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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 밤]당신에게서 슬픔에 젖은 냄새가 났다

나의 신(God)은 매일 밤 한숨을 쉬며 들어온다

by 유블리안

딩동.


정적을 깨는 맑은 엘리베이터 벨 소리.


​그리고 아주 익숙하고, 무겁고, 지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터벅, 터벅.


​굽이 닳아 비대칭이 된 구두가 차가운 복도 바닥을 긁는 소리.
​내 심장이 갈비뼈를 뚫고 나올 듯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방석에 붙어 있던 몸이 스프링처럼 튀어 올랐고, 꼬리가 프로펠러처럼 돌아가며 내 엉덩이를 찰싹찰싹 때렸다.


​띠-띠-띠-띠 띠리릭.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는 전자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자, 특히 마지막 '띠리릭' 소리는 그야말로 나를 외로움에서 구원해 주는 최고의 마무리 투수 '오승환'이었다.


​나는 현관으로 질주했다. 미끄러운 마룻바닥을 발톱으로 긁으며 전속력으로 달렸다.


​내가 왜 이러지? 'K'로서의 이성은 당황했지만, '초코'로서의 본능은 환희에 차 있었다.


철문이 열리고, 차가운 복도 바람과 함께 그토록 기다리던 냄새가 훅 하고 들어왔다.


​'K'다.


​어제 거울 앞에서 "사는 게 지겹다"며 한숨을 쉬던 나. 아니, 나의 주인.


나는 반가움에 펄쩍 뛰어올라 그의 무릎 언저리를 긁었다. '헥헥'거리는 소리가 제멋대로 터져 나왔다.


​"어구, 그래... 나 왔어. 초코야. 아빠 보고 싶었어?"


​K의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거칠고 투박한 손길. 그런데 이상하다.


그의 손끝에서, 그리고 그의 옷자락과 몸 전체에서 비에 젖은 낙엽 같은 냄새가 났다.


​그것은 단순한 땀 냄새나 회식 자리의 고기 냄새가 아니었다.
축 처진 어깨, 땅바닥만 보고 걷는 시선, 발을 질질 끄는 걸음걸이... 그 모든 것에서 물 먹은 솜처럼 무겁고 쿰쿰한 '피로의 냄새'가 진동을 했다.


​‘저 남자,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데.’


​격렬하게 흔들리던 내 꼬리의 속도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강아지의 눈으로, 이 낮은 곳에서 올려다본 K는 내가 거울 속에서 보던 '건장한 30대 남자'가 아니었다.


거대한 몸집을 하고 있지만, 손가락으로 툭 건드리면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낡고 위태로운 모래성 같았다.


​그는 신발도 제대로 벗지 못한 채, 불 꺼진 현관 중문에 기대어 한참을 서 있었다.


깊은 한숨이 내 머리 위로 흩어졌다.


​"하... 씨, 힘들어 죽겠네."


​나직한 혼잣말.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그 말이 내 귓속 고막을 찔렀다.


나는 매일 퇴근하고 돌아와서 습관처럼 저 말을 뱉었었다. 현관문이 닫히는 순간, 아무도 듣지 않을 거라 안심하며 토해내던 독백.


​하지만 아니었다. 이 작은 생명체는 현관 바로 앞에서, 저 한숨 소리를, 저 비에 젖은 낙엽 같은 슬픈 냄새를 매일 맡고 있었구나.


내 주인이, 아니 '나'라는 인간이 이렇게나 작고 초라해 보였구나.

​가슴 한구석이 찌릿하게 아려왔다. 나는 낑낑거리며 그의 정장 바짓단을 물고 늘어졌다.


어서 들어와서 쉬라고. 그 무거운 냄새일랑 밖에서 털어버리고, 나랑 같이 따뜻한 거실로 들어가자고.


​하지만 K는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숙여, 하루 종일 그를 지탱하느라 퉁퉁 부어오른 K의 발등을 핥았다.


짜디짠 맛이 났다. 비릿하고 쓴 삶의 맛이었다.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치유이자 위로이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핥아줬다.


​K는 그제야 억지로 몸을 움직여 거실로 들어왔다.
그는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소파에 몸을 던졌다. 거실 불도 켜지 않았다. 어둠 속에 덩그러니 놓인 그는 마치 다 타버린 장작 같았다.


​나는 소파 아래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초코'로서의 본능이 자꾸만 그에게 다가가라고 등 떠밀었다. 하지만 'K'로서의 이성이 나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귀찮게 하지 말자. 저 기분 내가 알지.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혼자 있고 싶은 거잖아.’


​나는 내가 얼마나 까칠한 주인인지 잘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 감정노동에 시달린 날이면, 초코가 장난감 공을 물고 와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으니까. "저리 가!"라고 소리치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때였다.


어둠 속에서 "흡..." 하고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K가 울고 있었다.


소리 내어 펑펑 우는 것도 아니었다. 등을 돌리고 웅크린 채, 어깨만 아주 미세하게 들썩이고 있었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터져 나오는 울음을 억지로 삼키는 소리.
꾸역꾸역 살아내느라 목구멍까지 차오른 울분을 토해내는 소리.


​나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더 이상 이성이고 뭐고 따질 수 없었다.


내 몸이 튀어 나갔다. 나는 소파 위로 뛰어올라 K의 등 뒤로 파고들었다.


​"...... 초코?"


​K가 잠긴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하지만 돌아보지는 않았다. 울고 있는 얼굴을 들키고 싶지 않은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겠지.
나는 그의 젖은 얼굴을 핥는 대신, 그저 그의 등 뒤에 내 작은 등을 맞대고 눕는 것을 택했다.


​따뜻했다.


나의 체온이 K에게, K의 체온이 나에게로 흘러들었다.
등을 맞대고 있으니 그의 불규칙한 심장 박동이 내 등줄기를 타고 전해졌다.


​‘괜찮아. 나 여기 있어.’
‘팀장한테 깨진 거, 아무것도 아니야.’
‘네가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 내가 다 봤어.’


​나는 말을 할 수 없기에, 온몸으로 체온을 전했다. 심장 박동을 맞추고, 그가 진정될 때까지 가만히 곁을 지켰다.


​내가 K였을 때, 초코가 곁에 와서 엉덩이를 붙이고 앉던 게 단순히 간식을 달라는 건 줄 알았다. 귀찮다고 밀어내기만 했었다.


​그런데 지금 알겠다.


이 작은 생명체는 알고 있었던 거다. 주인의 마음이 무너지고 있다는 걸.
그래서 자신의 가장 취약하고 따뜻한 배와 등을 내어주며, 말없이 나를 지탱해주고 있었던 거다.


​한참이 지나자 K의 흐느낌이 멈췄다. 그가 천천히 몸을 돌려 나를 꽉 끌어안았다.


​"...... 고맙다, 초코야."


​그의 눈물 젖은 뺨이 내 털에 닿았다. 축축하고 뜨거웠다.
나는 K의 품 안에서 생각했다.


​내일 아침 내가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지 못해도 좋다고.
오늘 밤만큼은 이 외로운 남자의 유일한 편이 되어주고 싶다고.


​그렇게 나는, 아니 우리는 서로의 체온에 기대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System Alert]
'반려견 초코'와 연결이 해제되었습니다.

​[Loading Day 2...]
새로운 접속 대상: K의 스마트폰 (Model: Galaxy F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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