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주연을 돕는 조연은 '내 안의 용기'

주연을 조용히 성장시키고 퇴장하다

by 유블리안

회의실의 공기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경영기획팀장과 마케팅팀 김이나 이사, 영업팀 박현장 부장이 무거운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유승진 대리는 이 얼어붙은 분위기 속에서, '제3의 대안 보고서'를 설명하기 위해 회의실 테이블 앞에 섰다.


팀장이 입을 열었다.


"오늘 회의는 유 대리가 작성한 이 분석 보고서를 기반으로 최종 결정을 내리기 위함입니다. 유 대리, 보고서 설명 시작하게."


유 대리는 마른침을 삼키며 노트북을 켰다. 그는 주머니 속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이모콘' 앱을 켜야 할까. 어제 그를 괴롭혔던 고민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는 일단 앱 없이, 자신이 분석한 내용으로 브리핑을 시작했다.


"양 팀의 주장을 검토한 결과, 마케팅팀의 '인지도 하락'과 영업팀의 '재구매율 하락'은 모두 명백한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유 대리는 어제 AI가 분석해 준 '숨은 의도'들을, 자신의 언어로 차분히 설명했다.


"마케팅팀의 주장은 '성급한 결론'의 오류가 있었고, 영업팀의 주장은 '장기적 위험을 무시하는' 오류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제 결론은 예산을 60대 40으로 배분하여..."


발표가 끝나자마자, 예상했던 폭풍이 몰아쳤다.


"유 대리!"


영업팀 박 부장이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현장을 알기나 해? 숫자놀음으로 우리 영업팀 사기를 꺾는 거야! 40%나 뜬구름 잡는 마케팅에 쓰다니, 다음 분기 매출 떨어지면 책임질 건가! 현장은 내가 제일 잘 안다고. 내가 괜히 이름이 박현장이겠어?!"


곧이어 마케팅팀 김 이사가 차갑게 말을 잘랐다.


"고작 40%로 뭘 하라는 겁니까? 이건 그냥 '우리도 브랜딩 하고 있다'라고 생색만 내는 거잖아! 이렇게 근시안적으로 가다가 회사 이미지 다 망가지면 유 대리가 책임질 거냐고! 아~ 머리에 김이나네."


양쪽에서 쏟아지는 감정적인 공격에 유 대리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팀장의 그 짧은 메일 한 줄에 떨던, 그 익숙한 불안감이 심장을 조여왔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주머니 속 스마트폰을 꽉 쥐었다. '이모콘' 앱을 켜야 했다. 이들의 감정을 분석하고, 논리적 오류를 다시 확인해야 했다. 이 '조연'의 도움이 절실했다. 그의 손이 앱 아이콘으로 향하던 순간, 유 대리는 문득 깨달았다.


'AI가 없으면 난 아무것도 못 하나?'


그는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분노에 차 소리치는 박 부장과 김 이사의 얼굴이 더 이상 '공격하는 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는 어제 AI가 분석해 준 '숨은 의도'의 본질을 떠올렸다. 영업팀의 '적대감'은 사실 '매출을 못 채울 거라는 불안감'이었다. 마케팅팀의 '불안감'은 사실 '자신들의 역할이 무시당하고 있다는 두려움'이었다. AI가 없어도, 이제 그는 그것을 스스로 볼 수 있었다. AI는 그에게 대본을 쥐여준 특급 조연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는 그 대본을 완벽하게 외웠다.


그는 앱을 켜지 않았다. 대신 스마트폰 화면을 조용히 끄고, 주머니 깊숙이 넣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노트북 화면의 숫자를 읽는 대신, 두 사람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먼저 영업팀 박 부장을 향해 말했다.


"박 부장님. 다음 분기 매출에 대한 부장님의 불안감을 저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래서 제 보고서는 예산의 60%를 '즉각적인 재구매율 상승'이라는 가장 확실한 데이터에 기반해 영업팀에 배정한 것입니다. 이건 숫자놀음이 아니라, 부장님의 불안을 해소할 가장 현실적인 데이터입니다."


그리고 그는 마케팅팀 김 이사를 바라보았다.


