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돌아온 자들, 변해버린 자들

다시, 94.7%

by 유블리안


귀환(歸還), 2025년의 공기


눈을 뜰 수 없었던 백색광이 사라졌다. 가장 먼저 희성의 귓가를 파고든 것은, 1년간 지겹게 들었던 피난민의 절규나 말발굽 소리가 아니었다.


​... 위이이잉...


​컴퓨터 서버가 돌아가는, 낮고 일정한 기계음이었다.. 코끝을 찌르던 흙먼지와 피비린내 대신, 서늘한 에어컨의 공기와 커피 향이 느껴졌다. ​희성이 눈을 떴다. 그는 1년간의 악몽이 서려 있던 평양성 사저의 촛불 앞이 아니었다. 자신의 연구실, [경고: 패턴 일치율 94.7%]라는 붉은 팝업창이 떠 있는 바로 그 모니터 앞이었다. ​"… 여보!" 다온이 그의 팔을 붙잡았다.


그들 곁에는 김민수 의원과 류시인 작가도 함께 서 있었다. 네 사람 모두, 1년간의 고생에 해지고 흙먼지가 묻은 조선의 도포(道袍) 차림 그대로였다. ​2025년의 첨단 연구실 한복판에, 1592년의 피난민 넷이 서 있는 기괴한 광경이었다.



1초, 그리고 1년


"우리가... 돌아왔어..."


류시인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임진강의 진흙이 묻었던 손은 깨끗했지만, 그는 1592년의 그 감촉을 잊을 수 없었다. ​"잠깐." 김민수가 모니터를 가리켰다. 그들이 1년 전 떠났던 그 순간, 붉은 화면은 [패턴 동기화: 100.0%]라는 글자를 띄우고 있었다.


네 사람이 돌아오자, 그 [100.0%]라는 숫자가 불안정하게 깜박였다.​...99.8%... 98.2%... ​마치 열렸던 문이 닫히듯, 숫자가 빠르게 하락했다. 그리고, 그들이 처음 보았던 그 숫자에 멈춰 섰다. ​[경고: 패턴 일치율 94.7%] ​다온이 떨리는 손으로 연구실 벽의 시계를 확인했다. "... 세상에. 여보." "왜 그래."
"시간이... 그대로예요. 우리가 저 문장('징비록'의 그 문장)을 읽고 사라졌던 그 시간... 단 1초도 흐르지 않았어요."


​1592년에서의 1년. 그 처절했던 피난과 각성의 시간이, 2025년에서는 단 1초의 깜박임에 불과했다.



변해버린 자들


[94.7%]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그 경고가 여전히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아니, 네 사람이 변해 있었다.
​김민수 의원과 류시인 작가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더 이상 '보수 야당'과 '진보 논객'으로 서로를 보지 않았다. 임진강의 진흙탕에서 서로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워주고, 옥포의 승전보에 함께 환호했던 '전우(戰友)'의 눈빛이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류시인이었다.


그는 흙먼지 묻은 도포 자락을 내려다보며, 희성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희성아... 아니, 류 박사." "... 형님." "내가 틀렸다. '신중론'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묵살'을 하고 있었어. 임진강에서 만난 그 여인의 절규가... 내 '신중론'의 대가였어."
​류시인의 진심 어린 사과에 희성이 뭐라 답하기도 전, 김민수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는 [94.7%] 팝업창을 노려보며 말했다. ​"나도 틀렸소, 류 박사." 김민수는 창에 뚫린 병사의 시신을 떠올렸다. "나는... 나는 이걸 '정부를 공격할 무기'라고 생각했소. '무기'가 없어서 죽어가는 병사들을... 내 눈으로 보고 왔소." 그가 류시인을 바라보았다. "이건 '무기'가 아니었소. 우리가... 우리 모두가 함께 들어야 할 '방패'였소."


​2025년의 '보수'와 '진보'가, 1592년의 지옥을 겪고 돌아와, 마침내 서로의 '민낯'을 인정했다. 그들 안의 '실패의 이치'가 깨진 순간이었다.



우리의 '징비'


[94.7%]의 경고는 여전히 깜박이고 있었다. 다온이 불안하게 물었다. "하지만... 경고는 그대로예요. 우린 돌아왔는데, 2025년의 위기는... 그대로잖아요?"​희성은 '지경(태블릿)'을 품에서 꺼냈다. 1592년의 기록을 마치고 방전된 듯, 화면은 칠흑 같았다. 그는 1592년 평양성에서, 빛 속으로 사라지기 직전 들었던 류성룡 대감의 마지막 음성을 떠올렸다.


​"가시오. 가서... 그대들의 '징비'를 완성하시오."


​희성이 고개를 들었다. "아니. 모든 것이 변했어." 희성은 모니터가 아닌, 김민수와 류시인을 바라보았다. ​"1년 전, 문제는 저 94.7%가 아니었어요. 바로... 우리였어요."
"류성룡 대감은 '동인'의 배신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서인'의 경고를 받아들였고, 마지막엔 자신의 진영(동인)을 향해 쓴소리를 했습니다."


희성의 눈이 두 사람을 향했다. ​"이제... 두 분 차례입니다."
"… 우리 차례라니?" ​"류 작가님. 2025년의 '진보 정부'는 형님의 '진영'입니다. 그들에게 돌아가... '신중론'이라는 묵살을 멈추라고, 1592년의 실패를 반복하지 말라고... '내부'에서 외쳐주실 수 있습니까?" "..." "김 의원님. 2025년의 '보수 야당'은 의원님의 '진영'입니다. 그들에게 돌아가... '정치 공세'를 위한 '무기'를 찾을 때가 아니라고, 지금은 '방패'를 들고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할 때라고... '내부'에서 설득해 주실 수 있습니까?"


​희성의 물음에, 김민수와 류시인은 굳어졌다. 1592년의 지옥을 함께 건넜지만, 2025년의 '진영'으로 돌아가 '배신자'가 되라는 요구였다. 그것은 왜적과 싸우는 것보다 더 어려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