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만 드시다가 외로운 부장님을 위한 특별 처방
약국 문이 열립니다.
익숙한 연배의 중년 남성이 들어옵니다.
말끔한 정장 차림이지만, 넥타이는 거칠게 풀려 있고
가슴을 몇 번이나 두드리며 한숨을 내쉽니다.
속이 꽉 막힌 사람의 몸짓입니다.
오늘의 환자는 ‘을’이 아닙니다.
늘 가해자로 지목되던 ‘갑’, 상사입니다.
어느 회사의 이 부장님이시겠지요.
[소통 불통성 억울증 (feat. 꼰대 공포증)]
자리에 앉자마자 억울함이 쏟아집니다.
“약사 양반, 내 말 좀 들어봐요.
내가 악의가 있어서 그랬겠습니까?”
“그냥 팀원들이랑 좀 친해지고 싶었어요.
요즘 애들 힘들까 봐 밥도 사고, 조언도 해주고…”
“회의 때 아무 말도 안 하길래
자유롭게 말해보라고 멍석 깔아준 게 잘못입니까?
그래놓고 뒤에서는 나보고 불통이라니, 꼰대라니…
내가 진짜 서러워서 원.”
눈빛에 거짓은 없습니다.
이분은 진심으로 억울합니다.
본인은 소탈한 상사,
친구 같은 리더가 되고 싶었을 뿐인데
돌아오는 건 단답형 대답과
조금씩 멀어지는 팀원들의 거리감뿐이라고 합니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동년배로서
그 마음, 솔직히 이해합니다.
우리 때는
상사가 “짜장면 먹자” 하면
다 같이 짜장면 먹으며 으쌰으쌰 하는 게 미덕이었으니까요.
부장님은 외로우신 겁니다.
권위는 내려놓고 싶은데
존경은 여전히 받고 싶은,
그 이중적인 마음 사이에서요.
하지만 부장님, 냉정하게 진단하겠습니다.
부장님의 선의는 후배들에게 체기를 유발하고 있습니다.
지금 부장님 가슴이 답답한 이유는
그들이 부장님이 건넨 ‘관심’을
소화하지 못하고 되돌려 보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처방전은
꽉 막힌 관계의 혈을 뚫어주는
[말 좀 줄이 시럽]과 [마음 내려 노란 알약]입니다.
부장님, 억울하시죠.
그럼 딱 세 가지만 바꿔보세요.
분위기는 생각보다 빨리 달라질 겁니다.
“힘들지?”로 시작해서
“나 때는 더 힘들었어”로 끝나는 대화.
그건 위로가 아니라
경험담을 가장한 자기 증명입니다.
후배들은 거기서 체합니다.
입이 근질거려도
‘나 때 이야기’라는 말은 줄이세요.
대신 이렇게 물어보세요.
“강 대리, 요즘 주말엔 뭐 해요?”
그리고 대답을 들으면 거기서 멈추세요.
해석도, 평가도 하지 마시고요.
부장님의 무용담이 빠진 자리에
후배들의 이야기가 들어옵니다.
“내가 밥 샀으니 커피는 너희가 사야지.”
“밥 사줬으니까 내 얘기 좀 들어봐.”
이 마음, 내려놓으셔야 합니다.
요즘 친구들에게 점심시간은 휴식입니다.
부장님과의 식사는
그 휴식을 반납한 연장 근무에 가깝고요.
밥을 사주실 거면
쿨하게 이렇게만 하세요.
“법카 찬스니까 맛있는 거 먹자.”
밥만 먹고, 바로 헤어지세요.
카드만 건네주는 것도 최고의 상사입니다. ^^
대가 없는 호의.
그게 진짜 어른의 여유입니다.
“요즘 애들은 끈기가 없어.”
“이기적이야.”
아닙니다, 부장님.
그들은 이기적인 게 아니라 합리적인 겁니다.
우리 때의 잣대로
지금의 문법을 재단하지 마세요.
부장님이 스마트폰 사용법을 새로 배우듯,
요즘 세대의 언어도
다시 배워야 합니다.
그들이 이해해 주길 기다리지 마세요.
외로운 쪽은 그들이 아니라
부장님 쪽이니까요.
먼저 인정하고 존중할 때
그들도 부장님을
‘꼰대’가 아니라 '선배’로 대우해 줄 겁니다.
오늘의 처방전 한 줄
권위는 세우도록 강요하는 게 아니라 후배들이 몰래 적립해 주는 마일리지 같은 겁니다.
입은 닫고, 지갑은 열되 마음은 가볍게 내려놓으세요.
그래야 부장님의 외로움도, 꽉 막힌 속도 조금씩 풀립니다.
유블리안 약사의 여섯 번째 처방은 여기까지입니다.
쓴 약이라 입에 남으셨겠지만,
이 약 드시고 나면 내일 출근길 공기는 조금 달라질 겁니다.
오늘의 약값은 ♡ 하나면 충분합니다.
(부장님, 법카 말고 개인 카드로요.)
오늘도 직원들과 따로 또 같이,
무사히 살아남는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