"김 이사님. 회사의 이미지가 장기적으로 중요하다는 이사님의 걱정에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래서 0%가 아닌 40%의 예산을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한 것입니다. 이 40%는 이사님의 역할이 무시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효율적으로 장기적 리스크를 방어할 첫걸음이라는 데이터에 근거합니다."


유 대리는 마지막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말을 맺었다.


"두 분의 불안과 걱정은 모두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한쪽의 감정이 이길 때가 아니라, 두 개의 사실을 모두 끌어안고 나아갈 때입니다. 제 보고서는 그 균형점입니다."


회의실에는 정적이 흘렀다. 김 이사와 박 부장은 여전히 불만스러운 기색이었지만,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읽히고 '데이터'로 반박당하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회의를 마무리했다.


"좋아. 유 대리의 보고서대로 최종 결정하지. 회의 마치지."


회의가 끝나고, 유 대리는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책상 위에 놓인 스마트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는 '이모콘' 앱을 삭제하지 않았다. 하지만 더 이상 불안하게 앱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유 대리는 화면 속의 보이지 않는 AI를 향해 혼잣말로 나지막이 속삭였다.


"이모콘. 넌 정말 훌륭한 조연이었어. 고마워, 특급 칭찬해."


유 대리는 '이모콘' 앱을 닫았다. 그리고 후속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자신감 있게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AI라는 든든한 조연의 도움으로, '유승진 대리'라는 주연이 마침내 자신의 무대에서 완벽하게 성장하며, 조용히 막을 내렸다.

내면의 지혜와 용기로 두려움을 극복해 낸 유승진 대리


1년 후.


승진으로 유승진 팀장이 된 그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초조한 얼굴의 신입사원 김진해 사원을 마주하고 있었다.


"팀장님... 이 이메일 좀 보세요. 영업팀 박현장 부장님이 완전 분노하셨어요. '데이터 재검토'라니... 저 완전 찍힌 것 같아요. 뭐라고 회신해야 하죠?"


신입사원의 목소리는 1년 전, 자신의 목소리처럼 떨리고 있었다. 유 팀장은 신입사원의 노트북 화면을 힐끗 보았다. 그가 만약 '이모콘' 앱을 추천해 준다면, 이 신입사원도 금방 답을 찾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대신, 모니터를 가리키며 1년 전 자신이 AI에게 배웠던 그 말을, 이제는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들려주었다.


"김진해 씨. 진정해요. 박 부장님의 '감정'은 지금 볼 필요 없어요. 그분이 '분노'한 결정적 이유, 그 감정 뒤에 숨어있는 '데이터'가 뭡니까?"


"네?"


"그분은 왜 진해 씨의 저 데이터가 틀렸다고 생각할까요? 그분이 정말 두려워하는 '사실'은 뭘까요? 감정이 아니라, 그 '팩트'를 찾아서 다시 보고해 줘요."


김진해 사원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전히 자리를 뜨지 못하고 망설였다.


"그래도... 박 부장님 너무 화가 나셔서... 무서운데요."


유 팀장은 1년 전 자신이 떠올라 픽 웃었다.


"아,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그 어떤 AI도 분석할 수 없는 팁 하나 더 줄게요. 박 부장님 분노 게이지는 점심 식사 만족도랑 90% 연동돼요. 지금 11시 50분이네. 아마 배고파서 그럴 거야."


"네? 팁...? 점심식사 만족도요?"


"그게 '사람'을 보는 데이터이지. 이따 1시 넘어서, 1층 카페에서 제일 달달한 걸로 커피 한 잔 사 들고 다시 말 걸어봐요. 데이터가 훨씬 잘 보일지도 모르죠. 얼른 가봐요. 하하."


김진해 사원은 여전히 어리둥절하지만 아까보다는 훨씬 가벼워진 표정으로 사무실을 나갔다. 유 팀장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1년 전 자신을 졸업시킨 그 훌륭했던 조연을 떠올리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고 그는 다짐했다.



팀장이 주연이 되면 그 팀은 팀장 혼자 일해야 해.
사원들이 마음껏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조연이 되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