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3] 낡은 구두의 마지막 희생

제시간에 도착했지만, 항상 늦은 사람처럼

by 유블리안

[System Status: 업무 구역 진입]


회사 건물 로비 바닥은 반짝거렸다.

대리석은 차가웠고, 미끄럽지 않았다.

적어도 여기서는, 나는 더 이상 물을 빨아들이지 않았다.


K는 8시 58분에 출근 인증을 찍었다.

딱 맞춘 시간.

지각도 아니고, 여유도 없는 완벽한 정시였다.


그런데도 9시 10분,

우리는 팀장 앞에 서 있었다.


“이게 말이야, K 대리.

이런 식으로 일하면 곤란해.”


팀장의 목소리는 건조했고

말끝은 항상 미리 날이 서 있었다.


회의실 바닥 위에 서 있는 동안

K의 체중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왼발로 갔다가, 다시 오른발.

그때마다 내 밑창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마찰음을 냈다.


“어제 보고서는 왜 그렇게 올렸어?”

“이 정도는 예측했어야지.

5년 동안 배운 게 이 정도야?”

“요즘 집중력이 떨어진 것 같아.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다른 사람 시키면 되니까.”


시간은 흘렀고

말은 쌓였고

그 사이사이로 자존심을 긁는 말들이

귓속 깊숙이 파고들었다.


K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나는 안다.

그가 늦지 않았다는 걸.

밤 11시에 퇴근해

집에서도 업무용 노트북을 켰다는 걸.


하지만 그런 건

이 회의실 안에서는

어떤 말로도, 어떤 노력으로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


K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일수록 더 깊이 박힐 것 같았으니까.


회의실 문을 나설 때

그의 어깨가 눈에 띄게 내려앉았다.

나도 함께 주저앉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가 수명이 다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바닥은 여전히 단단했고

오늘만큼은

K를 지켜줘야만 했다.


점심은 먹는 둥 마는 둥이었다.

오후 업무 시간은 평소보다 길었고

시계는 고장 난 것처럼

점점 느리게 갔다.


퇴근 시간은 정확히 6시였지만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밤 9시가 되어서야

모두들 회사 문을 나섰다.


K는 입사 동기와 술집으로 향했다.

값싼 소주와 기름진 안주.

테이블 아래에서 나는

끈적한 바닥에 그대로 눌려 있었다.


옆에는 동기의 구두가 있었다.

나와 같은 처지의,

비슷하게 지친 얼굴로

묵묵히 버티고 있었다.


“야… 나 오늘도 탈탈 털렸다.”

“아니, 제시간에 갔거든? 근데도 왜 항상 내가 문제야?”


K의 목소리는 점점 흐려졌다.

말은 반복됐고

결론은 없었다.


동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서로의 말은

서로를 위로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둘은 함께 있었지만

각자 외로웠다.


술자리가 끝나고

우리는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밑창이 한쪽으로만 닳아 있어

자칫하면 넘어질 수도 있었지만

나는 끝까지 버텼다.


현관 앞.


삑삑삑삑— 띠리리.


K는 문 앞에 잠시 멈춰 섰다.

숨을 한 번 고르고

조용히 나를 벗었다.


“오늘… 수고했어.”


술에 취한 목소리였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는

나도, 그도 정확히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평소처럼

나를 내팽개치듯 벗어놓지 않았다.

드물게, 아주 드물게

양손으로 나를 잡아

제자리에 세워 두었다.


신발장 문이 열렸다.

어둠이 다시 내려앉았다.


그때 작은 기척이 느껴졌다.


초코였다.

K의 반려견.


녀석은 내 앞에 코를 들이밀고

젖은 가죽 냄새를 킁킁 맡더니

혀를 내밀어

K의 발가락을 핥기 시작했다.


짧고 반복적인 접촉.


K가 웃었다.

오늘 처음 보는 웃음이었다.


“야, 간지러워.”


그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그대로 방으로 들어갔고

잠시 후, 불빛이 새어 나왔다.


스마트폰 화면이었다.

온라인 쇼핑몰 앱.


‘남성 정장 구두’

‘출근용’

‘리뷰 4.8’


화면이 보이지 않아도

나는 알 수 있었다.


검지가 화면을 스쳤고

가격 앞에서 잠시 멈췄다가

결국 ‘주문하기’를 눌렀다.


새벽배송.

도착 예정 시간 오전 6시.


질투는 없었다.

원망도 없었다.


이건 자연스러운 순서였다.

닳은 것은 교체되고

젖은 것은 버려진다.


그게 인간의 생활이고

나 같은 것들의 역할이다.


신발장 문이 닫혔다.

어둠 속에서

나는 천천히 식어갔다.


어쩌면 내일 아침,

나는 더 이상 선택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쓰레기통 속으로 들어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까지는

충분했다.


나는 오늘도

K를 회사까지 데려다주고

집까지 무사히 데려왔다.


그걸로 됐다.

잘 살았다.


낡은 구두 로그아웃.

[System Notice: 업무용 노트북으로 로그인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