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하다가 '헌신짝'이 되어버린 당신에게
약국 문이 열리는데, 인기척이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발소리도 없이 들어와서 의자에 힘없이 주저앉는 손님.
어디가 아픈 게 아니라, 영혼이 빠져나간 듯 텅 빈 눈동자를 하고 계시네요.
오늘 꺼내는 다섯 번째 증상은 이렇습니다.
[노력 배신 증후군 (feat. 번아웃)]
이 증상은 주로 큰 프로젝트를 끝낸 직후나,
연말 인사 평가 시즌에 급격히 찾아옵니다.
누구보다 일찍 출근하고, 남들이 기피하는 일도 도맡아 했습니다.
"내가 조금 더 고생하면 팀이 편하겠지"라는 책임감으로 야근을 밥 먹듯 했죠.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현실은 차갑습니다.
승진은 정치를 잘하는 옆 자리 김 대리님이 가져가고,
나에게 돌아온 건 "수고했어"라는 영혼 없는 말 한마디와 또 다른 '폭탄 업무'뿐입니다.
"나 여태 뭐 한 거지?"
억울함을 넘어, 휴대폰 전원이 5% 남은 것처럼 무기력해집니다.
열심히 산 게 바보 같고, 회사를 위해 갈아 넣은 내 청춘이 한없이 가엾게 느껴져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이유 없이 눈물이 핑 돌기도 합니다.
그럼 저는 어땠을까요? 저도 한때는 회사가 내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내가 뼈를 묻으면 회사도 나를 가족처럼 챙겨줄 거라 믿었죠.
하지만 27년의 결론은 냉정합니다.
회사는 '가족'이 아니라 '계약 관계'입니다.
그리고 슬프게도, 조직은 묵묵히 일하는 사람보다 목소리 크고
생색 잘 내는 사람을 더 빨리 기억하더군요.
지금 당신이 힘든 건, 당신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당신의 그 귀한 마음을, 받을 자격이 없는 곳에 너무 많이 쏟아부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처방전은 방전된 당신의 기력을 북돋아 줄 최고급 명약,
[대충 하라'공진단']입니다.
이 약은 아주 비싸고 귀한 약입니다.
회사를 위해서 드시지 말고, 오직 당신만을 위해 씹어 드세요.
딱 세 가지만 기억하세요.
당신은 늘 100점 중 120점을 받으려고 아등바등했습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회사는 80점만 해도 월급을 줍니다.
나머지 40점의 에너지는 남을 위해 쓰지 말고 비축해 두세요.
"내 할 일은 다 했다. 나머진 내일 하자."
이 주문은 게으름이 아닙니다.
당신이 내일도 출근할 수 있게 만드는 '생존 전략'입니다.
회사가 주는 보너스나 인정을 기다리지 마세요.
그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대신 내가 나에게 가장 비싼 보상을 주세요.
큰 프로젝트를 끝냈나요?
그럼 그날 저녁엔 가장 비싼 요리를 사 먹거나, 휴무일에 좋은 곳으로 도망치세요.
"고생했다. 회사가 안 챙겨주니 내가 황제처럼 챙겨준다."
스스로에게 대접받는 버릇을 들여야 자존감이 바닥나지 않습니다.
당신이 번아웃이 온 진짜 이유는, 거절하지 못하고 다 떠안았기 때문일 겁니다.
정작 내 업무는 못하고 다른 사람 업무를 대신해 준 적은 없는지 돌아볼 일입니다.
무리한 부탁에는 웃음기를 빼고
"지금 업무량이 많아서 내 업무 하기도 벅찹니다."라고 확실히 선을 그으세요.
그렇다고 해서 공통 업무마저 빠지라는 것은 아닙니다. 내 업무가 확실히 끝내고
공통 업무도 하는 것입니다.
착한 사람은 혼자 끙끙 앓다가 마음의 병으로 퇴사하지만,
까칠한 사람은 욕은 좀 먹어도 정년까지 다닙니다.
회사에서 필요한 건 '착한 사람'이 아니라 '오래가는 직장인'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을 갈아 넣어서 만든 성과는, 결국 회사의 것이지 당신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가져 보세요.
나 자신보다 소중한 업무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이제 그만 애쓰시고, 대충 행복해지세요.
유블리안 약사의 다섯 번째 처방은 여기까지입니다.
이 귀한 공진단 꼭꼭 씹어 드시고, 오늘만큼은 아무 생각 말고 푹 쉬시길 바랍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다음 처방전은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은 어떤 처방이 필요할지 진단해서
처방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