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앞에서 ‘이제 시작’을 배웠던 해
전주 하나만으로 모든 젊은이들이 열광한 노래가 있었다."빠바밤 빰빰"에 1994년의 공기가 그대로 담겨 있다. 가수 김민교의 거친 목소리가 브라운관을 뚫고 나오는 순간, 우리는 하던 일을 멈추고 TV 앞으로 달려갔다. 바로 드라마 〈마지막 승부〉가 시작되는 시간이었다. 그 시절 우리에게 농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었다. 땀 냄새나는 코트 위에서 부딪히고 넘어지면서도, "이제 시작"이라며 다시 일어서는 청춘들의 뜨거운 외침이었으니까.
이 드라마의 심장은 단연 철준(장동건)과 동민(손지창)의 관계였다. 둘은 어릴 적부터 한 몸처럼 붙어 다니던 친구였지만, 대학 진학을 앞두고 운명은 둘을 코트 위의 적수로 갈라놓는다. 동민은 어머니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친구들과의 약속을 어기고 명문대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들였고, 이런 속사정을 알지 못한 철준과 친구들은 졸지에 갈 곳 없는, 말 그대로 ‘농구 미아’가 되어버린다.
오해는 깊어졌고, 철준은 이를 악물고 공부해 시험을 통해 대학에 입학한다. 그렇게 다시 마주한 코트 위에서 둘의 몸싸움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한 여자(다슬)를 사이에 둔 삼각관계까지 얽히면서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치닫는다. 결국 동민 어머니의 임종을 계기로 진실이 드러나고, 다슬의 간절한 중재 끝에 철준은 늦게나마 모든 상황을 이해하게 된다. 철준은 동민을 찾아가 사실을 말해주지 않은 것에 대한 서운함을 털어놓지만, “정말 배신할 마음이었다면 나도 너희를 버렸을 거야.”라는 동민의 한마디에 둘은 서로를 끌어안은 채 눈물의 화해를 맞이한다. 지금 보면 약간 오글거리지만, 그때만 해도 꽤 멋진 장면이었다. 어쩌면 이미 동민을 찾아간 순간, 철준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그를 이해하고 화해하려는 마음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화해에 필요한 것은 무슨 말이든 좋으니 "딱 한마디만 해! 동민아." 이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 드라마의 백미는 역시 농구 액션이었다. 지금 다시 보면 다소 과장되어 보일지 몰라도, 동민의 ‘180도 회오리슛’, 철준의 ‘버저비터 덩크슛’은 당시 우리 모두를 얼어붙게 만들었다가 한꺼번에 터뜨려버린 최고의 장면들이었다. TV 앞에서 혼자 팔을 번쩍 들며 환호하던 그 밤의 공기까지 아직도 선명하다. 아직도 유튜브 채널에는 동민의 180도 회전슛이 가능 한지 실험을 하는 영상들이 올라올 정도이다.
이 드라마가 낳은 최고의 스타를 꼽으라면, 많은 이들이 주저 없이 '다슬이' 역의 심은하를 떠올릴 것이다. 청순가련한 외모, 높게 묶은 포니테일, 살짝 떨리던 눈빛까지. 당시 전국의 남학생 책상 위는 다슬이의 책받침으로 빼곡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어른의 눈으로 다시 보니, 그녀는… 일종의 ‘어장관리 고수’이기도 했다. 두 남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은 답답하기 그지없었고, 특히 절친 미주의 속을 수도 없이 뒤집어 놓았다.
극 중 다슬은 명성대 국어교육과, 그것도 중등교사 양성 과에 재학 중이었다. 그런데 결말부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철준과 함께 시골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있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분명한 설정 오류지만, 그땐 그저 ‘둘이 교사가 되었대’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 따뜻해지는 해피엔딩이었다.
반면 다슬의 절친 최미주(이상아)는 당시 말 그대로 ‘신세대 여대생’의 아이콘이었다. 불어불문과에 재학 중이었고, 젊은이들의 꿈의 차였던 빨간 스쿠프를 몰고 다니던 세련된 캐릭터였다. 그녀는 동민을 짝사랑했지만, 친구 다슬을 위해 감정을 감춘 채 뒤에서 묵묵히 응원하는 ‘대인배’이기도 했습니다. 서운함을 삼키고 웃어넘기는 순간들이 많았지만, 그 쿨한 기다림이 통했는지 결국 동민과 이어지며, 이 드라마 특유의 꽉 닫힌 해피엔딩을 완성합니다.
