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세 폭탄, '방가방가', 그리고 나의 해방구
'뚜- 뚜-' 전화 거는 소리가 끝나고 "삐~~ 치이익~~ 찌지직" 접속음이 울리면, 파란색 바탕화면에 하얀 글씨가 CRT 모니터 위로 새겨졌다. 마침내 '새로운 세상'으로 접속이 완료되었다.
지금이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검색하고 AI라는 훌륭한 도구를 활용해 양질의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뉴스나 라디오를 듣는 것 외에 PC통신을 통해 정보를 얻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
하지만 전화 모뎀을 사용하다 보니 PC통신을 쓰는 동안에는 집 전화가 '먹통'이 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뭔 통화를 이리 오래 하니, 빨리 끊어!" 같은 부모님의 핀잔은 물론이고, 다음 달 날아올 전화요금 폭탄은 '등짝 스매싱'을 예약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그 '등짝 스매싱'의 위협을 무릅쓴 이유는, 그 당시 그곳이 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창구였기 때문이다.
"하이! 방가방가!"
이 한마디로 대표되는 '채팅 용어'라는 게 그때부터 생기기 시작했다. 채팅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모르는 사람끼리 친분을 쌓기 시작하던 그 시절. '등짝 스매싱'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빠른 입력과 빠른 종료를 위해 탄생한 것이 바로 이 '채팅 용어'였다.
사실 나는 이 '국어'에 대한 아픈 트라우마가 있었다. 학교에서는 국어 선생님이 "너는 두음법칙도 모르냐? 왜 이름이 '류**'야? 당장 '유**'로 명찰 바꿔!"라고 호통치셨다. 사춘기를 막 지난 시기라 안 바꾸고 버텼니, 돌아오는 보복으로 매일 맞기 시작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유** 라는 이름이 더 편하긴 했지만 일종의 반항심이었을까?
그렇게 '올바른 국어'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던 나에게, 문법을 대놓고 파괴하는 듯한 이 채팅 용어들은 얼마나 큰 충격이었겠는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채팅으로 이 에피소드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 생선(선생도 아니라는 의도적 오타) 미친 거 아니셈?" "힘내셈", "빠이염" 등등. 바로 그 '틀린' 채팅 용어들이 국어 선생에 대한 트라우마를 벗어나게 해 준 셈이다.
학창 시절, 나는 딱히 취미도 없었고 교우 관계가 좋은 편도 아니라 집, 학교, 도서관을 쳇바퀴 돌듯 무기력하게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채팅으로 만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점점 성격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취미 이야기가 나왔고, '볼링'을 접하게 되었다. 운동과는 담을 쌓았던 나에게 볼링은 운동을 뛰어넘어, 가슴속에 응어리졌던 스트레스들이 한 번에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빵~" 하고 터지는 스트라이크 소리. 어려운 스페어 처리를 하고 나면 터지는 환호 소리와 하이파이브. 그 당시에는 볼링장에 가도 자동 점수 카운팅이 아니라, 아르바이트 누나들이 직접 종이에 적어서 스트라이크(X), 스페어(/)를 표시해 주고 점수를 매겨주는 방식이었다. 그 점수표를 기념품처럼 챙겨 오던 추억이 있다.
이처럼 PC통신이 나에게 가져다준 것은 단순한 친분이 아니라, 나의 새로운 내면을 꺼내준 도구이자, 새로운 세상으로 진정 '접속'한 것이었다.
지금은 인터넷이 항상 켜져 있고 언제든 다시 들어와 필요한 정보를 찾을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요금 폭탄'과 '등짝 스매싱' 콤보를 벗어나려면 반드시 '접속 종료'를 해야만 했다.
그렇게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했지만, 그 짧은 접속이 열어준 세상은 이전과 완전히 달랐다. TV나 신문이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정보를 '받기만' 하던 시대에서, 우리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는' 거대한 인터넷 세상이 비로소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