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짜파게티, 밤에는 일밤

우리를 TV 앞으로 모이게 한 프로그램

by 유블리안


​"일요일은 내가 짜파게티 요리사!"라는 광고 카피가 모든 남자를 셰프로 만드는 '낮의 기적'이었다면, "모아 모아서!"라는 멘트의 주인공, '개그계의 신사' 주병진은 가족들을 TV 앞으로 모이게 한 '밤의 기적'의 주인공이었다.



​<일밤>의 부흥기를 이끈 최고의 콤비


​1990년대에 '베스트 커플상'이 있었다면 단연 1위는 '주병진, 노사연' 커플이 아닐까 생각될 만큼, 두 사람은 찰떡 콤비였다. 순간 최고 시청률 80%를 자랑할 정도니 말이다.
​그 당시에는 모바일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이라, TV를 보기 위해서는 온 가족이 함께 집으로 들어와야 했다. 80%라는 시청률이 말해주듯, '일밤'이 하던 그 시간만큼은 도로가 한산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였다.
​'배워봅시다' 코너는 다양한 직업을 배우고 체험하는 코너로, 그 당시 예능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의 오프닝 멘트 "여러분의 시선을 모아 모아서!"는 정말 온 가족을 불러 모으는 주문 같았다. 주병진은 깔끔한 진행을, 노사연은 엉뚱하면서도 인간적인 모습으로 웃음을 주었다.
​특히 노사연이 접이식 플라스틱 수납 박스에 직접 들어갔다가 박스가 터져버린 도전은, (지금 생각하면) 대한민국 '최초의 언박싱' 방송 사고이자 잊지 못할 명장면이다.



​<일밤>이 낳은 또 다른 황제, 이경규


​놀랍게도 '몰래카메라'의 최초 기획자는 (MC) 주병진이었다. 주병진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이경규의 거침없는 추진력이 만나 전설의 코너가 탄생한 것이다. 그 당시 연예인들은 이경규만 만나면 "이거 몰래카메라 아니야?" 하고 의심할 정도였다.
​인기 연예인을 대상으로 몰래 촬영을 하여 돌발 상황을 만들고 그 반응을 보는 코너. 이 코너 하나로 이경규의 인지도는 급격히 올라갔고 '예능 황제'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그의 오프닝 멘트 "몰래카메라를 사랑하시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멀리 해외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는 그 자체로 유행어가 되었다. 특히 '팔도 사나이' 군가를 BGM 삼아, 뿌듯한 표정으로 속이러 가는 그의 뒷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최고의 웃음 포인트였다.
​시청률은 70% 정도로 나왔고, 가장 기억에 남는 명장면은 소설가 김홍신 편이다. 일반인 부부가 상담을 하러 나와 "아들이 수시로 가출을 해요. 아침에 나갔다가 밤에 들어와요."라며 하소연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인데도, 이걸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김홍신 작가의 모습에 배꼽 잡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https://youtu.be/TasEulh4sCc?si=rc6LefwwYfRmFt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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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지선이가 설레었던 정지선 지키기


​이경규의 <일밤>은 '몰래카메라'에서 멈추지 않았다. '양심 냉장고 - 정지선을 지켜라!'라는 또 다른 전설의 코너가 이어진 것이다.
​그 당시 제작진조차 '재미가 있겠냐'며 반대할 만큼, 이는 전혀 새로운 포맷의 '공익 예능'이었다. 아무도 없는 새벽 시간, 정지선을 지키는 사람은 (예상대로) 거의 없었다.
​하지만 제작진의 의도는 명확했다. 아무도 없는 새벽 시간이야말로, 만에 하나 보행자가 건널 때를 대비해 더욱 정지선을 지켜야 하는 위험한 시간대라는 것이다.
​모두가 정지선을 무시하고 지나가던 지루한 순간, 마침내 '1호 양심 냉장고'의 주인공이 나타났다. 그는 뇌성마비를 앓고 있음에도 "항상 정지선을 지킨다"라고 덤덤히 말했고, 이 모습은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엄청난 감동을 주었다. 그다음부터 '정지선 지키기'는 하나의 국민적 열풍이 되었다.
​누가 보든지 안 보든지 지켜야 할 것, 그것이 바로 '양심'임을 <일밤>이 TV를 통해 증명해 낸 것이다.



결심 하나로 바뀌는 인생, '인생극장'


​'딴따다 딴따다 딴따다다다다'하는 그 유명한 BGM이 흐르며 화면이 둘로 갈라졌다. "그래, 결심했어!" 그 한 마디와 함께 인생은 완전히 달라진다.
​'A를 선택한 인생'을 먼저 보여주고, 'B를 선택하지 않은 인생'을 뒤이어 보여주는 식이었다. '롱다리' 이휘재라는 별명이 붙은 이휘재가 그 주인공이었다.
​<인생극장>처럼, 현실에서는 어느 한순간을 두 가지 다 살아볼 수 없기에 항상 후회가 남는다는 교훈과 함께, '만약 그랬더라면'하는 상상을 대리만족시켜 주었다.
​특별 게스트로 출연한 심은하가 '주부'와 'CF 모델'의 갈림길에 섰던 편도 인기 폭발이었다. (드라마 <마지막 승부>에서 함께 연기했던 허준호 배우도 같이 나왔다.)
​이 코너로 이휘재는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훗날 그는 <인생극장>의 선택처럼 사생활 문제로 구설에 오르며 안타까움을 주기도 했다.



결론: 90년대, 온 가족의 '일요일 밤'


​90년대 <일밤>은 단순한 TV 쇼가 아니었다.

'종합 버라이어티'라는 이름 그대로, 그 안에는 우리 삶의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 있었다.
​주병진과 노사연의 '배워봅시다'로 순수한 웃음을, 이경규의 '몰래카메라'로 짜릿한 반전을, '양심 냉장고'로 묵직한 사회적 감동을, 그리고 이휘재의 '인생극장'으로 '선택'이라는 삶의 철학을 만났다.
​"그래, 결심했어!"라는 외침은 우리에게 '만약(If)'이라는 상상력을, "정지선을 지킵시다"라는 외침은 우리에게 '양심'이라는 가치를 되새기게 했다.
​'짜파게티'가 끓던 일요일 낮의 왁자지껄함이, '일밤'이 시작되는 저녁 7시의 고요한 집중으로 바뀌던 그 시절. 지금처럼 각자의 스마트폰을 보는 시대와 달리, 온 가족이 하나의 TV 앞에 모여 함께 웃고, 함께 감동하고, 함께 '양심'을 응원하던 그 '공동의 기억'이야말로, <일밤>이 90년대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선물이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