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19화. 과거와 현재의 디딤돌

훈민정음의 의미, 그리고 새로운 시작

by 유블리안


대한민국 2025년. 첫날밤을 보낸 장영실과 성삼문은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희성이 건넨 숙취해소제 한 병이 아니었다면 하루 종일 앓아누웠을 것이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공기는 묘하게 가벼웠고, 세상에 소리는 넘쳐났으나
정작 말들은 서로를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오후, 희성은 연구실 창가에 서서 캠퍼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학생들은 바삐 걸었고, 각자의 세계에 갇힌 채 이어폰을 낀 얼굴들이었다.
서로 간의 대화보다는 혼자 즐기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의미였다.

같이 마주 보고 있어도 문자로 주고받는 모습은 어색한 일이 아니었다.

조선에서 돌아온 지 한 달.
그 시간은 짧았지만, 희성의 안에서는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뀐 듯했다.

"말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이렇게 무거운 일이었구나. 이제는 글보다 말을 잃을 것 같은 불길함은 뭘까?"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조선에서 보았던 백성들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밟혔다.
말은 있었으나 글이 없었던 사람들. 뜻은 분명했으나 적지 못해 삼켜야 했던 숱한 사연들.

훈민정음은 그들에게 단순한 '편리한 문자'가 아니었다.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구였다.

달그락. 연구실 문이 열리고 성삼문과 장영실이 들어왔다.
희성이 구해준 현대의 정장과 중절모 차림은 여전히 어색했지만,
두 사람의 눈빛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다.

"여긴 참으로… 조용한데 시끄럽소."

성삼문이 창밖을 보며 말했다.

"기계는 넘치는데, 마음은 보이지 않는 곳이 많군요."

장영실도 씁쓸하게 덧붙였다. 희성은 그 둘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오늘, 말씀드리려 합니다. 제가 조선에서 배운 걸… 정리해서요."

그는 노트를 펼쳤다.

거기엔 단순한 역사 요약이 아니라, 한 사람의 임금이 왜 글자를 만들었는지가 적혀 있었다.

"세종대왕의 애민은 감정이 아니었습니다."

희성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단단했다.

"동정이 아니라, 구조였습니다. 불쌍해서 도와준 게 아니라, 불합리해서 바꾸려 한 겁니다."

성삼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 시절을 살았고, 그 임금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았다.

"전하께서는 늘 말씀하셨소. 백성이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말할 수 없어서 침묵한다고 말이오."

희성은 노트를 넘겼다.

"훈민정음 창제의 핵심 원칙은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소리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므로 입을 닮아야 한다.
둘째, 배우는 데 평생이 걸리면 안 된다.
셋째, 권력이 아닌 일상에서 쓰여야 한다."

장영실이 흥미롭게 물었다.

"그래서 자음은 발음 기관을 본떴고, 모음은 하늘·땅·사람을 본뜬 것이더냐?"

"맞습니다."

희성은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세종대왕은 이 글자를 '통제'의 수단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권력을 내려놓는 선택이었죠."

성삼문이 낮게 웃었다.

"그래서 그토록 반대가 심했구려."

"네. 글자를 백성에게 준다는 건, 말할 권리를 준다는 뜻이니까요."

연구실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 그 침묵 속에서, 조선의 시간과 현대의 시간이 겹쳐 있었다.
성삼문과 장영실의 흡족한 모습을 보니 희성은 부쩍 자신감이 차올랐다.


며칠 뒤, 박사과정 종합 세미나. 희성은 발표대에 섰다.
주제는 단순했다.

「훈민정음 창제의 철학적 기반과 현대적 의미」

그러나 내용은 달랐다. 그는 연표를 나열하지 않았다. 대신 질문을 던졌다.

"만약 지금, 문자를 쓸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는 그 사회를 문명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교수진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 당시 조선시대의 사대부들은 백성들이 글을 배운다는 것은 그들의 의견을 표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으로, 상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려고 글을 독점한 것입니다."

희성은 조선에서의 경험을 학술 언어로 풀어냈다.
백성의 진정서, 억울한 송사, 말로만 남았던 증언들.
그리고 훈민정음이 그것들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이처럼 훈민정음은 문자 혁명이 아니라, 관계의 혁명이었습니다."

발표가 끝났을 때,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교수가 입을 열었다.

