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을 견디는 그 자리, 관계에 대하여
나에게 큰 울림을 준 책이 있다.
바로 샘 리처드 교수의 『스위트 스팟』이다.
이 책은 내게 많은 질문을 던진 책이었다.
“나는 지금 삶의 어디쯤 서 있는 걸까?”
“내가 느끼는 이 불편함은, 진짜 나를 위한 자극일까?”
책장을 덮은 후에도 이 질문들이 오래 머물렀다.
그리고 문득, 또 하나의 물음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타인과의 관계 속
스위트 스팟은 어디에 있을까?”
그 질문에서 하나의 상상이 시작되었다.
만약 내가 이 책의 속편을 쓴다면,
그리고 그 속편이 관계, 갈등, 공존에 대한 이야기라면
나는 이렇게 써보지 않았을까?
오늘은 그 상상력을 바탕으로 나만의『스위트 스팟』
그다음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원작인 『스위트 스팟』은 불편함 속에서
삶의 균형을 찾는 법에 대해 말한다.
그건 철저히 ‘내면’의 이야기였다.
나의 고통, 나의 선택, 나의 감정과 성장 말이다.
하지만 책을 읽은 뒤,
내 안에 남은 질문은 이것이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과 함께 흔들릴 땐,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하지?”
MBTI, 세대 차이, 정치 성향...
요즘 우리는 서로 다른 것을 마주칠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거리 두기' 버튼을 누르게 된다.
"쟤는 원래 저래."
이 말은 너무 쉽게 입에 오르내린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건 어쩌면 그 사람을 깊이 알고 싶지 않다는
마음의 예쁜 포장일지도 모른다.
진짜 성숙한 관계는 억지로 맞춰가는 것이 아니라,
알아가려는 태도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특히 정치 이야기가 그렇다.
서로의 의견을 묻기보다 성향 하나로
그 사람 전체를 판단해버리는 분위기 탓에,
가까운 사람일수록 오히려
더 깊은 대화를 피하게 된다.
관계를 지키기 위해 말을 삼키지만,
그 침묵이 오히려 거리를 벌리기도 한다.
“너 좀 예민한 거 아냐?”
이 한마디에 감정이 흔들린다면,
그건 이상한 일일까?
사실 나도 자주 듣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예민하다는 것이 꼭 나쁜 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서로 다른 주파수로
감정의 진동을 느끼는 존재다.
어떤 사람은 잔잔한 파동에도 울컥하고,
어떤 사람은 거센 감정에도 묵묵히 버틴다.
감정을 잘 느끼는 사람일수록
이 시대엔 더 자주 지칠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기 감정뿐 아니라 타인의 감정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상대의 표정, 말투, 분위기 하나에도
자신의 기분이 오르내리기 쉽다.
그래서 때론 힘들지만, 그만큼 공감의 깊이도
더 크고 섬세하다.
그건 결코 나약함이 아니다.
세상을 더 부드럽고 따뜻하게
바라볼 줄 아는 능력이다.
“나도 그런 적 있어.”
이 말이 꼭 공감이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상대의 이야기를 빼앗는 말처럼
들릴 때도 있다.
듣는 이에겐 어쩌면 이렇게 들릴 수도 있지 않을까.
"나도 다 겪었는데, 너는 왜 그렇게 나약해?"
특히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위로가 아니라 부담이 되기 쉽다.
사춘기 시기의 아이들은 몸은 다 큰 듯 보여도
가치관은 아직 형성 중이기 때문에
매일이 혼란스럽고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탄다.
그럴 땐 섣부른 조언보다 먼저,
그 마음을 인정해주는 한 마디가 필요하다.
“그래, 그랬구나. 많이 힘들었겠다.”
진짜 위로는 복잡한 말 속에 있는 게 아니라,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말 한 줄 속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굳이 말 안 해도 알잖아.”
이 말, 종종 듣고 또 하게 되는 말이다.
하지만 사실… 대부분 모른다.
사람 마음은 무뚝뚝한 신호등 같아서,
누군가 버튼을 눌러주지 않으면 반응하지 않는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오히려 더
말로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관계가 멀어질까 봐 걱정돼서,
괜히 ‘알아서 이해하겠지’라는 생각으로
넘기다 보면 서로가 엇갈리고
멀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진짜 가까운 사이라면, 솔직한 대화를 통해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가까워질 수 있다.
내가 좋아하던 초코과자 광고가 떠오른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情…"
하지만 광고는 광고일 뿐이고,
현실은… 말 안 하면 진짜 모른다.
『스위트 스팟』은 나를 이해하게 해준 책이었다.
그리고 내가 상상한 『스위트 스팟 2』는
나와 다른 사람을 견디는 법, 이해하는 법,
그리고 다르면서도 함께 살아가는 법에 대한 이야기다.
모두가 같은 속도로 걷지 않아도 괜찮다.
누군가는 천천히, 누군가는 조금 앞서 걸어도 된다.
다른 신발을 신었다고 이상한 게 아니니까.
우리는 그저 다르게 괜찮은 사람들일 뿐이다.
서로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 다양함이 모여 서로를 비추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
진짜 의미의 ‘함께’ 아닐까?
"다름은 견디는 것이 아니라, 익숙해지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