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의 터치와는 다른, 그 휠의 온도
요즘의 터치는 가볍다.
한 손가락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무심하게 툭 치거나, 위아래로 빠르게 훑어 내리면 그만이다.
그곳엔 감각이 머무를 틈이 없다. 모든 것이 0.1초 만에 결정되는 직선의 세계다.
오랜만에 꺼내 든 아이팟 클래식은 달랐다.
잠들어 있던 이 녀석을 깨우기 위해 나는 엄지를 휠 위에 올리고 조심스럽게 원을 그렸다.
직선이 아닌 곡선의 움직임. 빙글빙글, 손끝을 타고 전해지는 미세한 진동과 함께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공교롭게도 화면에 뜬 첫 곡은 Joy의 <Touch by Touch>.
그것도 3분짜리 짧은 원곡이 아니라, 호흡이 긴 '리믹스(Extended) 버전'이다.
쿵, 쿵, 쿵. 확장된 전주가 길게 이어지며 나의 심장 소리가 같이 커지는 느낌이다.
노래 제목을 곱씹어 본다. 'Touch by Touch'.
스마트폰 시대의 터치가 단순히 좌표를 찍는 '탭(Tap)'이라면,
아이팟의 터치는 대상을 어루만지는 '스트로크(Stroke)'에 가깝다.
원하는 노래에 닿기 위해서는 휠을 돌리며 과정을 쌓아야 한다.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게.
마치 누군가의 손을 잡듯 온기를 담아 문질러야 비로소 기계는 반응한다.
"Skin to skin~"
유로댄스의 가사처럼, 이 투박한 기계는 나의 손끝 감각(Skin)을 통해 비로소 깨어난다.
편리함은 덜할지 몰라도, 교감의 깊이는 훨씬 깊다.
나는 휠을 돌리며 이 작은 기계와 다시 사랑에 빠질 준비를 한다.
오랫동안 묵혀놨지만 우리는 아직 현역이다.
음악을 듣다 문득 기계의 뒷면을 돌려보았다.
거울처럼 반짝이는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를 씌워 애지중지했던 덕분에 그 흔한 생활 흠집 하나 없다.
사람들은 이 두꺼운 기계를 '유물'이라 부르지만, 내 눈엔 여전히 세련된 현역이다.
매끈한 뒷면에 내 얼굴을 비춰본다.
세월이 꽤 지났지만, 나 역시 아직 건재하다. 주름은 아주 살짝(?) 늘었을지언정,
좋은 음악에 설레고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내 안의 엔진은 녹슬지 않았다.
화면 속 'Extended Version'이라는 문구가 마치 나에게 건네는 말 같다.
"우리의 즐거움은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아.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야."
서랍 속에 처박혀 잊힐 뻔했던 아이팟이 전원 버튼 한 번에 생생하게 돌아가듯,
나 또한 언제든 휠을 돌려 세상과 'Touch' 할 준비가 되어 있다.
클래식(Classic)은 낡은 것이 아니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닌 것, 그리하여 영원히 늙지 않는 것이다.
나의 아이팟과 나의 신체 배터리는 아직 짱짱하다.
터치바이 터치 듣기
https://youtu.be/wrIDSc52hoo?si=ZXvIqlCDUaX6us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