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이 '진실'을 가릴 때
김민수와 류시인의 '배신'으로 대한민국이 떠들썩한 바로 그날 저녁, 류희성 박사의 연구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이 소집되었다. 이례적인 것은, 그 자리에 류희성 박사와 다온, 그리고 오늘 하루 종일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두 명의 '배신자', 김민수 의원과 류시인 작가가 나란히 섰다는 사실이었다. 네 사람의 등장은 '보수-진보 야합설'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류 박사님! 두 사람과 한패였습니까?"
"김 의원님! 류 작가님! 이게 대체 무슨 '쇼'입니까!"
플래시가 터지는 가운데, 희성이 단상에 섰다. 그는 1592년 평양성에서 류성룡에게 받은, 누렇게 바랜 종이 뭉치('첫 번째 징비록' 사본)를 꺼내 들었다. "국민 여러분. 이것은 '쇼'가 아닙니다."
희성의 목소리가 장내에 울렸다. "정부는 저희의 협력을 '불순한 야합'이라 폄훼했습니다. '신중론'이라는 이름으로 94.7%의 경고를 또다시 묵살하고 있습니다."
그가 종이 뭉치를 들어 올렸다.
"이것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평양성에서 쓰인 『징비록』의 '첫 번째 원고'입니다. 그리고 이 원고는… 1592년의 류성룡 대감과, 2025년의 저희 네 사람이… 함께 쓴 것입니다."
기자회견장은 1초간 정적에 휩싸였다가, 이내 폭소와 고함으로 뒤덮였다. "미쳤군!"
"1592년이라니! 타임머신이라도 탔다는 겁니까!"
정부 대변인은 네 사람의 기자회견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코웃음을 쳤다. 그는 즉시 브리핑을 열었다.
"국민 여러분, 방금 전 류 박사 일행의 기자회견을 보셨을 겁니다. '야합설'이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그는 '경고'가 아닌 '타임슬립'이라는 비현실적인 주장을 물고 늘어졌다.
"그들은 이제 '안보 위기'를 넘어, '역사 판타지'로 국민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류희성 박사의 순수한 연구가… 두 정치인의 과대망상과 결합하여, 끔찍한 '정치적 음모론'으로 변질된 것입니다. 정부는 이 비이성적인 '망상'에 일절 대응하지 않겠습니다."
'실패의 이치'는 완벽하게 작동했다. '경고'는 '망상'이 되었고, '경고하는 자(희성)'는 '선동당한 자'가 되었다.
기자회견을 마친 네 사람은 연구실에서 망연자실했다.
"… 망했군."
김민수가 중얼거렸다.
"우리가 1592년에 다녀왔다는 말이, 저들에게 '이건 미친 소리니 무시해도 된다'는 완벽한 '신중론'의 명분을 줬어."
류시인도 절망했다.
"우리가… '실패의 이치'에 먹이를 준 꼴이야."
"아니요."
희성이 외투를 집어 들었다.
"증명하면 됩니다. 우리가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희성이 하회마을을 떠올렸다. '불타버린 8조'의 비밀을 증명했던 순간.
"제가 들고 있는 이것은 '사본(寫本)'입니다. 저희가 쓴 기록이죠. 류성룡 대감께서는 이것을 바탕으로 훗날 『징비록』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희성이 류시인을 바라보았다.
"대감께서는… 우리가 쓴 '첫 번째 기록' 중 핵심(붕당에 대한 비판)을 따로 보관하여, '종가 별지(宗家 別紙)'로 맏아들 류담에게만 남기셨습니다. 우리가, 하회마을에서 증명했던 것처럼요."
"설마…?" "네. 500년 전의 '원본'이… 아직 안동 하회마을, 종갓집에 남아있을 겁니다."
모든 언론과 카메라가 안동 하회마을 충효당으로 몰려갔다. 풍산 류 씨의 종손(宗孫)은 500년간 지켜온 비밀의 공간 앞에서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정부와 여당은 종손에게 "그들의 망상에 동조하지 말라"며 압력을 넣고 있었다. 희성과 류시인이 '후손'의 자격으로 종손 앞에 섰다.
"어르신. 알고 있습니다. 이 '별지'는 종가의 가장 내밀한 기록입니다. 하지만…"
류시인이 1592년 피난길에서 본 참상을 떠올리며 호소했다.
"500년 전 조상님(류성룡)께서 이 기록을 남기신 이유는, 후손들이 다시는 그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징비'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입니다."
종손은 오랫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그는 결심한 듯, 수백 년 된 궤짝을 열었다. 그 안에서 누렇게 바랜, '종가 별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국립 역사학자들과 고문서 전문가들이 현장에서 긴급 감식에 들어갔다. 희성이 가져온 '사본'(1592년 평양에서 쓴 것)과, 종손이 내어준 '원본'(1592년 류성룡이 보관한 것)이 나란히 놓였다.
"…맙소사."
감식하던 사학자의 손이 떨렸다.
"필체, 지질(紙質), 먹의 번짐… 모두… 모두 일치합니다."
대한민국이 멈췄다. 그것은 '정치적 야합'이 아니었다. '망상'도 아니었다.'진짜'였다. 네 사람은 1592년에 다녀왔다. 94.7%의 경고는… '진짜' 500년 전의 경고였다. 연구실. 희성은 승리를 직감했다. 이제 정부도 '묵살'할 수 없을 터였다. 하지만, 그가 모니터를 바라본 순간. 그는 얼어붙었다.
“94.7%”
붉은색 숫자가,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때, 정부 대변인이 다시 브리핑에 나섰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그의 논리는 더욱 교묘해졌다.
"…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정부도 이 현상을 엄중히 주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안경을 고쳐 썼다.
"설령… 설령 류 박사 일행의 '초자연적 경험'이 사실이라 한들, 그것이 2025년의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500년 전의 상황과 지금이 94.7% 같다는 것은, 5.3%는 다르다는 뜻입니다. 정부는 그 '5.3%의 다른 맥락'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 혼란스러운 시기일수록… 정부는 '신중'해야 합니다."
희성은 숨이 멎는 것 같았다.'실패의 이치'는 '사실'이나 '증거'로 깨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타임슬립'이라는 역사상 가장 완벽한 증거를 제시했지만, '알고리즘'은 그 증거마저도 '신중론'의 재료로 삼아버렸다.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가…" 희성이 절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