이 돌과 흙을 던지기 시작했다. 다온은 그들의 저주와 욕설이 500년 전의 언어로, 너무도 생생하게 들려와 귀를 막았다.
"이게… 이게 우리가 겪는다는 '역사'야…?"
류시인이 창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가 2025년의 서재에서 '맥락'이라 떠들던 것의 실체였다. 김민수는 말없이 자신의 (어색하기 짝이 없는) 도포 자락에 튄 흙탕물을 내려다보았다. 2025년의 그는 '권력자'였지만, 1592년의 그는 왕에게 버림받은 백성과 똑같은 '피해자'였다.
"희성 씨! 저기!" 다온이 비명을 질렀다. 그들이 막 돈의문(서대문)을 빠져나가는 순간, 뒤쪽에서 거대한 불길이 솟아올랐다. 왕이 자신들을 버렸다는 사실에 격분한 백성들이, 경복궁과 창덕궁에 불을 지른 것이다. 그리고 그 불길은, 노비 문서를 보관하던 '장례원(掌隷院)'으로 옮겨 붙고 있었다.
네 사람은 빗속에서 타오르는 도성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았다. 그들은 역사를 바꾸지 못했다. 그들은 [94.7%]의 데이터가, [99.0%]의 경고가, 마침내 [100%]의 '비명'과 '화염'이 되는 순간을 무력하게 지켜보았다. 희성은 깨달았다. 그들이 1591년으로 온 이유는, 역사를 '바꾸기' 위함이 아니었다. 이 참상을, 이 고통을, 이 뼈아픈 '실패'를… 데이터가 아닌 '피부'로 겪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었다. 2025년의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한 진짜 '징비(懲毖)'는, 바로 이 순간, 불타는 한양을 뒤로하고 떠나는 이 처절한 피난길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