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인생의 테마는 무엇인가요?

우리들의 토요일 밤, 인생의 테마게임

by 유블리안

​96년 무렵, 당대 최고의 밀리언셀러 김건모가 부른 주제곡이 토요일 밤 안방을 울리던 때였다.
일요일 예능이 〈일밤〉의 천하였다면, 토요일 밤의 주인은 단연 〈테마게임〉이었다.
​“라랄라 라랄라 라루레 라루레―” ​중독성 있는 그 배경음악과 함께 우리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던 코미디 옴니버스 드라마.
매주 하나의 테마를 정해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들어 내던 이 프로그램은, 웃기기만 한 예능이 아니었다. 전공 수업에서는 배울 수 없는 묘한 여운을 남기는 ‘토요일 밤의 교양 특강’ 같은 시간이었다. ​대학 생활에 한창 빠져 있던 그 시절, 나는 주말이면 약속을 잡기보다 이 프로그램을 챙겨 보곤 했다.
친구들과 어울려 밖을 쏘다니는 것도 좋았지만, 용돈이 떨어진 주말 밤이나 시험 기간이 끝난 저녁이면 자석에 이끌리듯 안방 TV 앞에 앉게 되었다. 채널을 돌리다 김국진의 얼굴이 잡히고 익숙한 목소리가 튀어나오면 비로소 긴장이 풀렸다.


​“여보세요?”
“사랑해요.”
“밤새지 마란 말이야.”


​졸업을 앞두고 본격적인 입사 준비에 뛰어들었던 99년 무렵, 김국진은 ‘국찌니빵’으로 CF와 스티커 열풍까지 불러일으키며 시대의 아이콘이 되어 있었다.

나무위키 이미지 활용


도서관에서 밤늦게까지 이력서와 씨름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허기진 배를 채우려 편의점에 들르면 누군가는 컵라면을, 누군가는 삼각김밥을 골랐다. 하지만 우리들 중 누군가는 꼭 김국진 얼굴이 붙은 그 빵을 집어 들곤 했다. 꽉 막힌 취업 문턱 앞에서 답답해하던 시절, 술자리에서 장난처럼 따라 하던 유행어들이 토요일 밤 텔레비전 속에서는 삶을 관통하는 대사가 되어 흘러나왔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개그 콩트가 아니었다.
사랑, 가족, 돈, 성공, 선택 등 인생의 기본 주제들을 테마로 삼아,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해하던 청춘들의 마음을 살며시 어루만져 주었다. 그래서일까. 앞날이 가장 막막하게 느껴지던 취업 준비생 시절, 나는 유난히 이 프로그램을 의지하듯 시청했다.
자기소개서의 압박을 잠시 내려놓고, 토요일 밤의 〈테마게임〉은 내 마음에도 잠시나마 ‘합격’ 같은 안도감을 주던 안식처였다.
​출연진을 떠올려 보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원로 개그맨 배일집이 김국진의 아버지로 등장하고, 박진영(JYP)이 김국진의 찌질한 형제로 분하는가 하면, 풋풋한 신인이던 최지우까지. 지금은 ‘레전드’라 불리는 얼굴들이 총출동해 연기를 펼쳤던 장면이 아직도 또렷하다.
김국진의 명연기를 중심으로 젊은 배우와 가수들이 거쳐 가는 일종의 ‘스타 등용문’ 같기도 했다. 차인표와 이요원도 이 프로그램에 등장한 뒤로 텔레비전과 스크린에서 훨씬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어? 테마게임에서 봤던 그 사람이다!”
그들은 어느새 좁은 브라운관을 넘어 더 넓은 세상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다. 마치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던 우리들처럼.
​무엇보다 〈테마게임〉은 주제가 대담했다. SF, 공포물, 심지어 성전환까지. 당시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소재들을 과감하게 내놓았다. 토요일 밤 안방에서 보기엔 조금 낯설고, 때로는 파격적이기까지 한 이야기들이었다. 지금 기준으로 봐도 촌스럽지 않은 상상력과 구성이 있는가 하면, 어딘가 익숙한 설정 탓에 표절 논란에 시달리기도 했고, 시간이 흐르며 소재 고갈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기도 했다. 여기에 프로그램의 중심이던 김국진의 하차가 겹치면서, 결국 1999년 말, 나의 치열했던 입사 준비 기간이 끝날 무렵 〈테마게임〉도 막을 내렸다.


마치 한 시대의 토요일 밤이 조용히 퇴장하는 것처럼.
​돌이켜 보면, 〈테마게임〉은 나에게 첫 번째 ‘옴니버스 작법 수업’이었다. 하나의 키워드를 두고도 사람에 따라 이렇게 다른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는 사실. 같은 상황이라도 누구의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말로 흘러갈 수 있다는 것. 토요일 밤마다 나는 TV 앞에서 하나의 테마를 두 번, 세 번 바라보는 연습을 했고, 그 연습이 훗날 내 글 속에서 여러 사람의 마음을 상상하는 힘으로 남았는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테마게임〉은 지금 우리가 브런치에 발행하는 매거진과도 닮아 있다.
매번 다른 주제로, 각자의 상상력에 기대어 이야기를 쓰고, 그 안에 묻어나는 생각들을 함께 나누는 일. 그것이야말로 테마를 정해 펼쳐 보이는 하나의 게임, 곧 우리의 작은 ‘테마게임’이 아닐까. ​언젠가 브런치에 차곡차곡 쌓여 가는 좋은 글들 가운데 몇 편은, 누군가의 손을 거쳐 드라마가 되고, 다시 한번 새로운 테마게임으로 태어날지도 모른다. 그날을 떠올리며, 오늘도 나는 이곳에 한 편의 글을 더 보태어 본다. 누군가의 토요일 밤, 조용히 재생 버튼을 눌러 줄 작은 이야기(테마게임 2025~2026) 한 편이 되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