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여름을 얼려버린 초록색 눈동자
1994년 여름은 기록적인 폭염으로 기억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해 여름밤은 그 어느 때보다 서늘했다.
밤 10시가 되면 온 가족이 TV 앞에 모여 숨을 죽였고, "나는 M이다..."라는 그 낮고 굵은 목소리가 들려올 때면 나도 모르게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려야 했다. 대한민국 납량특집 드라마의 역사를 새로 쓴 메디컬 스릴러, <M>이었다.
이 드라마가 그토록 충격적이었던 첫 번째 이유는 주연 배우 심은하 때문이었다. 불과 몇 달 전, 드라마 <마지막 승부>에서 청순가련의 대명사 "다슬이"였던 그녀가, <M>에서는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청순한 여대생 '마리'였다가, 눈동자가 초록색으로 변하는 순간 악령 'M'으로 돌변하는 그녀의 연기는 그야말로 파격 그 자체였다. (지금 보면 조악한 특수 분장이었지만, 그 당시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초록색 눈동자가 주는 공포감은 '전설의 고향' 귀신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섬뜩했다.)
공포를 극대화한 것은 소리였다. 음산한 신디사이저 기계음으로 시작되는 OST는 듣기만 해도 소름이 돋았고, 변조된 굵은 목소리는 당시 대한민국 전체를 휩쓴 유행어가 되었다.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개그맨들이 눈을 뒤집으며 패러디하기 바빴고, 길거리나 버스 안에서도 장난스럽게 목소리를 깔고 "나는 M이다..."라며 흉내 내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주제가 '나는 널 몰라'에서 M이 녹음한 것과 같은 절규하는 목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공포에질리게 하였고 백마스킹 이슈가 있었다.
드라마는 단순한 공포물을 넘어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를 던졌다. '낙태'로 인해 태어나지 못한 아이의 영혼이 복수를 한다는 설정은 1994년 당시 우리 사회가 외면하고 싶었던 생명 윤리에 대한 죄책감을 정면으로 건드렸다.
하지만 M은 단순한 괴물이 아니었다. 복수를 하고 싶다는 마음보다, 아들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더 컸는지도 모른다. 친엄마를 찾아가 "자신을 사랑했다고 말하라"라고 절규하는 장면은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렸다.
결말은 충격적인 비극이었다. 마지막 순간 지석(이창훈)은 마리를 살리기 위해 M을 자신의 몸으로 옮겨갔지만, 경찰들은 이를 모른 채 마리를 위험인물로 오인해 총을 쏘고 만다.
결국 지석은 죽은 마리의 손을 잡고 높은 굴뚝 위에서 함께 떨어지는 선택을 한다. 공포로 시작했지만, 죽음까지 함께한 두 사람의 숭고한 사랑으로 끝난 이 엔딩은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깊은 슬픔과 여운을 남겼다.
최고 시청률 52.2%. 거리는 텅 비었고, 사람들은 납량특집이 주는 카타르시스에 열광했다. 지금 다시 보면 어색한 CG와 느린 전개에 헛웃음이 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1994년 그 뜨거웠던 여름밤, 우리를 공포에 떨게 했던 건 특수효과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 안의 또 다른 자아라는 낯선 설정, 그리고 우리가 지키지 못한 것들에 대한 슬픈 경고가 주는 서늘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https://youtu.be/btUMK8GOPiw?si=ffETdX0dmtzf69e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