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와 아이들, X세대의 문화 대통령
때는 1992년 4월, MBC <특종! TV연예>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신곡 소개'라는 코너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이 '난 알아요'를 불렀다. 전설의 트리오, 서태지와 아이들이 탄생하게 된 전설적인 데뷔 무대였다.
당시 심사위원들(기성세대 평론가, 작곡가 등)에게 최하점 수준의 혹평을 받았지만, 그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당시 학교는 그야말로 '서태지 열풍'이었다. 복도에서는 춤을 따라 하는 친구들이, 교실에서는 워크맨으로 테이프를 늘어지게 듣는 친구들로 가득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이 우리나라 음악 시장을 어떻게 바꿔놓았을까?
심사위원들은 그동안의 음악과는 전혀 다른 랩과 댄스에 대한 반감으로 혹평을 쏟아내며 최저점을 주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오히려 학생들과 20대 청년들의 폭발적인 소비가 이어지며 새로운 문화가 탄생한 것이다.
힙합도, 댄스도 아닌 생소한 장르의 음악이니, 기성세대들에게는 아무래도 낯설고 괴이하게 들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음악은 개성과 새로움을 추구하던 'X세대'의 감성을 제대로 자극했고, 인기는 그야말로 폭발했다.
그 증거로, 1992년 <가요톱텐>에서 한 앨범에 2회 이상 '골든컵'을 수상한 가수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신승훈과 함께 유이했다. ('난 알아요'와 '환상 속의 그대'로 말이다.)
특히 '환상 속의 그대'에는 같은 시나위 출신인 김종서가 코러스에 참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처음 '난 알아요'를 들었을 때,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발라드나 댄스가 주를 이루던 그때, 빠른 비트에 실린 랩, 그것도 정통 랩이라기보다 말하듯 중얼거리는 그 스타일이 너무도 가슴에 꽂혔다.
특히 '둥둥 둥둥' 비트가 울리는 댄스 브레이크 타임에 터지는 '각 잡힌' 안무는 모든 학생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나 역시 신승훈의 감미로운 발라드 음악을 즐겨 들었지만, 어느 순간 서태지에게 푹 빠져버렸다. 서태지(Seo Taiji)라는 이름이 '스테이지(Stage)'에서 따온 것이라 하니, 그는 말 그대로 무대를 휘어잡은 셈이다. 아직도 그 노래를 들으면, 마음속에 숨겨두었던 댄스 본능이 스멀스멀 깨어나기 시작한다.
1994년,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난 알아요'와는 또 다른 차원의 충격적인 노래가 발표되었다. 바로 '교실 이데아'라는 곡이었다. 교권이 하늘을 찌르던 시절, '유'가 아닌 '류'로 성을 썼다고 선생님께 맞았던 나의 학창 시절 기억 위로, 그 가사가 꽂혔다. 그야말로 사이다 1.5리터를 원샷한 듯한 기분이었다.
됐어 됐어. 그런 가르침은 됐어.
... (중략)...
왜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심지어 이 곡을 역재생하면 '피가 모자라'라는 말이 들린다는 '백마스킹(Backmasking)' 논란이 터지며, 어른들은 '악마의 노래'라고 폄훼하기까지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논란은 오히려 홍보 효과를 낳았고, 학생들 사이에서는 더 큰 화제가 되었다.
거기다 같은 3집 앨범에 실린 '발해를 꿈꾸며'라는 노래는 (반항을 넘어) 역사에 대한 궁금증까지 일깨워주었다. 당시 역사 선생님들이 가장 좋아했다는 루머(?)가 돌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들은 단순한 유행가 가수가 아니었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항상 이슈가 되었고, 실험정신이 돋보인 노래들은 항상 팬들을 열광시켰다.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 선언 당시 눈물 흘리던 팬들, 다시 복귀했을 때 열광적으로 응원해 주던 팬들의 모습이 기억에 선하다. 문화 대통령으로 불리던 그들이었으니.
지금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아닌 '서태지와 아재들'이 되었지만, 언젠가는 세 명이 다시 한 무대에 설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