"이론도 탄탄하지만… 이상하리만큼, 살아 있습니다."

다른 교수가 덧붙였다.

"마치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처럼 말이오. 그렇지 않습니까?"

희성은 웃지 않았다. 대답하지도 않았다. 그날, 그는 박사과정 이수를 공식적으로 마쳤다.


봄이 왔을 무렵, 희성과 다온은 비공개로 소박한 결혼식을 올렸다.

주례는 성삼문 대감이 맡았다. 성삼문의 언어 습득 능력은 남들과 다르게 뛰어났다.
단지 수염을 기른 훈장님 같은 모습이었을 뿐이다.

​"부부란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왔으나, 이제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다.
비록 폭풍우가 몰아쳐도 잡은 손을 놓지 말라. 내가 본 너희는 이미 충분히 강하다."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서로가 다른 시간을 건너왔고, 그래서 더욱 소중하며 같은 방향을 보려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 무슨 일이 있어도 이제 함께 가는 거야. 다시 조선으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할까?"

다온이 웃으며 말했다. 희성도 마주 보며 답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간다면, 우리 자기 다온이와 함께 가야지… 제대로 조선어를 알고 또 우리에겐 성삼문 대감님이 있잖아."

그날 밤, 성삼문은 서재에서 역사책과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운명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성삼문(成三問)]

아이를 낳기 전에 "낳았느냐?"는 물음을 세 번이나 듣고 나서야 낳았다고 하여 삼문(三問)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는 사실을 후대의 기록을 통해 알았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알게 되면서 충격에 빠졌다.

사육신의 한 명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었고, 후대에 복권되었다는 사실.
그는 자신의 뜻과는 다르게 역사적으로 평가되는 것을 두고 아쉬워했다.

"단종을 복위시키려 한 것은… 조선의 유학자로서 뿌리 깊게 간직했던 충의(忠義) 사상과
신념 때문이지, 결코 사사로운 감정이 아니었다."

그는 씁쓸한 표정으로 책과 인터넷 창을 닫았다. 그래도 자신이 모셨던 첫 임금 세종대왕에 대한 후대의 평가가 '성군'으로 남아있음에 기쁜 마음을 감출 수는 없었다.

장영실은 베란다에서 자신이 만든 발명품에 대해 생각하며 의기소침해 있었다.

"얼마 안 되는 시간이지만… 내가 만든 발명품은 고작 아이들의 장난감으로만 남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소. 이 가마가 이렇게 빠른 속도로 달리는 것도, 대형 조류 같은 것이 사람을 태우고 하늘을
날다니…"

"장영실 형님의 기발한 발명품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우리 후손들은 이런 것들을 만들 생각도
못 하였을 겁니다. 후손들도 형님을 최고의 과학자로 높이 평가하고 있으니 괘념치 마십시오."

장영실은 희성의 위로를 듣고 힘을 얻었다. 후손들의 귀감이 되었다니 그보다 더 뿌듯함은 없을 것이다.

며칠이 지난 후 두 사람은 짐을 싸기 시작했다.

"이제 돌아갈 때가 된 것 같소."

장영실이 말했다.

"우리가 할 일은 다 한 것 같소."

성삼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희성과 다온은 그들을 배웅하며 깊이 인사했다.

"배운 건,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성삼문이 미소 지었다.

"잊지 말게. 글자는 남지만, 사람이 없으면 죽는다는 걸. 기회가 된다면 또 볼 수 있길 바라네.
아, 그리고 이건 전하께서 다온과 희성에게 전하는 편지일세."

"저도 전하께 드리는 편지를 썼사옵니다. 꼭 전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겠네. 희성 동생."

"네, 형님들. 잊지 못할 것이옵니다."

광화문 광장으로 이동한 이들은 세종대왕 동상 앞에 섰다.
순간 밝은 빛이 일었고, 두 사람의 모습은 서서히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조선.
그곳엔 말을 적어 내려가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다온의 교육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바람은 흘렀고, 글자는 남았다.

그리고 백성들은, 마침내 말과 글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억울한 점이 있으면 글로 써서 상소를 올릴 수 있었고, 다온에게 글을 배운 사람들 중에 일부는
다른 아이들이나 글을 모르는 이들을 가르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조선으로 돌아온 성삼문과 정약용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이도(세종대왕)를 마주 보고 앉았다.

(다음 최종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