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위기에서 집현전으로
“이 자가 전하의 몸에 손을 댄 대역죄인이오. 추국장으로 끌고 가시오.”
“저는 억울합니다.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란 말이오.”
“네 이놈! 두 발로 걷지 못하겠느냐!”
억센 병사의 손길이 희성의 뒷덜미를 짐승 다루듯 거칠게 낚아챘다. 우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목뼈가 비명을 질렀다. 희성은 짐짝처럼 질질 끌려가면서도, 흙먼지 날리는 바닥을 손톱으로 긁으며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야가 흔들리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어르신! 대감님! 저 좀 살려주세요! 으악!”
희성의 절규가 의금부의 높은 담벼락을 때리고 메아리쳤다. 감옥 안에서 황희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옥사 나무 기둥을 붙잡고 병사들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보게 들! 살살 좀 다루게! 그 친구는 내 쪼개질 듯한 두통을 씻은 듯이 낫게 해 준 명의(名醫)일세! 내 체면을 봐서라도 잠시 멈추란 말이다!”
천하의 영의정이 체통도 잊은 채 사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병사들의 표정은 바위처럼 단단했다. 그들 역시 난감한 기색이 스쳤지만, 잡은 손에 힘을 풀지는 않았다.
“대감마님, 송구하옵니다. 하오나 어명(御命)입니다. 감히 주상 전하의 존함(이름)을 입에 올리고, 옥체에 손을 댄 대역죄인입니다. 저희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어명. 그 두 글자가 가진 무게는 묵직했다. 황희 대감조차 입을 다물게 만드는 절대적인 권위. 희성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대통령 욕' 좀 했다고 잡혀가는 세상은 끝난 지 오래거늘, 이곳은 왕의 이름 두 자가 곧 목숨값이 되는 야만의 시대였다.
'아, 이렇게 끝인가. 조선에 오자마자 능지처참 마무리라니.'
희성은 다리에 힘이 풀렸다. 10여 년 동안 도서관 구석에 박혀 훈민정음해례본만 파고들었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겨우 서른 중반이다. 아직 받아야 할 국민연금이 수십 년치 남았고, 전세 대출금도 다 못 갚았다. 무엇보다 이렇게 개죽음을 당하면, 역사책 어디에도 기록되지 못할 '이름 모를 객사자 1'이 될 뿐이다.
“억울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왕 이름 좀 부른 게 그렇게 큰 죄냐고!”
희성은 발악하듯 소리쳤으나, 돌아오는 건 등짝을 후려치는 창대뿐이었다.
“닥쳐라! 죽을 때가 되니 실성이라도 한 모양이구나!”
그들은 옥사를 빠져나와 널찍한 마당으로 희성을 끌고 갔다. 차가운 밤공기 사이로 비릿한 쇠 냄새와 말라붙은 핏자국 냄새가 훅 끼쳐왔다. 마당 한가운데에는 사극에서나 보던, 사람을 묶어놓고 주리를 트는 형틀과 붉게 달궈진 인두가 놓인 화로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박물관 전시품이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살점을 태우고 뼈를 으스러뜨릴 실전용 고문 도구들이었다.
서슬 퍼런 칼을 찬 금부도사(의금부의 으뜸 벼슬)가 희성을 노려보며 턱을 까딱했다.
“죄인을 당장 형틀에 묶어라! 전하께서 친히 국문(심문) 하시기 전, 놈의 기를 꺾어놓아야겠다. 주리를 틀 준비를 하라!”
“예!”
병사들이 달려들어 희성의 팔을 뒤로 꺾고, 거친 밧줄로 다리를 옭아매기 시작했다. 형틀의 거친 나무 감촉이 뺨에 닿았다. 공포가 극에 달해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 순간이었다. 희성이 질끈 눈을 감으며 다가올 고통을 예감하던 그때였다.
“멈추시오.”
소란스럽던 마당을 단숨에 가르는, 차분하고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는 기이할 정도로 서늘한 힘이 실려 있었다. 마치 시끄러운 시장통 한복판에서 유리잔이 깨지는 소리가 났을 때처럼, 모두의 행동을 일순간에 멈추게 만드는 명료한 울림이었다.
병사들의 손길이 멈췄다. 금부도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모두의 시선이 소리 난 곳으로 쏠렸다.
어둠이 짙게 깔린 의금부 마당 입구. 일렁이는 횃불의 주황색 불빛 아래로 한 여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붉은색 치마에 티끌 하나 없이 정갈한 흰색 저고리. 머리는 장식 없이 단정하게 땋아 내렸고, 손에는 작은 사각 등불을 들고 있었다. 화려한 노리개나 비단옷을 휘두른 것도 아니었지만, 그녀가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주위의 거친 병사들이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칠 만큼 압도적인 기품이 흘러나왔다.