드라마의 열기는 고스란히 현실의 코트로 옮겨 붙었다. 바야흐로 대한민국 농구의 전성시대. 당시 ‘농구대잔치’의 인기는 요즘 아이돌 콘서트에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았다. 독수리 군단 연세대이상민, 우지원, 서장훈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이에 맞서는 호랑이 군단 고려대에는 전희철, 김병철, 양희승, 그리고 신인 ‘매직 히포’ 현주엽이 버티고 있었다.
두 팀의 라이벌 매치가 있는 날이면 체육관은 소녀 팬들의 함성으로 천장이 들릴 듯 흔들렸습니다. 팬들은 응원 팻말 대신, 선수 이름이 적힌 하드커버 공책과 필통을 들고 있었다.
불붙은 열기에 기름을 끼얹은 것이 바로 전설의 만화 〈슬램덩크〉였다. 가수 박상민의 OST와 역동적인 장면의 농구 디테일로 "왼손은 거들뿐"이라는 강백호의 대사는 전국 남학생들의 농구 바이블이 되었고, 학교 운동장과 동네 놀이터마다 농구공 튀기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90년대 중반은 한국 사회 전체에 ‘농구’라는 언어가 하나의 시대정신처럼 흐르던 때였다.
그런데 그 뜨거운 열기 속에서도, 필자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1994년, 대학 문턱에서 쓴맛을 본 직후였고, 미래는 안개처럼 흐릿했었다. 남들은 캠퍼스의 낭만을 즐기거나 코트 위를 누비던 그해, 나의 시간은 멈춘 듯 무겁게만 흘렀다. 하루를 버티는 일이 버거웠고, TV를 보는 것조차 괜히 사치처럼 느껴지던 시기였다.
그때 내게 다가와 조용히 어깨를 토닥여 준 건, 화려한 역전승 장면이 아니라 김민교가 부른 그 노래의 첫 소절이었다.
"힘이 들면 그대로 멈춰 눈물 흘려도 좋아."
그 한 줄이 마치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실패해도 괜찮다고, 잠시 멈춰 서서 울어도 된다고, 지금 이 자리에서 무너지더라도 인생이라는 경기는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 그리고 이어지는 "이제 시작이란 마음만은 잊지 마"라는 외침은, 주저앉아 있던 나를 억지로라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응원가가 되었다.
입시에서의 패배, 친구들과의 거리감,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으로 가득했던 1994년의 유블리안에게, 드라마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스코어가 밀려도, 연장전은 언제든 열릴 수 있다”라고.
〈마지막 승부〉는 그래서 단순한 스포츠 드라마가 아니다. 인생이라는 코트 위에서 몇 번이고 넘어졌던 우리 모두에게,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알려준 1994년의 뜨거운 기록이다. 농구공이 멈춰 서는 순간에도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었고, 그 심장이 들려준 작은 속삭임 하나는 지금도 이렇게 귓가에 머물러 있다.
“힘들면 울어도 돼. 하지만, 이 마음만은 잊지 말자. 이제 정말, 다시 시작이야.”
그 시절의 드라마 한 편이 우리 인생의 리플레이 버튼을 눌러주곤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1994년의 브라운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금도 유튜브와 재방을 통해 정주행을 이어가며, 나는 그때의 장면들을 지금의 시선으로 다시 해석해 본다.
추억을 다시 꺼내 보는 일인 동시에, “그때 우리는 참 순수했구나” 싶은 묘한 흐뭇함이 밀려온다. 거친 화면, 투박한 대사, 아날로그 감성이 오히려 더 따뜻하게 안겨오는 시대. 그렇게 한 편의 드라마를 다시 껴안고 나면, 1994년의 나는 여전히 코트 위에서 땀에 젖은 채, 인생의 마지막 승부를 준비하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