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배신자들의 역공

진영을 향해 쏘다

by 유블리안

폭탄, 2025년의 아침


​​​2025년, 네 사람이 돌아온 다음 날 아침.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혔다. ​첫 번째 폭탄은 류시인 작가가 터뜨렸다. 그의 칼럼이 주요 언론사 1면에 대서특필되었다. 제목은 충격적이었다.

​[나는 1592년의 묵살을 목격했다 : 2025년 정부에게 고함]

칼럼의 내용은 '진보 진영'의 심장을 도려내는 것이었다.

"… 본인은 1년간 현 정부의 '신중론'을 옹호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오만이었다. 현 정부가 '위협 축소'를 위해 사용하는 '신중론'이라는 단어는, 1592년 임진왜란 직전 류성룡의 경고를 묵살했던 '동인 강경파'의 논리와 94.7% 일치한다… (중략) …'보수 야당의 공세'라는 핑계로 이 경고를 묵살한다면, 우리는 1592년의 불타는 궁궐을 다시 마주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맥락'이 아니라 '생존'을 논할 때다."

​'진보 진영'은 패닉에 빠졌다. 가장 강력한 스피커가 적에게 투항한 셈이었다. 인터넷 커뮤니티는 그를 '변절자', '노망', '김민수에게 포섭됐다'며 맹비난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폭탄, 국회 기자회견


​같은 시각, 국회. 두 번째 폭탄은 김민수 의원이 터뜨렸다.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가운데, '보수 야당'의 의원들은 그가 드디어 류희성 박사에게 받은 94.7% 데이터를 '무기'로 휘두르길 기대하고 있었다.
​"동지 여러분. 그리고 국민 여러분."
김민수가 단상에 섰다.
"저는 오늘, 정부를 공격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닙니다."
​기자회견장이 술렁였다.
"류희성 박사의 94.7% 경고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야당 의원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하지만!"
김민수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것은 '정치 공세'의 무기가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국가 안보'의 방패가 되어야 합니다! 나는 이 순간부로, 이 사안에 대한 모든 '정치 공세'를 중단할 것을 선언합니다!" ​
야당 의원석에서 "미쳤어!"라는 고함이 터져 나왔다.
"오히려… 나는 정부에게 '초당적 협력'을 제안합니다. 지금 당장 '안보 위기'를 인정하고 대비책을 마련하십시오! 우리 당은 이 문제에 한해, 그 어떠한 '진영 논리'도 없이 정부의 대책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협력할 것입니다!”
​'보수 진영' 역시 패닉에 빠졌다. 가장 강력한 투사가 적에게 백기를 든 셈이었다.


'실패의 이치'가 깨진 정부


​연구실, 희성과 다온이 이 모든 상황을 생중계로 지켜보고 있었다.
"… 해냈어요. 두 사람이." ​정부(청와대 혹은 내각)는 최악의 상황에 몰렸다. '실패의 이치'가 작동하려면, '야당(김민수)이 공격'하고, '여당(류시인)이 방어'해야 했다. 그런데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졌다.
​'여당 스피커(류시인)'가 내부에서 공격하고, '야당 수장(김민수)'이 외부에서 옹호를 선언했다. '신중론'과 '정치 공세'라는 두 개의 방패가 동시에 사라진 것이다. ​오후 2시.
정부 대변인(2025년의 '동인 강경파')이 굳은 얼굴로 긴급 브리핑에 나섰다. 그는 류시인과 김민수를 동시에 비난했다.
"…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진보의 논객과 보수의 수장이 마치 사전에 모의라도 한 듯, 국가 안보를 빌미로 현 정부를 흔들고 있습니다. 이는… '비상식적인 야합'이며, '국정 동력을 마비'시키려는 불순한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드러난 '진짜 적’


​브리핑을 보던 희성의 눈이 번뜩였다. 94.7% 모니터는 여전히 붉게 빛나고 있었다.
​"희성 씨?"
"저 사람입니다, 다온 씨."
희성이 정부 대변인의 얼굴을 가리켰다.
"실패의 이치'는 '진영' 그 자체가 아니었어요. 그 '진영' 뒤에 숨어, '신중론'과 '분란'이라는 단어로 경고를 묵살하는… 바로 저 사람. 저 '시스템' 그 자체였어요."

​1592년, 류성룡의 장계를 묵살했던 '동인 강경파'. 2025년, 류시인과 김민수의 '협력'마저 '야합'으로 몰아붙이며 묵살하는 '정부 핵심부'.
​"김 의원님과 류 작가님은 '진영'을 깼습니다. 하지만 '실패의 이치'는 아직 저렇게 버티고 있습니다."
희성이 김민수와 류시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 분, 수고하셨습니다. '1차전'이 끝났습니다."

"…1차전?" (김민수)
"이제 '2차전'입니다. 저들은 '보수'와 '진보'의 협력을 '야합'으로 규정했습니다. 저들을 논파할… 500년 전의 '원본'이 필요합니다."
​희성은 1592년 평양성에서, 류성룡 대감이 그들에게 건네주었던 '첫 번째 징비록' 사본(寫本)을 품에서 꺼냈다.
"우리가… 1592년에 '다녀왔다'는 것을 증명할 차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