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과 '명분'이 하나 될 때
파천(播遷) 행렬이 당도한 평양성. 한양의 붕괴와 임진강의 참상을 겪은 조정은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시체'와 같았다. 선조는 매일 밤 왜적의 환영에 시달리며, 압록강을 건너 '요동(遼東)'으로, 즉 명나라로 망명할 궁리만 하고 있었다.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류성룡은 매일같이 "백성을 버리고 국경을 넘으시면, 나라는 그대로 끝이옵니다!"라며 선조를 막아섰다.
하지만 불과 며칠 전 어전 회의에서 이순신 천거를 반대했던 대신들은 이미 마음이 떠나 있었다. "류 대감. 이미 늦었소." "그 '융통성 없는' 이순신이 무얼 한단 말이오. 남쪽 바다는 이미 왜적의 천지일 것이오." 그들은 류성룡의 마지막 희망을 비웃으며, 명나라로 도망갈 짐을 꾸리고 있었다.
절망이 성 전체를 뒤덮고 있던 5월의 어느 날. 희성의 '지경(태블릿)'이 전쟁이 발발한 이후 처음으로 다른 빛을 냈다. "여보!" 붉은색 [실패의 이치 99.0%] 화면 위로, '녹색' 팝업창이 깜박였다.
[변수 001: 작동. 첫 번째 균열 발생.] [옥포(玉浦) 해전. 승(勝).]
"승리…라고?" 희성의 중얼거림에, 사랑채에 모여 있던 김민수와 류시인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바로 그때였다. 저 멀리 성문 밖에서, 부산진이 함락되던 그날처럼 파발마가 달려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절규가 아니었다. 기쁨에 찬 외침이었다! "승전보! 승전보요!" "남쪽 수군이!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이! 옥포에서 왜적의 함대를 격파하였사옵니다!"
승전보 한 장에 평양성이 뒤집혔다. 선조는 겁에 질린 얼굴로 뛰쳐나왔고, 류성룡은 떨리는 손으로 장계를 받아 들었다. "이겼다… 드디어…!"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짐을 싸던 '신중론자' 대신들이 선조에게 달려와 다시 찬물을 끼얹었다.
"전하! 속으시면 아니 되옵니다!" "옥포는 작은 포구일 뿐, 적의 본대가 아니옵니다. (전략적 축소)" "이순신의 작은 승리 하나가, 지금 평양성 코앞까지 닥친 육군을 막을 순 없사옵니다! (의미 축소)" "맞사옵니다. 지금이야말로… 요동으로 건너가 명나라에 구원병을 청할 때이옵니다."
그들은 '승리'마저 '진영 논리'로 폄훼하며, 자신들의 '도망'을 합리화하려 했다. 선조는 다시 겁에 질려 "그, 그런가… 역시… 압록강을…"이라며 뒷걸음질 쳤다. 류성룡이 "전하!"라며 절박하게 외쳤지만, 수십 명의 '패배주의'에 휩싸인 대신들을 당해낼 수 없었다.
그때였다. 임진강 나루터에서 '무기'의 대가를 깨닫고 절규했던 김민수 의원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2025년의 국회의원으로서, 이 '전략'의 핵심을 꿰뚫고 있었다. "희성아, 다온 씨!" 김민수가 희성과 다온을 붙들고 소리쳤다. "지금 당장 류 대감께 전해! 이건 그냥 '승리'가 아니야!" 다온이 류성룡을 바라보며 김민수의 말을 통역했다. "대감! 저 사람(김민수)이 말하길! '이것은 승리가 아니라, 적의 숨통이옵니다!'" "숨통?" "왜적의 육군은 보급 없이 싸울 수 없사옵니다! 저들은 남해와 서해를 돌아…. 한양으로 군량을 보급해야만 합니다! 헌데 이순신 장군이 그 '보급로'를. 적의 '숨통'을 옥포에서 끊어버린 것이옵니다!"
2025년 보수 정치인의 '전략적 통찰'이, 1592년 류성룡의 귀에 꽂혔다. "그리고!" 이번에는 임진강 나루터에서 '신중론'의 대가를 깨달은 류시인이 나섰다. 그는 2025년 진보 논객으로서, 이 승리의 '인문학적 의미'를 꿰뚫고 있었다. "다온 씨! 이것도 전해줘요! 이건 '보급로'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다온이 다시 류성룡을 향해 외쳤다. "대감! 저 사람(류시인)이 말하길! '이것은 숨통 이전에, 백성들의 '희망'이옵니다!'" "희망?"
"지금, 이 순간에도 남쪽에서는 의병(義兵)들이 일어나고 있사옵니다! 그들은 '나라가 우릴 버렸다'라고 생각하고 있사옵니다! 헌데 이 '승전보'는… 나라가 아직 싸우고 있음을, 전하가 포기하지 않으셨음을 알리는 '명분'이옵니다!" 류시인의 '인문학적 통찰'이 류성룡의 가슴을 울렸다. "만약 전하께서 이 승리의 순간에 '명분'을 버리고 압록강을 건너시면 나라는 그대로 끝장이옵니다!"
류성룡은 두 사람의 '통역'을 듣고 전율했다. 자신이 '이순신'이라는 '원칙'을 세웠다면, 500년 뒤의 이 후손들은 그 원칙이 왜 승리하는지, '전략(김민수)'과 '명분(류시인)'이라는 두 개의 날개를 달아준 것이다. 류성룡이 다시 선조 앞에 섰다. "전하! 들으셨나이까! 이순신이 적의 '숨통(전략)'을 끊었고, 전하께 '희망(명분)'을 바쳤나이다!" 류성룡은 김민수와 류시인의 논리를 그대로 합쳐 외쳤다.
"이 '전략'과 '명분'을 가지고도 압록강을 건너시겠나이까! 아니면 이 땅에 남아, 이순신의 승리를 발판 삼아 '반격'을 도모하시겠나이까!" 선조는 '요동'을 외치던 대신들과, '반격'을 외치는 류성룡, 그리고 그 뒤에 선 네 사람(미래인)을 번갈아 보았다. '옥포의 승리'라는 실체적 증거 앞에, '패배주의자'들의 목소리는 힘을 잃었다. "알겠소. 류 대감의 뜻을 따르겠소." 선조가 떨리는 목소리로 명했다.
"압록강을 건너지 않겠소. 평양에서 싸우겠소." 희성과 다온은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김민수와 류시인은 흙먼지 묻은 도포 차림으로, 난생처음 서로를 바라보며 옅게 웃었다. 2025년의 '보수'와 '진보'가, 1592년의 지옥 속에서 비로소 '협력'에 성공한 순간이었다. '실패의 이치'에 첫 번째 균열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