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94.7%
눈을 뜰 수 없었던 백색광이 사라졌다. 가장 먼저 희성의 귓가를 파고든 것은, 1년간 지겹게 들었던 피난민의 절규나 말발굽 소리가 아니었다.
... 위이이잉...
컴퓨터 서버가 돌아가는, 낮고 일정한 기계음이었다.. 코끝을 찌르던 흙먼지와 피비린내 대신, 서늘한 에어컨의 공기와 커피 향이 느껴졌다. 희성이 눈을 떴다. 그는 1년간의 악몽이 서려 있던 평양성 사저의 촛불 앞이 아니었다. 자신의 연구실, [경고: 패턴 일치율 94.7%]라는 붉은 팝업창이 떠 있는 바로 그 모니터 앞이었다. "… 여보!" 다온이 그의 팔을 붙잡았다.
그들 곁에는 김민수 의원과 류시인 작가도 함께 서 있었다. 네 사람 모두, 1년간의 고생에 해지고 흙먼지가 묻은 조선의 도포(道袍) 차림 그대로였다. 2025년의 첨단 연구실 한복판에, 1592년의 피난민 넷이 서 있는 기괴한 광경이었다.
"우리가... 돌아왔어..."
류시인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임진강의 진흙이 묻었던 손은 깨끗했지만, 그는 1592년의 그 감촉을 잊을 수 없었다. "잠깐." 김민수가 모니터를 가리켰다. 그들이 1년 전 떠났던 그 순간, 붉은 화면은 [패턴 동기화: 100.0%]라는 글자를 띄우고 있었다.
네 사람이 돌아오자, 그 [100.0%]라는 숫자가 불안정하게 깜박였다....99.8%... 98.2%... 마치 열렸던 문이 닫히듯, 숫자가 빠르게 하락했다. 그리고, 그들이 처음 보았던 그 숫자에 멈춰 섰다. [경고: 패턴 일치율 94.7%] 다온이 떨리는 손으로 연구실 벽의 시계를 확인했다. "... 세상에. 여보." "왜 그래."
"시간이... 그대로예요. 우리가 저 문장('징비록'의 그 문장)을 읽고 사라졌던 그 시간... 단 1초도 흐르지 않았어요."
1592년에서의 1년. 그 처절했던 피난과 각성의 시간이, 2025년에서는 단 1초의 깜박임에 불과했다.
[94.7%]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그 경고가 여전히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아니, 네 사람이 변해 있었다.
김민수 의원과 류시인 작가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더 이상 '보수 야당'과 '진보 논객'으로 서로를 보지 않았다. 임진강의 진흙탕에서 서로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워주고, 옥포의 승전보에 함께 환호했던 '전우(戰友)'의 눈빛이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류시인이었다.
그는 흙먼지 묻은 도포 자락을 내려다보며, 희성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희성아... 아니, 류 박사." "... 형님." "내가 틀렸다. '신중론'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묵살'을 하고 있었어. 임진강에서 만난 그 여인의 절규가... 내 '신중론'의 대가였어."
류시인의 진심 어린 사과에 희성이 뭐라 답하기도 전, 김민수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는 [94.7%] 팝업창을 노려보며 말했다. "나도 틀렸소, 류 박사." 김민수는 창에 뚫린 병사의 시신을 떠올렸다. "나는... 나는 이걸 '정부를 공격할 무기'라고 생각했소. '무기'가 없어서 죽어가는 병사들을... 내 눈으로 보고 왔소." 그가 류시인을 바라보았다. "이건 '무기'가 아니었소. 우리가... 우리 모두가 함께 들어야 할 '방패'였소."
2025년의 '보수'와 '진보'가, 1592년의 지옥을 겪고 돌아와, 마침내 서로의 '민낯'을 인정했다. 그들 안의 '실패의 이치'가 깨진 순간이었다.
[94.7%]의 경고는 여전히 깜박이고 있었다. 다온이 불안하게 물었다. "하지만... 경고는 그대로예요. 우린 돌아왔는데, 2025년의 위기는... 그대로잖아요?"희성은 '지경(태블릿)'을 품에서 꺼냈다. 1592년의 기록을 마치고 방전된 듯, 화면은 칠흑 같았다. 그는 1592년 평양성에서, 빛 속으로 사라지기 직전 들었던 류성룡 대감의 마지막 음성을 떠올렸다.
"가시오. 가서... 그대들의 '징비'를 완성하시오."
희성이 고개를 들었다. "아니. 모든 것이 변했어." 희성은 모니터가 아닌, 김민수와 류시인을 바라보았다. "1년 전, 문제는 저 94.7%가 아니었어요. 바로... 우리였어요."
"류성룡 대감은 '동인'의 배신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서인'의 경고를 받아들였고, 마지막엔 자신의 진영(동인)을 향해 쓴소리를 했습니다."
희성의 눈이 두 사람을 향했다. "이제... 두 분 차례입니다."
"… 우리 차례라니?" "류 작가님. 2025년의 '진보 정부'는 형님의 '진영'입니다. 그들에게 돌아가... '신중론'이라는 묵살을 멈추라고, 1592년의 실패를 반복하지 말라고... '내부'에서 외쳐주실 수 있습니까?" "..." "김 의원님. 2025년의 '보수 야당'은 의원님의 '진영'입니다. 그들에게 돌아가... '정치 공세'를 위한 '무기'를 찾을 때가 아니라고, 지금은 '방패'를 들고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할 때라고... '내부'에서 설득해 주실 수 있습니까?"
희성의 물음에, 김민수와 류시인은 굳어졌다. 1592년의 지옥을 함께 건넜지만, 2025년의 '진영'으로 돌아가 '배신자'가 되라는 요구였다. 그것은 왜적과 싸우는 것보다 더 어려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