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2세, 백화점, 그리고 신데렐라의 탄생
"리릴라 레리오 라랄라~"
1994년의 여름은 유난히 뜨거웠다. 하지만 그 무더위보다 더 뜨거운 것이 월요일과 화요일 밤 10시, 브라운관을 달궜다. 드라마 방영 시간만 되면 도심의 거리가 텅 비어버린다는 전설의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 안에(1994.6.6~7.26)>였다.
오프닝 허밍 음악이 나오면 우리 모두는 강풍호와 이진주가 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당시 MBC 미니시리즈는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었다. 2030 직장인들의 퇴근 시간을 앞당기는 '귀가 시계'(최고 시청률 45.1%)였고, 다음 날 학교와 사무실의 대화 주제를 독점하는 거대한 트렌드였다.
이 드라마를 이야기하면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단 한 사람, 바로 차인표다. 그전까지 우리는 드라마 속 재벌 2세라고 하면 점잖은 양복을 입은 실장님 정도를 떠올렸다. 하지만 차인표가 연기한 '강풍호'는 달랐다. 가죽 재킷을 입고 오토바이를 몰며, 밤이면 색소폰을 연주하는 파격적인 재벌 2세였다.
특히 그가 검지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며 "너!"를 찜하는 그 제스처 하나에 대한민국 여심(女心)은 그야말로 초토화되었다. 느끼하다고? 지금 보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그 손짓 하나가 곧 법이고 진리였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남자들 중에는 그의 헤어스타일을 따라 하기 위해 무스와 스프레이의 매출이 상승하던 시대였다.
줄거리는 단순했다. 백화점 경영주 아들과 그 백화점의 평범한 여직원(신애라)의 사랑 이야기. 이른바 '한국형 신데렐라 드라마'의 시초이자 교과서 같은 작품이다.
하지만 이 뻔한 이야기가 그토록 특별했던 이유는, 드라마 속 공간이 당시 90년대 호황기의 상징과도 같았던 '백화점'이었기 때문이다. 화려한 쇼윈도, 세련된 오피스,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직장인들의 미묘한 감정선은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20대들에게 동경과 공감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물질적 풍요와 신분 상승이라는 판타지. 어쩌면 우리는 드라마를 보며 나도 저런 마법 같은 사랑의 주인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달콤한 꿈을 꾸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백화점에 대한 좋은 기억으로 입사해서 지금까지 근무를 할 수 있었다.
드라마의 몰입도가 높았던 결정적인 이유는 남녀 주인공의 '케미'가 연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차인표와 신애라, 두 사람은 드라마 속 사랑을 현실로 가져와 실제 연인이 되었고 결혼까지 골인했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그들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연예계의 대표 잉꼬부부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 드라마 속 판타지가 현실에서도 아름답게 지켜지고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사랑을 그대 품 안에>가 우리에게 남긴 진짜 엔딩이 아닐까.
오프닝 음악(허밍음악)이 나오면 지금도 조건반사처럼 그 시절의 여름밤이 떠오른다. 최진영의 '사랑을 그대품안에' 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OST다. 비록 지금 다시 보면 촌스러운 화장과 과장된 설정에 "으악!" 소리가 절로 나올지 모른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1994년의 공기, 뜨거웠던 서울의 밤, 그리고 사랑 하나에 모든 것을 걸었던 그 순수함만은 여전히 촌스럽지 않다.
마치 내 서랍 속 오래된 비디오테이프처럼, <사랑을 그대 품 안에>는 언제 꺼내 봐도 그 시절의 나를 미소 짓게 만드는 타임캡슐이다.
https://youtu.be/m9HClKdq_Sc?si=TcvawAHIKIGhAGX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