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방전된 마음은 누가 충전해 주지?
밤 11시. K가 퇴근하고 돌아와 씻지도 않고 침대에 누웠다.
방 불은 꺼져 있다. 또다시 나와 그만의 시간이다.
K는 나를 반쯤 접어 '텐트 모드'로 세워두려다,
다시 활짝 펴서 얼굴 위로 들었다.
"아, 관절 아프다. 야."
하루 종일 몇 백 번을 접었다 폈다 했는지 내 관절이 뻐근하다.
그래도 내 얼굴의 주름 빼고는 멀쩡하다.
그나마 1~6기 선배들 보다는 주름이 덜하니 다행이다.
하지만 불평할 틈도 없이 내 눈(화면)은 다시 빛을 뿜어냈다.
그의 검지가 [스레드] 아이콘을 눌렀다. 화려한 사진들이 내 화면을 가득 채웠다.
동기 녀석의 골프장 라운딩 사진.
전 여친의 행복한 신혼여행 사진.
듣도 보도 못한 코인으로 대박 났다는 친구의 인증샷.
K의 검지는 기계적으로 [좋아요 ❤]를 누르고 있었다.
형식적으로 쓰는 짧은 댓글, 그래도 이렇게라도 소통하는구나 생각했다.
표정은 전혀 좋지 않으면서. 아니, 질투와 패배감으로 일그러져 있으면서.
그는 스크롤을 내릴 때마다 작게 한숨을 쉬었다.
'부럽다.' '나만 뒤처지는 건가.' '이 자식은 언제 승진했대.'
그의 뇌파가 우울함으로 진동하는 게 내 메인보드까지 느껴졌다.
K야, 그거 다 가짜야.
저 사진 나도 합성할 수 있어. AI의 힘을 빌린 거라고 기죽지 마~~
하지만 K는 남들의 '하이라이트'와 자신의 '비하인드'를 비교하며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었다.
"에잇... 못해먹겠네."
그러면서 AI기능을 켜고는 갤러리에 들어갔다.
“나도 사진 보정 해봐? 필요 없는 배경 지우고 얼굴 잡티도 지우고... 에휴, 그래봐야...”
그는 신경질적으로 스레드 어플을 닫았다.
그리고 아주 익숙한 손놀림으로 [인터넷 브라우저]를 켰다.
드디어 시작이군, 오직 나(스마트폰)만 아는
그의 진짜 속마음. K의 검지가 검색창 위에서 춤을 췄다.
[최근 검색 기록]
폴드 7 내구성
직장인 번아웃 증상
로또 당첨 번호 통계
조용한 사직 뜻
30대 평균 저축액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면.
'나를 내구성 테스트 하는 거야? 허~~ 떨어뜨리지만 마라.'
그러고 보니 검색어 하나하나가 비명 같았다.
낮에는 팀장에게 "넵, 알겠습니다!"를 외치던 그 손가락으로,
밤에는 "사라지고 싶다"는 단어를 검색하고 있었다.
그는 검색 결과를 읽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이내 [유튜브]를 켰다.
내가 자랑하는 최첨단 AI 알고리즘이 K의 취향을 완벽하게 분석해 화면에 띄웠다.
그런데 그 추천 목록이 가관이다.
[장작 타는 소리 10시간 ASMR]
[빗소리 들으며 차박 캠핑 (대리 만족)]
[퇴사하고 시골 가서 텃밭 가꾸는 브이로그]
화려한 아이돌 직캠도, 웃긴 예능도 아니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그저 멍하니 타오르는 장작불 영상만 쳐다보았다.
그 작은 화면 속의 가짜 불멍이, 차가운 도시의 밤을 견디게 하는 유일한 온기라는 듯이.
나는 내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발열 때문이 아니었다.
K가 나를 쥐고 있는 손에 힘을 꽉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울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데이터는 울고 있었다.
'K, 사실 나는 네가 뭘 검색했는지 다 기억해.'
'네가 새벽 3시에 썼다가 지운 그 일기들도, 삭제한 사진첩 속의 웃는 얼굴들도 내 메모리 구석에 다 숨겨놨어.'
나는 그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너는 검색창 속의 우울한 단어들보다 훨씬 괜찮은 사람이라고.
네가 보는 저 유튜버들보다, 매일 아침 지옥철을 견디는 네가 훨씬 대단하다고.
하지만 나는 말 못 하는 기계 덩어리일 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가 보던 장작불 영상이 끊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데이터를 전송하는 것뿐.
K는 평소 루틴 대로 일기를 썼다.
"오늘도 힘든 하루였다. 그래도 폴더블 스마트폰이 있어서 덜 외롭다."
여자친구를 사귀어야 덜 외롭지. 나를 백날 부비부비 해봐야 소용없다고!
어느덧 새벽 1시. K의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폰을 쥔 손에서 힘이 빠지더니, 툭 하고 내가 K의 얼굴 위로, 정확히는 눈 위로 떨어졌다.
"아오, 아파라!"
K는 짧게 신음하더니 나를 옆으로 치워두고는 잠에 빠져들었다.
혹시 눈두덩이가 부은 게 울어서 부은 게 아니라 맨날 나한테 맞아서 그런 것 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나는 침대 모서리에 위태롭게 버티고 있었다. 떨어지면 수리비 좀 나올 텐데.
K는 오늘도 충전기를 꽂는 걸 깜빡했다. [배터리 잔량: 4%]
내 생명이 꺼져가고 있었다. 화면이 점점 어두워졌다. 마지막 힘을 짜내어 나는 잠든 K의 얼굴을 비췄다.
스마트폰 불빛이 사라진 어둠 속, K는 웅크린 채 자고 있었다. 마치 뱃속의 태아처럼 말이다.
나는 내일 충전기를 꽂으면 다시 100%로 살아날 것이다.
하지만 너는... 너의 방전된 마음은 어디서 충전해야 할까 걱정이다.
K야, 내일 아침 알람이 울리기 전까지만이라도, 부디 힘든 꿈 속에서는 로그아웃 하기를.
지직...
[System Shutdown] [전원이 꺼집니다.]
. . .
[System Alert] '스마트폰'에서 로그아웃 되었습니다.
[Loading Day 3...] K의 낡은 구두로 로그人 시도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