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안동(安東)의 증인

'사실'이 '진실'을 가릴 때

by 유블리안



세 번째 폭탄, 네 사람의 고백

​​​​김민수와 류시인의 '배신'으로 대한민국이 떠들썩한 바로 그날 저녁, 류희성 박사의 연구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이 소집되었다. ​이례적인 것은, 그 자리에 류희성 박사와 다온, 그리고 오늘 하루 종일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두 명의 '배신자', 김민수 의원과 류시인 작가가 나란히 섰다는 사실이었다. 네 사람의 등장은 '보수-진보 야합설'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류 박사님! 두 사람과 한패였습니까?"
"김 의원님! 류 작가님! 이게 대체 무슨 '쇼'입니까!"
​플래시가 터지는 가운데, 희성이 단상에 섰다. 그는 1592년 평양성에서 류성룡에게 받은, 누렇게 바랜 종이 뭉치('첫 번째 징비록' 사본)를 꺼내 들었다. ​"국민 여러분. 이것은 '쇼'가 아닙니다."


희성의 목소리가 장내에 울렸다. "정부는 저희의 협력을 '불순한 야합'이라 폄훼했습니다. '신중론'이라는 이름으로 94.7%의 경고를 또다시 묵살하고 있습니다." ​
그가 종이 뭉치를 들어 올렸다.


"이것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평양성에서 쓰인 『징비록』의 '첫 번째 원고'입니다. 그리고 이 원고는… 1592년의 류성룡 대감과, 2025년의 저희 네 사람이… 함께 쓴 것입니다." ​
기자회견장은 1초간 정적에 휩싸였다가, 이내 폭소와 고함으로 뒤덮였다. "미쳤군!"
"1592년이라니! 타임머신이라도 탔다는 겁니까!"

정부의 역공: "망상"

​정부 대변인은 네 사람의 기자회견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코웃음을 쳤다. 그는 즉시 브리핑을 열었다.
"국민 여러분, 방금 전 류 박사 일행의 기자회견을 보셨을 겁니다. '야합설'이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그는 '경고'가 아닌 '타임슬립'이라는 비현실적인 주장을 물고 늘어졌다.


"그들은 이제 '안보 위기'를 넘어, '역사 판타지'로 국민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류희성 박사의 순수한 연구가… 두 정치인의 과대망상과 결합하여, 끔찍한 '정치적 음모론'으로 변질된 것입니다. 정부는 이 비이성적인 '망상'에 일절 대응하지 않겠습니다."


​'실패의 이치'는 완벽하게 작동했다. '경고'는 '망상'이 되었고, '경고하는 자(희성)'는 '선동당한 자'가 되었다.

'종가 별지(宗家 別紙)', 500년의 증거

​기자회견을 마친 네 사람은 연구실에서 망연자실했다.
"… 망했군."
김민수가 중얼거렸다.
"우리가 1592년에 다녀왔다는 말이, 저들에게 '이건 미친 소리니 무시해도 된다'는 완벽한 '신중론'의 명분을 줬어."
류시인도 절망했다.
"우리가… '실패의 이치'에 먹이를 준 꼴이야."
​"아니요."
희성이 외투를 집어 들었다.

"증명하면 됩니다. 우리가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희성이 하회마을을 떠올렸다. '불타버린 8조'의 비밀을 증명했던 순간.
"제가 들고 있는 이것은 '사본(寫本)'입니다. 저희가 쓴 기록이죠. 류성룡 대감께서는 이것을 바탕으로 훗날 『징비록』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희성이 류시인을 바라보았다.
"대감께서는… 우리가 쓴 '첫 번째 기록' 중 핵심(붕당에 대한 비판)을 따로 보관하여, '종가 별지(宗家 別紙)'로 맏아들 류담에게만 남기셨습니다. 우리가, 하회마을에서 증명했던 것처럼요."
​"설마…?" "네. 500년 전의 '원본'이… 아직 안동 하회마을, 종갓집에 남아있을 겁니다."

안동 하회마을의 결단

​모든 언론과 카메라가 안동 하회마을 충효당으로 몰려갔다. 풍산 류 씨의 종손(宗孫)은 500년간 지켜온 비밀의 공간 앞에서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정부와 여당은 종손에게 "그들의 망상에 동조하지 말라"며 압력을 넣고 있었다. 희성과 류시인이 '후손'의 자격으로 종손 앞에 섰다.
"어르신. 알고 있습니다. 이 '별지'는 종가의 가장 내밀한 기록입니다. 하지만…"
류시인이 1592년 피난길에서 본 참상을 떠올리며 호소했다.
"500년 전 조상님(류성룡)께서 이 기록을 남기신 이유는, 후손들이 다시는 그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징비'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입니다."
종손은 오랫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그는 결심한 듯, 수백 년 된 궤짝을 열었다. 그 안에서 누렇게 바랜, '종가 별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일치(一致), 그러나

​국립 역사학자들과 고문서 전문가들이 현장에서 긴급 감식에 들어갔다. 희성이 가져온 '사본'(1592년 평양에서 쓴 것)과, 종손이 내어준 '원본'(1592년 류성룡이 보관한 것)이 나란히 놓였다. ​
"…맙소사."
감식하던 사학자의 손이 떨렸다.
"필체, 지질(紙質), 먹의 번짐… 모두… 모두 일치합니다."
​대한민국이 멈췄다. 그것은 '정치적 야합'이 아니었다. '망상'도 아니었다.'진짜'였다. 네 사람은 1592년에 다녀왔다. 94.7%의 경고는… '진짜' 500년 전의 경고였다. ​연구실. 희성은 승리를 직감했다. 이제 정부도 '묵살'할 수 없을 터였다. 하지만, 그가 모니터를 바라본 순간. 그는 얼어붙었다.



“94.7%”
붉은색 숫자가,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때, 정부 대변인이 다시 브리핑에 나섰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그의 논리는 더욱 교묘해졌다.
​"…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정부도 이 현상을 엄중히 주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안경을 고쳐 썼다.
"설령… 설령 류 박사 일행의 '초자연적 경험'이 사실이라 한들, 그것이 2025년의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500년 전의 상황과 지금이 94.7% 같다는 것은, 5.3%는 다르다는 뜻입니다. 정부는 그 '5.3%의 다른 맥락'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 혼란스러운 시기일수록… 정부는 '신중'해야 합니다."
​희성은 숨이 멎는 것 같았다.'실패의 이치'는 '사실'이나 '증거'로 깨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타임슬립'이라는 역사상 가장 완벽한 증거를 제시했지만, '알고리즘'은 그 증거마저도 '신중론'의 재료로 삼아버렸다.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가…" 희성이 절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