금부도사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는 허리에 찬 칼자루를 움켜쥐며 으름장을 놓았다.
“무슨 짓이냐. 지금 대역죄인을 심문하려는 중이다. 궁녀 따위가 함부로 나설 자리가 아니다! 썩 물러가라!”
금부도사의 호통에도 여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리고 품에서 둥근 나무패 하나를 꺼내, 금부도사의 눈앞에 천천히 들어 보였다.
달빛을 받은 나무패 위로, 임금을 상징하는 황룡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전하의 특명(特命)입니다.”
“트, 특명이라니? 그 패는...”
금부도사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그것은 단순히 왕의 심부름꾼이 지니는 패가 아니었다. 왕의 최측근, 혹은 왕의 목소리를 대신하는 자만이 지닐 수 있는 권위의 상징이었다.
“이 자를 형틀이 아닌, '집현전'으로 데려오라 하셨습니다. 아주 은밀하게."
집현전? 형장이 아니라 도서관으로 데려가라고? 형틀에 묶여 있던 희성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금부도사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이 자는 전하의 존함을 능멸하고 용포를 잡은 흉악한 자입니다. 국문도 없이 집현전이라니, 당치 않습니다!”
“전하께서 직접 확인하실 것이 있다 하셨습니다.”
여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녀는 등불을 들어 금부도사의 얼굴을 정면으로 비췄다.
“만약 지금 이 자의 몸에 생채기라도 하나 낸다면, 도사께서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온전한 상태'의 그를 원하셨으니까요.”
여인의 눈빛은 서늘했다. 그것은 단순한 전달이 아니라, 명백한 경고였다. 잠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금부도사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여인과 희성을 번갈아 보더니, 결국 억울하다는 듯 손짓했다.
“...... 젠장, 풀어주거라.”
병사들이 투덜거리며 밧줄을 풀었다. 구속이 풀리자마자 희성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쿨럭거렸다. 긴장이 풀리면서 다리가 후들거려 일어설 수가 없었다.
사각, 사각. 고운 발자국 소리와 함께 여인이 희성의 코앞으로 다가왔다. 희미한 등불 아래 드러난 그녀의 얼굴은 숨이 멎을 듯 품격이 있고 우아했다. 쌍꺼풀 없는 담백한 눈매에, 붓으로 그린 듯 단아한 입술. 그녀는 바닥에 널브러진 희성을 내려다보며 작게 속삭였다.
“일어나십시오. 살고 싶으시다면.”
희성은 멍하니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현대에서도, 사극에서도 본 적 없는 묘한 분위기의 미인. 하지만 그녀의 눈은 위기에 처한 남주인공을 바라보는 멜로 영화 여주인공의 눈빛이 아니었다. 마치 실험실의 현미경으로 미생물을 관찰하듯, 희성을 꼼꼼하고 건조하게 뜯어보고 있었다.
“저기...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희성이 엉겁결에 흙 묻은 손을 털며 묻자, 그녀가 무표정하게 답했다.
“감사는 나중에 하십시오. 아직 목이 붙어있는 걸 다행으로 여기셔야 할 겁니다.”
“근데... 누구세요? 궁녀님은 아닌 것 같고.”
희성의 물음에 다온의 눈썹이 꿈틀 했다. 그녀는 등불을 고쳐 들며 짧게 대답했다.
“집현전 교리(校理, 종 5品職), 강다온입니다.”
“교... 리요? 여자가 벼슬을 해요?”
희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조선왕조실록을 달달 외우다시피 하는 그였지만, 세종 시대에 여자가 정식 관직인 '교리'를 맡았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었다. 다모나 의녀라면 모를까, 집현전 학사라니?
희성의 멍청한 되물음에 다온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혀가 참 길군요. 혀를 잘못 놀려 죽을 뻔한 분치 고는 학습 능력이 없으십니다.”
“아...”
“따라오십시오. 전하께서 기다리십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제 목이 달아날 판이니, 서두르시지요.”
그녀는 차갑게 쏘아붙이고는 홱 몸을 돌렸다. 치마 자락을 휘날리며 앞서가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왠지 모를 익숙함과 낯섦이 동시에 느껴졌다.
희성은 주섬주섬 백팩을 고쳐 매고 허둥지둥 그녀의 뒤를 따랐다. 등 뒤로 금부도사의 살기 어린 시선이 꽂히는 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이 정체불명의 여인만이 이 미친 조선 땅에서 그가 붙들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어둠이 내린 경복궁의 밤. 술 취한 연구원과 비밀스러운 여성 학자.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의 그림자가 집현전을 향해 길게 늘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