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융통성 없는 자를 부르라
"... 혹, '이순신(李舜臣)'이라는 자의 이름도... 있는가?" 임진강의 찬바람 속에서 던져진 류성룡의 물음이었다. 희성은 1년간의 참담한 실패 속에서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 있습니다, 대감." 희성은 젖은 품속에서 '지경(태블릿)'을 꺼냈다. 다행히 자가발전 기능은 살아있었다. 그가 화면을 켰다. [실패의 이치 99.0%]. 그 붉은 화면 속에서 유일하게 '녹색'으로 빛나는 변수(Variable)가 있었다.
'변수 001: 이순신(李舜臣)' "대감. 이순신 장군은..." 희성이 다온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다온이 류성룡에게 아뢰었다. "대감, 이 '지경'에 이르기를... 이순신 장군이야말로, 이 '실패의 이치'를 깨뜨릴... 유일한 변수라 하옵니다." "유일한... 변수라. "류성룡의 눈이 빛났다. 그는 이미 이순신을 '전라좌수사'라는 파격적인 승진으로 그 자리에 앉혀 두었다. 하지만 그것이 '감'이 아니라, 500년 뒤의 '증험(증거)'으로 확인된 순간이었다.
류성룡은 흙탕물에 젖은 채, 과거를 회상했다. 이순신을 전라좌수사로 천거할 때가 떠올랐다. 조정의 그 '진영 논리'와 '신중론'에 맞서, 그 '융통성 없는' 장수를 밀어 넣느라 얼마나 힘들었던가. 류성룡이 희성에게 고백하듯 말했다. (다온이 통역했다.) "그는... 참으로 융통성이 없는 자요." 희성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는 정읍 현감 시절, 내게 '거문고' 하나를 보내달라 청했소. 나는 그가 공무(公務)를 핑계로 내게 "값비싼 선물"을 받아내려는 줄 알고 실망했으나, 그는 '관아의 물건(거문고)'이 낡아 손님을 대접할 수 없어서, '개인 돈'으로 값을 치를테니 대신 물건을 사서 보내달라는 청을 한 것이었소. 공과 사가 그토록 명확한 자요." 류성룡의 목소리에 '안타까움'이 실렸다. "그런 '융통성 없음' 때문에, 나는 그를 더 빨리 끌어주지 못했소. 조정은... 저런 자를 싫어하니까. 융통성 있게 '우리 편'이 되어야 하는데, 그는 오직 '법도'와 '원칙'의 편이었으니까."
그는 희성을 바라보았다. "나 역시... 나 역시 그 '실패의 이치' 속에서, 그의 융통성 없음을 아쉬워하며... 그를 승진시키지 못했소. 그것이 나의 '징비'요."
파천(播遷) 행렬은 개성을 거쳐 평양에 겨우 당도했다. 선조는 매일같이 "왜적이 어디까지 왔느냐"며 공포에 떨었다. 육군이 전멸한 지금, 유일한 희망은 '수군'뿐이었다. 류성룡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급히 소집된 어전 회의. "전하! 지금 육로가 모두 막혔사옵니다. 수군(水軍)을 총동원하여 서해로 북상하는 적을 막아야 하옵니다!" "수군이라니! 누가 말이오!" 류성룡이 목소리를 높였다.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의 전권(全權)을 주어, 경상, 전라, 충청의 수군을 모두 통솔하게 하명하시옵소서!" 그 순간, 조금 전 피난길에서 '진영 논리'로 싸우던 바로 그 대신들이, 이번에는 한 목소리로 류성룡을 공격했다. "대감! 그게 무슨 말씀이오!" "이순신은 고작 정 3품의 수사(水使) 요! 그보다 위인 절도사(節度使)들이 몇인데, 그에게 전군을 맡기다니요!" (서열 문제) "맞소! 그런 '초고속 승진'은 군의 위계를 무너뜨리는 일이오!" (절차 문제) "이 와중에도... 류 대감은 '같은 동인(東人)'인 그를 챙기려는 것이오!" (진영 논리)
나라가 망해가는 순간에도, 그들의 '민낯'은 '서열', '절차', '진영'뿐이었다.
그들의 반대에 부딪혀 선조가 "허... 허나..."라며 망설이던 순간. 그때까지 구석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던 류시인과 김민수가 동시에 소리쳤다. "망할 놈들!" 물론 조선의 대신들은 그들의 '서울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희성은 류성룡에게 마지막 힘을 실어주었다. 희성: "대감! 지금입니다! 그들의 '융통성'을 깨부수십시오!"
다온: (류성룡에게) "대감! 지금 저들의 저 '융통성'이야말로 나라를 망친 '실패의 이치'임을... 전하께 고하소서!" 류성룡은 1년 전, '불타버린 8조'를 쓰며 고뇌했던 자신을 떠올렸다. 그리고 바로 어제, 임진강에서 울부짖던 여인의 '신중론'을 떠올렸다. 그가 드디어 폭발했다. "닥치시오!"류성룡의 불호령에 좌중이 조용해졌다.
그가 선조 앞에 부복했다. "전하! 저들이 말하는 그 '융통성'이! 저들이 말하는 그 '서열'과 '절차'가! 바로 이 나라를 20일 만에 잿더미로 만든 '실패의 이치' 그 자체이옵니다!" 류성룡이 반대하던 대신들을 하나하나 노려보았다. "그대들의 '융통성'이 왜적의 조총을 막았소! 그대들의 '서열'이 불타는 성곽을 지켰소!" "..." "이순신은 융통성이 없사옵니다. 허나, 그는 원칙을 지켰기에 '전선'을 만들었고, 융통성이 없기에 '군량'을 비축했나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융통성 있는 신하'가 아니라, '융통성 없이 승리할 장수'이옵니다!"
류성룡은 1년 전, '융통성 없는' 이순신을 승진시키지 못했던 자신의 아쉬움과 후회를, 통렬한 절규로 토해냈다. "부디, 이 '실패의 이치'를 깨기 위해... 가장 '융통성 없는' 그 자를 쓰시옵소서!" 선조는 겁에 질렸지만, 류성룡의 기세에 압도당했다. " 알겠소. 류 대감의 뜻대로 이순신에게 전권을 주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