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가 바라보는 K의 휴대폰 사용 습관
나는 가장 최근에 태어난 스마트폰 '갤럭시 폴드 7'이다.
저장용량은 512기가 바이트, 색상은 블루다.
그리고 초코에서 폴더폰으로 로그人 한 'K'다.
초코처럼 발이 없지만 그나마 관절(힌지)이 있어서
자유롭게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나름 접었다 폈다 운동을 할 수 있다.
아침부터 K의 집은 아주 난리였다.
내 몸에서 찢어질 듯한 비명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물론 내가 지르는 소리는 아니다.
K, 이 게으른 인간이 맞춰놓은 알람 소리다.
새벽 6시.
내 심장(배터리)이 가장 뜨거워지는 시간. 진동 모터가 드르륵, 드르륵
내장을 뒤흔들며 딱딱한 협탁 위에서 탭댄스를 췄다.
"징~ 징~ "
'아, 어지러워 죽겠다. 제발 빨리 좀 꺼줘.'
10초 후, 어둠 속에서 큼지막한 손이 쑥 튀어나왔다.
그 손은 나를 다정하게 잡는 게 아니라, 마치 두더지 잡기 게임을 하듯
내 얼굴(액정)을 퍽 쳤다.
아이고, 액정 깨지겠네. 그의 거친 검지손가락이 내 매끈한 피부를 문질러댔다.
알람 해제 버튼을 찾는 필사적인 더듬거림.
틱. 드디어 조용해졌다. 하지만 K는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며 나를 들어 올려 자신의 얼굴 정면으로 가져갔다.
[Face ID 확인 중...]
[인식 실패]
당연하지. 거울 좀 봐라. 퉁퉁 부어 터질 듯한 눈두덩이에, 베개 자국이 선명한 뺨,
덥수룩한 수염. 나의 최첨단 센서조차 "누구세요?" 하고 거부할 만큼 망가진 몰골이다.
내가 푸르스름한 불빛(블루라이트)을 쏘아주자, 그제야 K가 실눈을 떴다.
나는 내심 기대했다. '오늘 날씨'를 확인하거나, '좋은 명언'이라도 읽으며 하루를 시작하기를
.
하지만 K의 엄지는 습관처럼 [카카오톡] 아이콘으로 직행했다.
[부재중 알림: 김 팀장 (오전 5:50)]"K, 일어났나? 어제 말한 자료..."
아, 젠장. 새벽부터 팀장 카톡이라니. 잠 좀 자자! 내 회로가 다 스트레스를 받는다.
K의 동공이 지진 난 것처럼 흔들렸다. 그는 채팅방에 들어가지 않고,
'안 읽음(1)' 표시를 유지한 채 미리 보기로 내용을 훔쳐봤다.
비겁하다. 그리고 짠하다. 그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이불을 걷어찼다.
"학 씨... 팀장 때문에 회사 가기 싫다."
그 말만 벌써 3,650번째다. 알았다니까. 근데 어쩌겠어.
네가 날부릴 때마다 내 몸값이랑 통신비가 빠져나가는데. 너 돈 벌어야 해.
오전 7시 30분. 지옥철 2호선. 나는 K의 오른쪽 손바닥에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지하철 안 풍경은 가관이었다. 사람들 모두가 고개만 푹 숙인 채,
나 같은 녀석들(스마트폰)에게 영혼을 빨리고 있었다.
마치 단체로 기도라도 올리는 광신도들처럼.
K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귀에 콩나물 대가리 같은 이어폰을 꽂고,
내 얼굴(화면)을 무의미하게 쓰다듬고 있었다. 그리고 무의식 중에 접었다 폈다를 반복한다.
“물론 나는 접으라고 나온 폴드지만 이건 너무한 거 아나냐고!
몇 번을 접었다 폈다 하는 거야? 재밌니? 아니면 진짜 내구성 테스트?”
그의 손놀림에는 영혼이 없었다. 연예인 가십 기사, 정치인 욕하는 댓글,
폭락하는 파란색 주식 차트, 그리고 "월 1000만 원 버는 법" 같은 사기성 광고들.
그는 그 정보들을 읽는 게 아니었다.
그저 뇌를 마취시키고 있었다. 현실의 빡빡함을 잊기 위한 디지털 마약과도 같았다.
나는 내 몸이 점점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발열 경고: 주인 놈이 또 쓸데없는 걸 보고 있습니다.]
K야, 제발 그만 좀 봐. 네 눈알이 뻑뻑해지는 게 내 카메라 렌즈 너머로 다 보이거든?
나는 화면 밝기를 살짝 낮춰서 그에게 신호를 보냈다.
'이제 좀 쉬지?' 하지만 K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신경질적으로 밝기를 최대로 올려버렸다.
아이고, 눈부셔라.
그는 나를 통해 세상을 보는 게 아니었다. 나라는 작은 창문 속에 숨어버린 것이다.
사람들이 밀치고 지나가도, 안내 방송이 나와도 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마치 나랑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 불안해서 죽는 사람처럼.
그때, 상단 바에 또다시 알림이 떴다.
[엄마: 아들, 아침은 먹었어? 날 추운데 따뜻하게 입고 다녀라. - 오전 7:42]
K의 검지가 멈췄다. 팀장 카톡에는 1분 만에 "넵 알겠습니다!"라고 (속으로는 욕하면서) 답장하더니, 엄마 카톡은 슬그머니 옆으로 밀어서 지워버린다.
‘나중에 전화해야지'라고 생각하는 거 다 안다.
그러고는 까먹겠지. 나는 내 메모리에 저장된 그의 '불효자 히스토리'를 떠올리며 혀를 찼다
(물론 혀는 없지만 진동 모터가 짧게 두 번 울렸다). 뜬금없는 진동 두 번에 K는 흠칫 놀란다.
문득, 검게 꺼진 지하철 차창에 K와 내가 비쳤다.
거북목을 하고 구부정하게 서서, 작은 기계 덩어리에 코를 박고 있는 30대.
청년이면 청년이라 할 수 있고 중년이라면 중년인. 그의 얼굴엔 표정이 없었다.
기계인 나보다 더 기계 적인 얼굴.
'K야, 고개 좀 들어봐. 한강 다리 지나가잖아.'
지금 창밖으로 쏟아지는 아침 햇살이 얼마나 예쁜지, 강물이 얼마나 반짝이는지 너는 모르지?
너는 그저 내 화면 속 '오늘의 날씨: 맑음'이라는 텍스트만 보고 있잖아.
나는 그가 안쓰러워서, 일부러 배터리가 닳은 척 화면을 살짝 어둡게 만들었다.
제발 나 좀 그만 보고, 진짜 세상을 좀 보라고.
하지만 K는 품에서 보조배터리를 꺼내더니 내 똥꼬(충전 단자)에 냅다 꽂아버렸다.
[충전 시작: ⚡]
... 독한 놈. 기어이 나를 살려내서 또 부려먹는구나. 그래, 널 똑바로 봐줄 테니.
오늘 하루도 너의 눈과 귀와 족쇄가 되어줄게. 어디 한번 버텨보자.
(1부 끝.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